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지은 내 새로운 닉네임 나무나비는 지금 아이가 할 수 있는 말 중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낱말과 그림이 그려져 있는 판에서 거의 유일하게 정확히 말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유독 나무와 나비를 크게 발음한다.
1. 나무
아이는 나무를 좋아한다. 발음도 쉽고, 또 접하기도 쉬워서인 것 같다.
남편은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하얀색 트리를 장식했다. 그 전 집주인이 주고 간 것이라고 한다. 하얀색 트리는 작고 예뻤다. 거기에 전구까지 있어서 반짝반짝 빛도 났다.
문제는 그것을 보고 흥분을 한 아이였다.
아이는 밤에 자지도 않고 계속 나무가 있는 쪽을 향해 앉아 있었다. 밤이 되면 나무도 자야 한다고 전구불도 껐지만, 아이는 계속 그 나무만 보고 있었다.
자려고 누워서도 '나무' '나무 반짝반짝' 이라고 말하면서 나무를 찾았다. 처음에는 귀여웠으나 예쁜 것도 한두번이지, 나중에는 '나무' 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한밤중에 자지도 않고 '나무'를 부르짖는 아이에게 나는 "나무는 자, 나무는 밤이라서 잔다고!"라고 소리치고 엉엉 울었다.
결국 나무는 철수했다. 아파서 병원에 갔다고 아이 아빠가 둘러댔다. 아이는 그렇게 말하니 더는 실물 트리는 찾지 않고 그림판 속의 나무나 밖에 나갔을 때의 나무를 손짓했다.
2. 나비
아이가 두 번째 좋아하는 것이 나비이다. 이것 역시 발음도 쉽고 그림도 예뻐서인 것 같다. 실제 나비는 아직 본 적이 없고 그림판 속의 나비를 보았다.
어느 날 아침, 어린이집에 가야 하는데 아이가 계속 나비를 찾았다. 그림판을 보여주고 나서 집을 나섰는데, 나서고 나서도 계속 '나비' '나비'하면서 찾았다.
나는 어린이집에 가서 나비를 보여달라고 하자, 어린이집 선생님이 예쁜 나비를 그려주실 거야, 라고 아이를 달래면서 합의되지 않은 사실을 마치 합의가 된 양 말했다. 그러고 나서 고민했다.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뭐라고 전달을 해야 하나, 아이에게 나비 한 마리를 그려 달라고 부탁을 드려야 하나, 안 그래도 바쁘실 텐데 아이를 위해서 나비 그림을 보여주실 수 있을까.
무엇보다 아이들의 등원이 겹치면 그런 이야기를 전달하기가 어려워서 인사만 하고 나와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고민을 하면서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아이는 도착해서도 '나비'를 찾았다. 그리고 어린이집에 안 들어가려고 했다. 밖에서 걷는 것이 좋아서 요즘들어 그럴 때가 있었다.
나는 얼른 '나비가 안에 있어.'라고 확인되지 않는 사실을 말하며 아이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러자 아이는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선생님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 텐데. 그런데 선생님은 내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나비 보러 가자.'라고 말하며 아이를 제게로 끌었다.
나와 어린이집 선생님은 순간 완벽한 콤비가 되었다. 말 한 마디 맞춘 적이 없는데, 마치 드라마처럼 앞뒤가 딱딱 맞게 아이가 조금도 의심하지 않도록 완벽한 계략으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들여보냈다. 이건 꼭 '슬램덩크'에서 강백호와 서태웅이 내내 티격태격하다가 마지막 순간 힘을 합쳐 슛을 성공시키고 하이파이브를 하는 기분일 것 같았다.(그만큼 희열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나비 그림을 봤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선생님은 어린이집에 있는 나비 그림 몇 개를 보여주고 나서 간식을 주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셨을 것 같다.
아무튼 아이를 키우는 건, 때로는 얼토당토 않은 거짓말과 합의되지 않은 약속과 그 모든 것을 둘러싼 이야기가 함께 해야 하는 것 같다. 아이가 말할 수 있는 건 나비와 나무지만, 나는 나비와 나무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을 계속 만들어내야 한다. 아이가 그 속에 살게 하기 위해서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