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비오는 날이 정말 싫었다. 만약 비가 오는 날 미술 시간에 서예를 하고, 실과 시간에 전등갓을 만들어야 하는 불상사가 일어난다면 무거운 벼루에, 젖으면 안 되는 한지에,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급식이라는 게 없었으니 도시락도 들어야하고, 신발 주머니에 책가방을 메고 우산까지 써야 하는 사태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비오는 날이 좋을 때도 있었다. 놀이터에서 흙으로 물길을 만들며 놀 수 있었기 때문이다. 커다란 웅덩이를 만들고 웅덩이를 중심으로 여러 갈래의 물길을 내고 좋아했다. 그 시절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건축물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까지 살았던 원당이라는 곳은 지금은 신도시가 되었지만, 그때는 아파트와 논밭이 공존하는 곳으로 여름이면 꼭 물난리가 났었다. 내가 살던 집은 비교적 높은 곳에 있어 다행히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집이 물에 잠겨 피난을 가야 하는 이웃들이 꽤 있었다. 물난리가 지나가면 가뭄이 들기도 했는데, 수도가 끊겨 집집마다 양동이를 들고 물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던 기억이 난다. 재난 중에도 한편으로는 그런 날들이 이웃들과 친목을 다지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아빠들이 줄을 서 있으면 엄마들은 평상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는 그 주변에서 술래잡기를 했던 것 같다. 가뭄이 길어진 어느 날에는 이웃들과 다같이 계곡으로 빨래를 하러 가서 물놀이를 했던 기억도 희미하게 난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나, 비가 오던 어느 날에 ‘플라나리아’를 잡아야 하는 숙제가 있었다. 다들 기억나시리라. 반으로 자르면 두 마리가 된다는, 드래곤 볼의 피콜로 같은 그 신비의 생물이! 난 플라나리아가 그렇게 작은 생물이란 사실을 몰랐다. 물에 산다는 정보 밖에는. 친구들과 비를 맞으며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더러운 웅덩이 속에서 처음 보는 길다란 생물을 발견했고, 우리는 플라나리아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다짜고짜 돌로 쳐서 반으로 잘라봤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생물은 두 마리가 되지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나중에서야 물에 사는 지렁이 종류의 생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처참하게 죽여서 미안해 지렁아.
그때의 미안함 때문일까. 비 온 다음 날 길을 걷다 보면 흙으로 미처 돌아가지 못한 지렁이가 참 많이 보이는데, 난 그 지렁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근처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가 없으면 손으로라도 집어서 흙 속에 넣어줘야 마음이 편하다. 달팽이들도 내 긴급구조의 단골 손님이다.
나이가 들면서는 비오는 날이 조금씩 좋아졌다. 우선은 비가 오는 날 굳이 무거운 짐을 들어야 할 만한 상황이 없어졌기 때문인 것 같고, 원한다면 하루종일 어디에도 나가지 않고 집에서 빗소리를 듣는 일이 가능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심지어 운전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비오는 날이 일상의 선물처럼 느껴지는 순간들도 있었다. 차 안에서 빗소리와 함께 음악을 듣는 순간이 나에겐 굉장히 소중했기 때문이다. 비오는 날 차 안에서 주로 듣는 음악 중 제임스 블레이크의 Retrograde나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 같은 곡들은 빗소리와 어우러졌을 때 나에게 최고의 감동을 주는 곡이었다. 말러 교향곡 같은 경우에는 토마스 만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인 ‘베니스에서의 죽음’에 나오는 곡으로, 전체적으로 어둡고 우울한 영화의 분위기에 말러의 음악이 마치 이 영화를 위해 존재하듯 완벽히 묻어난다. 비오는 날 감상하면 영상과 음악과 날씨가 어우러져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