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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Aug 04. 2019

여보, 나 1년만 쉴까? #9 그 섬에 가고 싶다.

일과 질병이란 일상에서 휴식과 치유 및 힐링에 관한 연재이다

     

  


평생의 로망

     

그 섬에 가보고 싶었다. 섬 중에서도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에 가보고 싶었다. 비현실의 섬이 아닌 현실의 섬에 가보고 싶었다. 이러한 생각은 7년 전부터 강렬해지기 시작하였다. 무인도에 가면 7년 동안, 아니 평생 잃어버린 그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부질없는 생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단순한 여행은 로망이 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 기회는 쉽사리 찾아오지 않았다. 삶은 치열하였고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섬이란 바다나 호수 등에 고립된 육지를 말한다. 물론 요즘은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나 터널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섬이 상징하는 고립에서 자유로운 섬들을 더 이상 섬이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의 세계에서는 여전히 섬으로 불리고 있다. 내가 가보고 싶은 섬은 고립에서 자유롭지 않은 섬이었다. 유인도든 무인도든 섬이면 족하였다. 하지만 40대 중반을 기점으로 나는 많은 변화를 경험하기 시작하였다. 표현하기 어려운 내면의 경험이었다. 이를 후기 청년기라 스스로  칭하면서 그 심리적인 변화들을 파헤치고 싶어 졌다. 그래서 일반적인 섬이 아닌 무인도에 가보고 싶었다. 벌써 7년째 나는 그렇게 옹알이를 하며 무인도를 그리워하였다. 그곳에 가면 나를 반기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허황된 상상들은 비현실과 현실을 수시로 넘나드는 나의 심리상태의 반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단 하루라도 좋으니 진정한 고립을 경험하고 싶었다. 그 속내는 세상과의 단절 속에서 참다운 나를 바라보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다. 그것이 자유라고 생각했다. 인생에서 단 하루만이라도 좋았다. 누군가에게 누구로서 인정받아야만 하는 짐을 지고 있는 지계를 벗어던지고 싶었다. 관계에서 자유로워지는 삶이 절실하였다.

     

내 현실의 고향은 정읍이라는 남도의 작은 마을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고향을 잃어버렸다. 나는 그렇게 실향민이 되었다. 내 고향은 어떤 지리적인 장소에 한하지 않았다. 내 고향은 어머니라는 특정한 사람과의 관계 설정으로 이루어진 비현실 속의 장소였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고향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이국 만리에서 향수병으로 어지간히 고생하였다. 평생 꿈꾸던 어릴 적 아름다운 고향을 찾아왔지만 고향 그 어디에도 진정한 고향은 없었다. 심지어 어머니가 잠들어 있는 선산에조차 고향은 없었다.

     

고향을 잃어버리고 나서 향수병은 그 대상과 방향을 수정하기 시작하였다.  더 이상 복사꽃 피고 우물가의 앵두를 따먹던 현실 속의 고향은 나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정체성을 잃어가기 시작하였다. 어쩌면 아들이 영국에서 이민자의 아들로서 겪었던 그 정체성의 혼란과 흡사할지도 모른다. 영국에서 태어난 아들은 사춘기 시절 심각한 정체성의 혼란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외모는 한국인이지만 영국인으로 영국 친구들과 살아가야만 하는 아들의 혼란은 몇 년간 지속되었다. 아니 평생 이어질지도 모른다. 나 또한 후기 청년기가 되면서 심각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 시작하였다. 나는 누구이고 왜 살아야 하는지 도무지 갈피조차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어머니의 죽음은 마음속 고향의 상실로 다가왔다. 나에게는 더 이상의 기댈 언덕이 없어지고 말았다. 크나큰 상실은 또 다른 상실로 이어졌다. 내가 진정 그리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길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답게 살고 싶고 나로서 살고 싶은 욕심이 강하면 강할수록 나는 비현실의 무인도에 갇혀서 고립되기 시작하였다. 그 고립은 외로움이라는 안개에 둘러싸여서 무진이라는 마을을 형성하였다. 무진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사람 구경하기는 쉽지 않았다. 오후가 되어야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할 정도로 안개는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촘촘하고 농밀하였다. 오전에는 안개 때문이라지만 오후에 만나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개인이었고 타인이었다. 심지어 친구나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관계의 상실은 우울이라는 사생아를 낳고 말았는지도 모른다.

   


섬도 우울할까?

     

섬이 주는 고립감은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긍정일 수도 부정일 수도 있다. 나에게 젊은 시절의 섬은 낭만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운 장소였다. 작고 아담한 마을에 인공으로 조성된 포구에는 방파제와 선착장이 있다. 수시로 들락거리는 작은 어선들은 희비가 엇갈리는 날이 잦았다. 만선으로 돌아오는 날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어부들은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내일의 새로운 태양이 뜬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 비록 오늘은 허탕이었지만 내일은 물고기들로 배를 가득 채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섬의 의미를 묻는 것은 가장 의미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섬은 치열한 삶의 현장이고 일터다. 때로는 평화롭고 조요한 마을이지만 때로는 태풍이라는 거대한 자연현상과 마주하기도 한다. 물론 태풍이 오면 모든 배들을 대피시키고 지붕이나 제반 시설들을 점검한다. 자연과 결코 맞서는 법이 없다. 오히려 자연은 경외의 대상이다. 자연의 법칙에 따르고 자연에 순종한다. 자연은 경외의 대상이 아니라 개발의 대상인 육지의 탐욕과는 결이 다르다. 그래서 한때는 어부로서의 삶을 꿈꾼 적도 있었다. 물론 육지에 사는 어부가 아니라 섬의 어부였다. 그 섬이 주는 의미는 나이가 들면서 변하기 시작하였다. 그 변화의 정점은 정확히도 40대 중반이었다. 우울증이 고개를 들고 나를 갉아먹기 시작하는 그 시점과 일치한다.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특별히 섬을 좋아하거나 탐험하는 사람들도 많다. 무인도를 탐험하는 여행가도 있다. 그것도 혼자서 며칠씩 식량도 없이 체류한다. 그 과감한 도전은 물론 젊음이라는 용기와 체력이 도와주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열정이 없이는 그렇게 무모한 탐험은 하지 않을 것이다. 열정이라는 것은 좋아서 하는 일이다. 어떤 대상을 사랑한다는 일은 참 아름답게 다가온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일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멋진 삶을 살 수 있다. 그 콩닥거림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가능하고 사람이 아닌 사물과의 관계에서도 가능하다. 하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그 콩닥거림의 유통기간이나 유효기간이 너무 짧다. 그래서 또 다른 콩닥거림을 찾아 나선다. 특히 후기 청년들에게는 이러한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 대상이 또 다른 사람일 수도 사물이나 자연일 수도 있다. 가능하면 또 다른 사람보다는 사물이나 자연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내 뜻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다. 항상 머피의 법칙은 나를 그리고 후기 청년들을 수렁에 빠트리곤 한다. 그 수렁은 크레바스라는 곳처럼 깊고 어둡다. 한번 빠지면 다시는 세상의 빛을 볼 수 없는 곳이다. 크레바스의 의미를 알면서도 불나방처럼 후기 청년들은 그렇게 하루살이가 되어 불속으로 뛰어드는 무모함을 보인다.

     

나는 섬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섬이라고는 한국에서는 제주도, 영국에서는 포츠머스 남쪽의 대서양에 떠있는 화이트 섬에 가본 것이 전부다. 그만큼 섬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외로움과의 피할 수 없는 조우 때문이었다. 그 외로움은 우울과의 관계를 점점 돈독하게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 시기가 7년 전의 40대 중반 무렵이었다. 내가 후기 청년기라 부르는 시기였다. 나는 그렇게 섬을 동경하고 섬에서의 삶을 꿈꾸기 시작하였다. 어부로서의 낭만적인 시기는 후기 청년기 이전의 젊음이 넘칠 때였다. 후기 청년기 이후에 내가 느끼는 섬은 고립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고립감에는 우울과 외로움의 함수 관계가 절묘하게 얽혀 있었다. 내가 설정한 함수지만 나는 그 함수를 풀어헤쳐보고 싶었다. 그리고 섬도 외로움을 느끼는 주체로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섬이 주는 의미는 그렇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섬은 확실하게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구미가 당겼다. 갈 기회만 엿보고 있었지만 용기가 나질 않았다. 항공사 마일리지 카드에 쌓여있는 그 많은 마일리지만으로도 제주도는 여러 차례 왕복이 가능하였다. 하지만 마일리지는 그렇게 쌓여서 먼지 속에 묻혀 있었다.

  


섬의 의미

     

나에게 섬이란 고립이었고 이상향이었다. 고립이란 부정의 의미로 외로움을 동반하였다. 이상향이란 말 그대로 유토피아적 환상이었다. 둘 다 비현실적인 의미로서 다가오는 섬의 의미들은 때로는 현실 속에서 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를 기대하기도 하였다. 후기 청년기가 시작되면서 무인도란 의미는 더욱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고립과 이상향에 은신처라는 의미가 더해지기 시작하였다. 은신처란 어떤 피신처를 말한다. 몰래 숨고 싶은 나만의 아지트가 필요하였다. 사춘기 소년이나 소녀들이 자신만의 공간을 간절히 원하듯 말이다. 자신의 방이 아닌 비밀 다락방 같은 의미의 은신처가 필요한 이유는 때로는 도피의 장소로서 때로는 사유의 장소로서 필요하였다. 가끔은 어머니의 품속 같은 안식처로서의 편안함도 제공하였다. 물론 그 어머니는 시골 마을의 40년 전의 젊은 어머니였고 아름다운 어머니였다. 그 시절을 동경하는 이유는 단순히 어머니가 그리워서만은 아니다. 어머니의 상실로 고향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상실은 또 다른 상실을 낳아가고 있었다.

     

그 상실을 섬에서 찾아보려는 시도는 단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울함을 달고 사는 사람들은 갑자기 결정력이 사라지면서 의욕을 상실한다. 무언가를 찾아 나서고 도전하던 사람들도 여지없이 무너진다. 그러던 차에 무인도에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같이 사업하는 젊은 동료에게 방송국에서 무인도 체험 촬영 제의가 들어왔던 것이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제의가 들어오고 그다음 주에 작가 미팅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바로 다음 주에 촬영일자가 잡혔다. 목요일과 금요일이었다. 나는 평생의 로망이었던 무인도 여행을 이렇게 갑자기 그리고 쉽게 잡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올여름에 어떻게 한번 해볼 생각이었다. 작가 미팅 후 나는 당연히 즉석에서 무인도에 가기로 약속을 하였다. 얼마나 기다려왔던 순간이었던가! 드디어 나의 평생 로망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예고도 없이 그렇게 갑자기 다가왔고 들뜬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를 않았다. 심지어 가슴이 콩닥콩닥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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