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나무향기 Sep 20. 2022

단무지 없는 김밥을 싸는 이유

김밥에 단무지가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생각했다. 단무지는  무언가 부족한 달콤과 새콤을 모두 채워주는, 김밥에 있어선, 없어선 안될 존재이지만, 이곳 호주에서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포트락 모임이 있을 때마다 난 김밥을 싼다. 내가 김밥을 좋아해서 이기도 하고, 일본의 스시와 김밥은 다른 음식이라는 것을 호주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난 김밥을 'korean sushi'라고 소개하지 않는다. 외국 사람들이 이거 스시냐고 물으면 난 '스시' 아니고 '김밥'이라고 알려준다. 스시는 식초와 설탕 베이스 밥에 익히지 않은 재료들을 넣는 것이고, 김밥은 소금 약간과 참기름 베이스 밥에 익힌 재료를 넣는다고 설명해 준다. 의미 있게 새겨듣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쨌든 스시랑 비슷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 안타깝다. 그러면 난 한 마디를 더 얹는다. 스시랑 김밥은 완전히 다른 음식이라고. 그건 마치 덤플링과 라비올리를 같은 음식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김밥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이나 국뽕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른 것을 다르다고 알려주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솔직한 호주 사람들은 김밥에서 약간 특이한 냄새가 난다고 했다. 스시에선 이런 냄새가 안 나는데 김밥은 특이한 냄새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 솔직한 여덟 살 꼬마는 김밥에서 방귀 냄새가 난다고까지 했다.

원인은 바로 단무지였다. 단무지의 군내 비슷한 쿰쿰한 냄새를 그리 표현했다. 한국 사람인 나는 단무지가 그런 냄새가 나는지도 전혀 몰랐는데 호주 사람들은 어김없이 그 단무지 냄새가 싫다고 솔직하게 말해왔다.


방학을 맞아 아이들 파티를 공원에서 한다고 음식 한 접시를 해 오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제까지 꾸역꾸역 단무지 넣은 김밥을 쌌었지만, 이번에는 단무지를 뺀 김밥을 쌌다. 단무지 없는 김밥을 싸려니 뭔가 마음이 허전하다. 단무지를 빼는 것은 김밥의 굴욕인 것만 같다. 하지만 어쩔수 없다. 단무지를 넣고 정성스레 싼 김밥은 한번 집어 먹고는 다시 와서 집어 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있는 그대로의 김밥을 받아들이라고 강권하고 싶었지만, 외면당하며 아무도 다시 찾지 않는 음식은 음식의 가치가 없었다. 나는 '먹는' 음식을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마음이 아팠지만 이번에는 단무지를 뺐다. 대신 단무지의 단맛과 새콤한 맛을 채우기 위해 넣지 않던 매실청을 조금 넣었고, 식감을 위해 파파야를 넣었다.


단무지를 뺀 김밥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단무지 냄새 때문에 김밥에 손 대기를 꺼려하던 사람들은 김밥을 즐기기 시작했다. 한번 먹어본 사람은 다시 와서 여러 개를 집어 갔다. '김밥! good!' 이라며 이름까지 불러주고 엄지를 들어준다.


김밥은 김밥의 모습을 잃지 않는 선에서 자신에게 중요했던 무언가를 빼야 할 용기가 필요했다. 빼고 나니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이 되었다. 외면당하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음식이 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킬 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서 무언가를 뺄 줄 아는 융통성도 필요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줬으면 좋겠어.' 라는 사람도 멋있을 수 있지만, 누군가를 위해 약간의 조정을 할 줄 아는 융통성 있는 사람은 더 멋있다.


사람도, 인생도, 완성해 나가야 하는 음식이 아닐까? 무언가를 빼고, 무언가를 넣고, 하지만 여전히 그 이름으로 남을 수 있는 '나'를 완성해 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단무지 하나 뺏다고 김밥이 스시가 되진 않는다. 여전히 김밥이다.


오늘의 희열카드— 단무지 뺀 감밥 카드
이전 02화 손목이 나가도 무쇠팬이 좋은 이유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하루의 희열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