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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u Oct 12. 2020

자극에 ‘즉각’ 반응하지 않기

내 시간과 감정이 더 소중하다


 우리는 일상 속 수많은 외부 자극에 노출되어 살고 있다.


 외부 자극은 긍정적인 것일 수도, 부정적인 것일 수도 있다. 부정적인 자극은 나를 곤란하게 만드는 불편한 상황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SNS에 올라온 좋은 곳에서 여행하고 있는 친구의 모습에서 느끼는 위화감이 될 수도 있다.


 인터넷과 관련 연결 서비스들의 발달로 사람들은 점점 더 촘촘하게 연결되었고, 그로 인해 받게 되는 외부 자극은 기하급수로 늘고 있다. 하지만 그 자극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설명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일상에서 부정적인 자극을 줄여나가기 위한 법안과 여러 장치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지만 이미 받아버린 상처와 자극은 여전히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대학 다닐 때에 한 교수님께서 강의 시간에 하신 말씀이 있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외부 자극에 바로 반응하지 않는다


 단순히 책을 많이 읽어서 외부 자극에 덜 반응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키우자.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외부 자극에 즉각 반응하지 않는 자세가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는 점에 더 주목해야 한다.

 

 나는 고객들에게 필요한 기능을 개발해주고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운영하는 일을 하고 있다. 고객들이 저마다 필요한 니즈를 이야기하면 그것을 시스템으로 구현해주는 역할이다.


 일을 하다 보면 구현하기 어려운 요청이 올 때도 더러 있다. 고객과 개발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고, 서로의 분야를 온전히 이해한 상태로 요구사항을 제시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발자는 고객의 요청이 최대한 실현될 수 있도록 요구사항의 간극을 줄이고 조율하는 일 또한 주요 업무 중 하나이다.


 한 번은 고객이 구현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요구사항을 제시한 적이 있다. 당시 개발 프로젝트를 리딩하셨던 차장님은 기한 내에 작업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계셨음에도 ‘네. 고려해보겠습니다.’라고 답하셨다. 나중에 슬며시 ‘아무래도 작업하기 어렵지 않을까요?’라는 내 질문에 차장님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고객이 먼저
무리한 제안이라고 이야기할 것 같아요


 실제로 한 2주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쯤, 고객은 생각해보니 취지는 좋으나 개발 후에 운영 공수도 클 것 같고 투입 리소스 대비 효용도 크지 않을 것 같아 해당 작업은 보류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이야기했다. 아마 차장님은 그 부분까지 일찌감치 예상하셨던 것 같다.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한 수 앞을 보고 상황을 기다리신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기다리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정리되고 해결되는 일들도 많다.


 즉각 강하게 부정하지 않아도
때로는 상황이 좋은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도 있다

상황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불합리한 상황에도 무조건 YES 맨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때로는 외부 자극에 바로 반응하기보다 가볍게 응수하고 기다려보는 편이 더 유연한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행동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이다.

 일하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외부 자극에 반응 속도를 늦추는 일이 쉽지는 않다. 나도 아직은 어떤 상황에서 즉각 반응해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 즉각 반응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은지 판단하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외부 자극에 바로 강하게 반응했을 때면 늘 조금만 더 차분하게 반응할걸. 조금만 더 유연하게 대처할 걸. 하는 아쉬움이 생기고 이 후회 또한 내 몫이 된다.

 

 위와는 조금 다른 예로, 내 마음속 깊은 감정을 건드리는 자극도 있다. 보통 이 자극은 위에서 다룬 상황보다 몇 배는 더 견디기 힘든 경우가 많다. 진심으로 고통을 호소하면 금방 그럴 줄 몰랐다며 사과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역으로 더 심하게 응수하는 사람도 있다. 나를 공격하는 말에 혹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안 좋게 이야기하는 자극에 반응하지 않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분명한 것은 내가 그 자극에
일일이 답하고 반응해줄 필요는 없다



 아니라고 해명하고 싶고, 배로 욕을 해서라도 고통스럽고 불쾌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한 템포만 늦게 반응하는 연습을 해보자.


 모 유튜브 크리에이터는 '이유 없이 화를 내고 무례하게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속으로 하나 둘 셋 쉬고 노려보세요
그리고 가차 없이 뒤돌아서세요

그 어떤 반응보다 가장 큰 반응일 거예요


 외부 자극에 즉각 반응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지만 막상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침묵해도 괜찮고 ‘네.’라고 대충 답하고 그냥 넘겨버려도 나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외부 자극을 받는 상황은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지만 거기에 반응하지 않는 것은 나에게 선택권이 있다.


 누군가 나에게 지나치게 어려운 요구를 한다거나 내 기분이 상할 만한 말을 서슴없이 할 때.


 한 템포만 멈추고 나서 반응해보자.


 그 사이에 상황이 바뀔 수도 있고 내 감정이 한 차례 정리된 상태에서 완곡한 거절 의사나 불쾌감을 더 또렷하게 표현해낼 수도 있다.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외부 자극으로부터
내 소중한 감정과 시간을 지켜내는 것이다





노원 한 파스타집에서   by @n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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