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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니 Jul 09. 2023

책과 사랑에 빠진 사람

책과의 사랑에 빠진 시점이 언제일지 생각해 보았다.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기억의 저편에 더듬더듬 한글을 떼고 한 자 한 자 천천히 읽으며 읽었다는 자체로 환희를 느꼈던 어린 시절이 빛바랜 사진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국민학생이 되고부터는 글자를 틀리지 않고 읽는 것에 자부심과 기쁨을 느꼈고, 책을 잘 읽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마침 책 방문판매가 성행했던 그 시절, 부모님께서는 전집을 몇 질 사주셨고, 그 책을 보기 좋게 전시해서 읽어 나갔다. 양장본에 쩍쩍 소리가 나기도 한 그 책들은 과학 학습 만화와 삼국지, 수호지 전집들이었다. 만화책을 처음 봐서일까 만화책보다는 줄 글로 되어 있던 책들이 좋았다. 그런 책들을 읽으면 칭찬을 받아서일까. 아니면 삼국지와 수호지의 이야기가 너무 흥미진진해서 흡입력 있게 빨려 들어갔던 것일까. 삼국지와 수호지를 코를 박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그 당시 구독했던 어린이신문에 어린이도서 신간 광고가 나오면 읽고 싶은 책을 따로 적어두었다가 동네서점에 가서 신간 주문을 하고 왔던 문학소녀였다. 맹랑하기도 해서 6학년 담임선생님께 불만이 있었던지 신간도서 제목 중 선생님 싫어요, 정말 싫어요. 를 구입해서 읽고 선생님께 읽어 보라고 드렸던 아이였으니 말 다했다고 본다.


티브이드라마로 방영했던 천사들의 합창이 책으로 나와 전권을 다 수집했던 아이였으니까 책에 대한 사랑은 뜨거웠다.  그러다 윗 집 언니에게서 물려받았던 ABE 세계문학전집에 빠져 버렸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동네 책방과 서점을 드나들며 책을 빌려다 읽었다. 그즈음 유행했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나 한비야의 걸어서 지구 시리즈를 너무 재미있게 봤다. 학문의 즐거움이라는 책도 중학생에게는 어려울 법했지만 그때 읽었다. 좋은 생각이라는 월간지를 정기구독하며 읽기도 했다. 요즘 말로 하면 활자중독자처럼 쉴 새 없이 밥 먹을 때도 책을 읽었고, 책을 옆구리에 끼고 살았던 시절이다. 나름 지적 허영심에 스스로 취해 수준과 상관없이 여러 분야의 책을 드나들며 탐독했던 시기였다고 생각된다.



문학소녀를 자부했지만 마의 고등학생 시절에는 책을 멀리하며 담을 쌓아버려서 기억에 남는 책이 많지 않다. 대학시절과 대학원시절에는 어쩔 수 없이 전공책을 읽었고, 동아리 영향으로 종교 서적들을 많이 읽으며 지냈다.

결혼 전에는 결혼 준비 책들을, 임신 출산 시절에는 태교와 출산, 이유식 책들을 읽었다. 육아를 하면서는 자녀교육서를 읽어 왔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고등학생 시절을 제외하고는 무엇인가를 계속 읽어 왔던 인생이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서 책과 사랑에 빠졌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책을 읽으면 현실 세계를 떠날 수 있어서이다. 어릴 때도 책에 흠뻑 빠지면 엄마 아빠의 싸우는 소리, 아빠의 일방적인 고함을 피해 달아날 수 있었다. 존재하는 공간을 떠날 수는 없었지만 마음은 훨훨 날아 책 속에서 호흡하는 한 명의 인물이 되어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좋아하는 로라 잉걸스 와일더의 「큰 숲 작은집」은 너무 읽어 너덜너덜해졌었다. 우리 집이 화목한 집이 아니어서 그랬을까. 책 속에 나라도 시대도 다른 그 작은집 이야기는 시공간을 초월해 따뜻하고 화목한 집으로 나를 초대해 주었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지금에서야 세계관, 가치관 등을 정립할 수 있어서라고 말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읽을 때는 이러한 거창한 말은 알지 못했다. 그저 내가 모르는 세계와 문물 등을 책을 통해 알 수 있어서였다. 삼국지와 수호지로 여러 영웅호걸들의 이야기들을 경험하며 나름의 세계관을 접해 보았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나 한비야의 여행 이야기를 통해 가 보지 못한 곳을 동경하며 배울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아이를 낳고 이유식 책을 볼 때면 이유식 책 한 권을 독파하여 거기 나온 레시피를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아이에게 다 해서 먹이며 모르는 육아의 세계를 하나씩 배워나갔다. 그렇게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배우며 나의 마음과 세계를 넓혀 나갔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유명한 작가들, 인물들을 직접 만날 수가 없어서이다. 지금에야 유튜브나 여러 경로로 유명한 분들의 인터뷰로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모습을 듣고 볼 수 있지만, 어릴 때는 신문이나 잡지의 지면으로 만날 법한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을 때는 책 만한 것이 없었다. 특히 대학생 시절 종교서적들을 탐독하며 유명한 신앙 선배들의 이야기를 읽고 배우며 성장했었다.



여전히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재미있고, 알고 싶고, 현실을 잊게 해 주는 유희가 되는 나만의 놀이이기 때문이다. 그 유희는 여러 모양으로 발전되어 현재 온라인 독서모임 1개, 오프라인 독서모임 1개에 참여하고 있다. 읽었던 책이 선정되어 다시 읽게 되는 독서모임도 있고, 독서모임이 아니라면 읽지 않았을 책을 읽고 나누기도 하며 새로운 책에 도전하기도 한다. 읽었던 책도 다시 읽으니 좋고, 새로운 책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좋다. 책 읽기의 기쁨이 확장되어 좋다.



온라인상의 두 군데의 단골서점을 번갈아 가며 쿠폰과 적립금을 쏠쏠히 모으며 한 달에 서너 권씩 내가 읽을 책을 사는 기쁨을 보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니 어린이 책과 청소년 책도 종종 읽으며 아이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을 미리 읽어보기도 하며 함께 읽으며 나누는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도서관에는 희망도서를 늘 신청하고, 읽고 싶은 책이 대출 중이면 예약도 열심히 걸어 둔다. 핸드폰의 메모장에는 두 아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들 리스트가 각각 존재하고, 내가 읽고 싶은 책들, 독서 모임에서 같이 읽고 싶은 책들의 리스트를 각각 정리해서 보관하고 있다.

외출할 때는 아이들 책 서너 권, 내 책 한 권은 보조가방에 늘 들고나가 혹시나 비는 시간에 읽으려고 준비해서 나간다.


아마 평생 나의 유희가 될 것 같은 책 읽기는 나를 심심하지 않게 해 준다. 40대면 이미 노안이 왔다고들 한다. 그럼에도 눈이 많이 나빠지지 않아 오래오래 책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오늘도 한 줄 읽으러 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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