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교사 인생이지만 오늘도 살아남았습니다
‘감사합니다’와 ‘사랑합니다’의 의미를 함께 표현한 단어.
이 단어를 사용할 용기를 낸 건 아이들 덕분이었다.
1학년 2반에 첫 수업을 하러 들어갔는데, 그 반은 인사가 특이하다.
“차렷, 경례! 사랑합니다~~!!”
여학생, 남학생 모두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며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심장이 두근두근 했다. 정작 아이들은 익숙해 진 듯 감격한 내 모습을 보며 자랑스럽게 웃었다. 수업 할 맛(?)이 제대로 난다고 해야하나. 없던 힘이 솟아나는 느낌이었다. 담임선생님은 신규 체육선생님이셨는데, 아이들과 학급 회의를 하고서 이렇게 정했다고 했다.
‘감사랑’이라는 말은 내가 좋아하는 분이 자주 사용하던 단어였다.
수줍게 손가락 하트를 보이며 ‘감사랑합니다’라고 끝인사를 해주던 그 모습을 보면 지금도 입꼬리가 올라간다. 좋아 하는 사람의 말을 닮고 싶은 건 사람이라면 당연할 터, 나도 당장에 사람들에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나는 감사일기를 3년째 쓰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한 것을 조금이라도 찾아내는데 훈련이 되어있다. 아침에 3줄, 저녁에 3줄, 어떤 날은 10줄을 찾아 기록을 한다. 처음에는 억지로(?) 쓰다가 이제는 쉽게 찾을 수 있다.
감사일기로 내 관점이 긍정적으로 바뀐 것이 계기가 되어 내 첫 책 <10대 인생을 바꾸는 성교육 수업>이 나왔다. 이 책의 큰 흐름 역시 감사일기를 통해 성장해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았다. 학생들과 함께 감사일기를 쓰게 된 이야기는 앞으로 계속 풀어낼 나만의 이야기 보따리이다.
나는 ‘감사합니다’ 보다 내 마음을 더 표현하고 싶을 때, ‘감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나다운 인사말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는 활동이 많아지다보니 모임이든 단톡방이든 내가 애용하는 인사말인 줄 알고 함께 사용해주신다.
지난 달 독서모임에서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라는 책을 가지고 이야기를 했었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암 환자들의 수많은 에피소드가 우리 마음을 차분히 적셨다. 한 분께서 쑥쓰럽다고 마음 속 표현을 하지 않아 후회하기 보다는 지금부터 사랑한다고 말하겠다고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야기를 듣고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왜냐하면 정작 시어머니에게는 나만의 인사말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켜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 정작 엄마에겐 사용했을까? 채팅창을 뒤져볼까 하다가 말았다. 엄마와는 이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시작은 내 인생에서 가장 바쁘게 보냈던 고3 시절이었다. 과거로 되돌아가보자…
엄마는 홀로 육남매를 키워 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뒤 철물점 혼자 맡아서 운영하느라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밥 한끼를 겨우 챙겨드셨다. 그래서 늘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부족했다. 지금도 통화는 ‘용건만 간단히’ 이다. 톡이나 연락도 용건이 있을 때만 하는 편이다.
육남매 중 4째인 나는 엄마 걱정을 안 시키면서도 아주 격렬한 사춘기를 겪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일찍 보낸 덕분에 고3때 정신을 차리면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국군 간호사관학교 시험 보려구요.”
“그래~ 거긴 뭘 준비해야 돼”
“체력시험이랑 필기요. 낼부터 아침에 학교 가기 전에 운동하려구요.”
“그럼 같이 운동할까?”
“좋아요!!!”
새벽 6시에 기상을 하면 집 근처 공원을 돌면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 운동보다 더 좋았던 건 엄마와 오고가면서 이야기를 나눈 추억이 더 크다. 그동안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랐던 내 안의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관심을 받게 된 첫 느낌이랄까?
간호사관학교 대신 간호학과를 가게 되었지만, 이 운동 덕분에 나와 엄마는 서로에게 표현을 할 줄 아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표현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던 엄마는 SNS를 시작하면서 매력을 발산하고 계신다.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 온갖 사랑표현을 하는 건 기본 소양이요. 인스타그램에서는 나의 최고의 팬이다. #나무샘 을 팔로우한 것은 기본이요. 내 피드가 올라올 때마다 좋아요!를 달아주시더니, 올해 4월에는 김미경 강사님께 초대되어 유튜브 라이브로 방송을 할때 엄마는 줌(Zoom)으로 이야기를 나누셨다. 67세인 엄마의 자식 사랑은 지금 꽃을 피우는 중이다.
다시, 시어머니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츤데레 엄마께 ‘용건만 간단히’를 교육받아온 나는 통화를 길게 하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내 짝꿍(나는 남편은 ‘남의 편’같아 짝꿍이라고 부른다)은 어머니와 매일 문자와 잦은 전화를 주고 받는 효자이다.
참고로 나는 효자인 남편을 더욱 효자가 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맡고있다. 아들 역할을 잘 하도록 하는 것이 며느리인 나의 역할이니까. 그래서 서로의 어머니께 하는 연락은 자식이 도맡아서 한다.
결혼 5년차, 시어머니와 만나면 엄마처럼 편안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게된다. 나는 시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는데, 하루는 이렇게 짝꿍 이야기를 하며 흉(?)을 보았다.(그의 별명인 ‘대산’이라 부르겠다)
“어머니, '대산'씨가 다시 배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아이코, 일 바꾸더니 앉아만 있어서 그래. 그럴 줄 알았어.”
“맞아요~ 나중에 어머니가 한 마디 해주세요.”
조금 돌아와버렸다. 시부모님께 감사한다는 표현을 그동안 꾸준히 해왔지만, 사랑한다는 표현을 잘 하지 못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독서모임에서 말씀을 해주셨던 분 처럼 나도 가까운 가족들에게 ‘감사랑’한다는 표현을 더 많이 해야겠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더 많이 표현하겠다는 나만의 선언이다. 이렇게 쓰면 지키려고 노력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