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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향기 May 15. 2022

달팽이의 공중부양

투명한 걸 좋아하시나요?

투명한 사람을 좋아하시나요?

투명한 사람이 되고 싶으신가요?


난 투명한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투명하다'는 말 그 자체가 이미 투명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어찌 사람이 투명할 수가 있나? 그럼에도 '투명'이라는 단어는 환한 우윳빛 날개를 단 천사 이미지를 너무 날로 가져버렸다. 투명한 걸 쳐다볼 때마다 난 뭔가 투명하지 않은 그 본연의 무언가를 찾게 된다.

투명한 맑은 유리창, 투명한 물 속, 투명한 그 무언가엔 모두 투명하지 않음이 드리워 있다.

투명한 유리창은 한 번만 손이 닿아도 쉽게 얼룩지기 마련이고, 투명한 물은 꼬리 치는 물고기로 순식간에 흙탕물이 되어버린다. 투명함의 이면에는 혼탁함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난 '투명한'이라는 수식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적당히 더러운 것이 더 자연스럽고 정감이 간다. 개구쟁이 둘째의 손바닥 지문이 묻은 유리창, 열심히 꼬리 치는 물고기가 있어 흔들리는 모래알이 있는 강, 쨍하게 맑은 하늘 보단 드문드문 구름이 드리운 하늘이 더 친근하다.


투명한 생물체를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유리 개구리'라고 불리는 이 개구리는 몸의 내장과 품고 있는 알까지 훤히 들여다 보인다. 이 개구리를 보고 순식간에 속이 메스꺼워졌다. 사람의 몸도 이 개구리처럼 투명하다면 어떨까?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내가 먹고 씹어 삼키는 모든 음식물의 경로가 다른 사람의 눈에 훤히 보인다고 생각하니 몸서리 쳐진다. 내 몸이 투명하지 않은 피부로 덮여 있음에 감사했다.

<사진: 내셔널 지오그래피 Glass frog>


이 투명한 생물체들처럼, 이렇게까지 날 훤히 비쳐 보이게 하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가 이 정도의 모습으로 투명하게 다가온다면 그건 솔직함을 넘어선 당혹스러움이 될 것이다. 그 당혹스러움은 부담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투명함을 입은 척 자신을 포장하는 건 더 보기 불편하다.




비가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리고 있다. 내리는 비만큼 정원은 달팽이로 넘쳐나고 있다. 늘어난 달팽이 수만큼 우리 집 유리창은 어느새 달팽이의 트레드밀이 되어 버렸다. 달팽이들이 열심히 달리고 있다. 열심히 달리는 녀석들의 모습이 기특해 사진에 담아보니 달팽이가 공중에 떠있는 것 같다. 유리창에 붙어 있다는 설명이 없었다면 달팽이가 마치 공중부양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 투명한 것은 진실을 가리고 있었다. 투명하지 않은 벽면이었으면 달팽이의 경주를 달팽이의 공중부양으로 착각하진 않았을 텐데, 투명한 유리창은 달팽이를 레벨업 시켜놓았다. 달팽이를 있는 그대로의 달팽이로가 아니라 너무 잘나 보이는 달팽이로 보이게 하는 그 투명함이 난 불편하다.


때 묻은 것은 정감을 유발한다. 손때가 묻어 얼룩진 오랜 소지품들, 얼굴에 검정을 묻히고 돌아온 아들의 호빵 같은 얼굴, 비 온 뒤 진흙 묻은 발로 들어온 우리 고양이가 방바닥에 남긴 고양이 발자국... 이런 것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단지 때가 묻어서 좋다기보다는 때 묻은 솔직함을 보여주고 있어 정겹다.


사람은 불완전하다. 때가 묻을 수밖에 없다. 때가 묻었다고 다 더러울까? 투명하다고 다 깨끗할까?

99.99프로 박테리아 박멸 스프레이라도 뿌려 무결점의 깨끗하고 투명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자신을 투명한 사람이라 말하지 않고, 차라리 숨겨놓은 때가 좀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훨씬 편하고 신뢰감이 간다. ‘나 사실 이래...’라고 말할 용기가 있는 사람에게 더 이끌린다. 자신의 불투명함을 투명하게 얘기할 때 멋있어 보인다.


유리의 투명함 아래 공중부양하듯 보이는 달팽이의 모습이 아니라 비 내린 흙밭을 무던히 기어가는 달팽이의 모습을 닮고 싶다. 투명한 유리 위를 걸어가다 미끄러지기보단 돌부리에 발이 차여도 거친 흙밭을 걷고 싶다. 혹여 넘어져 내 몸에 흙이 묻어도 그것마저 내 모습이라 말하고 싶다.


불투명함을 투명하게 이야기하는, 매끄럽진 않아도 누군가를 미끄러뜨리진 않는, 투박해서 아름다운 사람이 좋다.


오늘의 희열카드- 유리창 위의 달팽이 카드



<처음 사진출처: 나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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