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블랙오렌지처럼

행복은 모르겠지만, 기쁨은 분명히 있었다

by 오승현


언젠가 이곳에 한 분이 귀한 댓글을 남겨주셨다.


“그 소박한 일상 속에서 기쁨을 만나시길. 행복은 찾기도 힘들고 지나가야 알 수 있는 것이 많지만, 기쁨은 바로 알아볼 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 한 문장이 마치 오래 곁에 두고 싶은 문장처럼 마음에 남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종종 그 문장을 떠올렸다.


나는 평소 “행복하세요”라는 말을 습관처럼 사용해 왔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추상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쩌면 지금이 아니라 조금 더 먼 미래에 어울리는 말이라는 것도 알면서도. 나는 그저 익숙하다는 이유로 그 말을 계속 사용해 왔다.


그렇게 추상적인 단어를 따라 추상적인 행복을 쫒아가던 내게, 그 문장이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걸려들었다.


그래서 아주 단순한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오늘 하루, 기쁨을 세어보자.”





아침의 기쁨,


작년에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다 다친 오른쪽 다리.

괜찮아졌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딘가 불안이 남아 있던 시간들.


월요일 아침, 의정부 성모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는 날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차트를 보시며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많이 좋아지셨어요.”


그 한 문장이

내 몸보다 먼저 마음을 풀어놓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내에게 물었다.


“오늘 어떤 일이 제일 기뻤어요?”


아내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당신 다리, 잘 낫고 있다는 말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알았다.


아, 이게 기쁨이구나.

크지 않아도, 분명히 손에 잡히는 것.


그날의 첫 번째 기쁨이었다.






오후의 기쁨,


몇 년 전, 코로나 팬데믹 시절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주변 사람들과 책을 나누는 작은 프로젝트를 했었다.


한 달에 열 권씩,

내가 고른 책을 누군가에게 건네는 일.

그 작은 나눔이 생각보다 긴 인연을 남겼다.


그때 책을 받았던 바리스타 분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몇 해 전 우연히 우리 동네로 이사 오셨고,

지금은 자기만의 색이 분명한 스페셜티 카페를 운영하고 계신다.


요즘 나의 최애 카페다.


그 카페에서

아내와 잠시 시간을 보냈다.


여름 신메뉴, 블랙 오렌지.


에스프레소의 묵직한 바디감 위로

오렌지의 산뜻한 맛이 겹쳐졌다.


입안에서 서로 다른 감각이 부딪히며

묘하게 어울렸다.


짧았지만,

그 맛은 오래 머물렀다.


그 순간 역시

작지만 분명한 기쁨이었다.






저녁의 기쁨,


노을이 천천히 익어가던 시간.

이대로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기에는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민락천으로 향했다.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노란 유치원 아이들 같은 개나리,

아직 피어 있는 고매한 목련 한 그루,

햇살에 반짝이는 물결.


그 풍경이

혼자 보기에는 아까워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아이들이랑 지금 나와.

같이 봄꽃 보자.”


잠시 후, 우리는 함께 걷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서로를 부르고,

특별한 일 없이

그저 함께 있는 시간.


그 순간을 지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괜찮은 하루 아닌가.


그리고 이 순간 역시

분명한 기쁨이었다.





손에 잡히는 기쁨들이

하루 곳곳에 남아 있었다.

그것들이 조용히 쌓여 있었다.


어쩌면 행복이라는 것은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기쁨들이 남겨놓은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병원에서의 안도,

블랙오렌지를 맛본 짧은 시간,

봄꽃 사이를 걷던 그 순간까지.


내일 블랙오렌지,

또 마시러 가야겠다.


에스프레소 같이 묵직한 일상의 삶에,

오렌지 과즙처럼 숨어 있는,

기쁨을 발견하러.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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