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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향기 Sep 25. 2022

옆으로 자라다오, 오디나무야.

뽕나무라고 하면 구리구리한 냄새가 나지만, 오디나무라고 하면 향긋한 산골 향이 난다.

호주에선 멀베리 트리(mulberry tree)라고 하는데, '멀베리'라는 이름에선 외국 동화에 나오는 숲 속 향이 난다.


오디나무 한 가지를 얻어와 땅에 심어두었더니 올해 드디어 오디가 열었다. 작은 털이 달린 파란 오디들이 봄이 되자 나뭇잎 아래서 자기를 봐주기를 기다리며 싱긋 웃고 있었다. 언제 열리나 아무리 쳐다봐도 나오지 않던 열매는 지켜보고만 있던 커다란 가지에서 나오지 않고, 나무 밑부분에서 옆으로 나온 조그만 가지에 달려 있었다. 올망졸망 달려 있는 오디들을 보고 있자니 귀여워 쓰다듬어 주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이웃에서 나처럼 가지 심기로 키운 어린 묘목들을 벼룩시장에 올려놓았다. 친구 나무 한 그루가 더 있으면 더 잘 자랄까 해서 비슷한 또래 나무 한 그루를 더 샀다. 주인이 잘 돌봐왔는지 나무가 튼실하고 잎도 윤이 나고 제법 많은 오디가 이미 달려 있었다. 나무 주인에게 어떻게 이렇게 튼실하게 잘 키웠냐고 물어보았더니 자기는 해 준 게 가지치기 밖에 없다고 했다. 위로 너무 자라지 않도록 위로 올라오는 가지를 몇 번 잘라만 주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난 한 번도 가지치기를 해 준 적이 없다.


내가 키운, 아니, 내가 심고 자연이 키운 우리 집 오디나무는 키는 컸지만 옆으로 난 가지는 한 가지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 들인 오디나무는 위로 솟지 않고 소담스레 옆으로 퍼져 예쁘게 자라나 있었다. 나무도 주인 따라가는 건가? 그간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고 위만 쳐다보고 살아왔던 내 모습이 우리 집 오디나무에서 오버랩된다. 위로만 자라려고 하는 가지를 좀 쳐 줬어야 했는데, 옆으로 자라날 기회를 놓쳐버렸다. 위로 올라온 가지에 열매가 달릴 줄 알고, 감히 위로 뻗은 가지를 쳐낼 생각을 못했다.



우리  오디나무와 내 인생이 닮아있다. 나도 이 나무처럼 위만 바라보고 오른 길에선 쓸만한 열매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신경 쓰지도 않고 무심했던 곁길에서 소중한 열매를 거둘  있었다.


나무를 파는 주인이 고맙게도 내게,

'이 멀베리 나무가 너를 위해 잘 자라줬으면 좋겠다.'

라며 축복의 말을 건넨다.

'너처럼 가지치기를 제때 해서 아름다운 멀베리 나무로 잘 키워볼게.'

라고 대답했다.


대답은 멀베리 나무를 잘 키워야겠다고 했지만, 실은 오디나무와 함께 나 자신도 잘 키워야겠다는 마음도 대답에 넣었다.


가까이에서 아웅다웅하지 않도록 좀 떨어진 다른 쪽 편에 새로 들인 오디나무를 심었다. 서로를 바라보며 잘 커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물을 주었다.


이젠 위로만 자라려는 가지를 가끔 쳐내야겠다.

내 둘레에 많은 가지를 두고 그 작은 가지들에서도 열매가 열리는 것을 보며 기뻐할 줄 알아야겠다.


까맣게 익은 오디가 무척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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