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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u Oct 25. 2020

서운함은 뒤끝이 된다

서운함을 조절하는 법

 우리는 직장에서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다양한 업무로 엮인 관계 속에서 때로는 상대가 내 마음 같지 않아서 상처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자꾸만 잊게 되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직장은 이해관계로 맺어진 관계일 뿐이다



 어쩌면 서로에게 일 적인 몫을 넘어선 부분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회사도 결국 사람 사이의 관계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내가 이렇게 해주면 상대도 나중에 이 정도는 해주겠지?라는 암묵적인 기대감을 갖고 비즈니스 관계를 쌓아간다. 실제로 인간관계를 잘 쌓아 놓으면 이후 업무를 진행할 때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들을 원활하게 풀 수 있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여러 부서에 동기가 많을수록 일하기 편하다고 하는 것도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하지만 직장은 자신에게 부여된 몫의 일을 하고 결과를 평가받는 곳이다. 차가워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자신에게 부여된 몫이 아니라면 나와의 친분 혹은 저번에 나를 도와준 적이 있었는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안 해줘도 그 사람에게 뭐라고 할 권리는 없다.


기대는 할 수 있지만
상대가 그 기대를 충족해줄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 회사도 사람 사는 곳이다 보니 서로가 삭막한 관계임을 깨달을 때 상처를 받기도 한다.


 회사에서는 저 연차일 때 저마다 한 가지씩 부수직을 맡곤 한다. 부수직은 가끔씩 혼자 하기 어렵거나 급한 일로 지원이 어려울 경우 동기들끼리 서로 도와주기도 했다. 나도 몇 번 다른 동기의 부탁으로 대신해주거나 도와준 적이 있었다. 말 그대로 부수직이기 때문에 귀찮을 순 있어도, 특별히 어렵거나 힘들지는 않았고 도와주고 나서 ‘고마워’라는 진심 어린 답을 들으면 그뿐이었다.


 한 번은 회사에서 외부 파트 세미나가 있는 날이었다. 내가 맡은 부수직은 세미나가 열릴 때마다 참석 인원수를 기록하고 미리 주문되어 배달 온 음식들을 편히 먹을 수 있도록 옮겨놓는 일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날 내가 운영하고 있는 시스템에 이슈가 생겨 원인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느라 정신없었다. 늦게 갈 것 같으니 도와달라고 미리 동기에게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데 정신없이 문제를 해결하느라 깜빡하고 연락을 하지 못했다.


 외부 세미나라 근무지에서 1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에 있는 장소에서 이루어지고 있었고, 겨우 문제를 해결하여 집합시간보다 3~40분을 훌쩍 넘긴 시간에 도착했다. 헐레벌떡 들어왔는데 동기가 나 대신 인원수 체크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을 도와서 음식도 배분했다고 전해주었다. 미리 말을 못 했는데도 알아서 지원해준 동기가 너무 고마워서 사실 감동도 받았다.


 그날 밤, 동기로부터 장문의 카톡이 왔다. 고민하다가 이야기를 꺼낸다는 서두와 함께 그 일은 엄연히 네가 맡은 부수직이고 너의 일인데 늦으니 도와달라는 부탁 하나 없이 내가 너의 일을 해준 것에 대해 서운하고 기분이 나빴다는 내용이었다. 미리 부탁하지 못한 부분은 나의 잘못이 분명하니 다음부터는 꼭 그러하겠다는 말과 함께 미안함과 고마움을 연신 표현하는 답문으로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왜인지 서운함이 밀려왔다. 나였으면 미리 부탁하지 않았어도 그냥 바빴구나 하고 별생각 없이 넘기고 말았을 텐데라는 괜한 생각과 함께 놀다가 늦게 온 것이 아님을 알 텐데도 장문의 카톡으로 이것은 엄연히 너의 일이라는 것을 구분 짓는 데에서 상처를 받았던 것이다. 동기라고 마냥 나를 이해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사실 동기는 자신의 몫이 아닌 일을 대신해준 것이고, 더구나 미리 부탁도 못 들은 상황이니 기분이 나쁠 수 있다. 중요한 지점은 동기라서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한 내 마음과 그 마음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는 점에서 서운함으로 이어진 것이다.


 5년도 지난 그 날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 그때부터 나에게는 한 가지 기준이 생겼다. 직장에서만큼은 나의 일과 너의 일을 구분하고, 가급적 도움을 청하지 않고 상대가 도움을 청해도 나도 그때 해줬으니 너도 해줘 등의 다소 유치한 기대감 없이 그냥 같이 해주자라는 마음으로 내 감정을 절제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으면 또 저번처럼 의도치 않게 관계에 서운함이 생기거나 혹은 내가 상처를 받을 것 같았다.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업무에 대한 지원과 도움을 주는 식이 되었고 연차가 쌓이면서 내 감정을 감추는 데에도 자연스레 익숙해졌다.


 관계가 틀어지는 시작은 서운함이다


 서운함이라는 감정은 상대의 행동이 나의 기대에 어긋나서 섭섭하고 아쉬운 감정이다. 동기는 나의 행동으로 인해 서운함을 느꼈고 나 또한 동기의 말로 인해 서운함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동기에게 되려 감사하다. 사소한 오해나 서운함은 자칫 말하기에는 민망해서 혼자 가슴에 묻어두다 보면 결국 관계는 서서히 멀어졌을지도 모른다. 사소한 서운함으로 틈이 벌어질 수 있었지만, 가감 없이 표현해주어서 그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었고 관계도 잘 회복할 수 있었다.


 직장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스스로 기대해서 서운함을 느끼지 않기
서운함을 느꼈다면 바로 표현하기


 상대에게 기대하는 습관을 버림으로써 서운함을 느끼지 않도록 연습하고, 그럼에도 서운함을 느꼈다면 오랜 뒤끝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바로 서운함을 표현해서 관계를 풀어야 한다. 그때 용기 내서 서운함을 이야기해준 동기에게 감사하다.


 이렇게 인간관계는 결과적으로 서운함을 얼마나 잘 조절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서운함을 잘 조절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누구도 상처 받지 않을 수 있는 길인 것 같다.



망리단길 한 카페에서   by @n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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