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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Nov 27. 2021

 씨앗을 지켜라

(사진-부추꽃)

 나의 집에서 700미터 떨어진 곳에 사는 꽃차 선생님이 직접 받은 꽃들의 씨앗을 주셨었다. 해바라기, 메리골드 외에도 아이리스, 접시꽃, 풍선초 등의 씨앗도 주셨는데 풍선초는 못 심었고, 아이리스는 심었는데 발아를 안 했다. 풍선초의 경우 덩굴식물이라 무언가 타고 올라갈 것이 필요했는데 집에 타고 올라갈 만한 것이 없었다. 동그랗고, 초록초록한 풍선 모양의 씨방이 귀여움 폭발인데 보지 못해 못내 아쉽다. 꽃의 색과 향도 제각각이지만 그 씨앗들도 다 다르게 생겨서 처음 이 씨앗들을 봤을 때 참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 풍선초 씨앗은 하얀색과 검은색이 섞인 동글동글한 공 같아 귀여움을 자아낸다. 

 


  농부에게는 내년에 심을 씨앗을 갈무리하고 보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일이라는데, 요즘은 농부들도 씨앗을 뿌려 모종을 만들기도 하지만 바로 모종을 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재작년 강원도 양양에 있는 달래촌이라는 한정식집에 갔을 때 주인분이 제철을 맞아 수확한 쌈채소를 하나하나 소개해 주었었다. 하나같이 싱싱하고 푸릇해서 입안에 넣었을 때 몸이 살아나는 것처럼, 황홀한 향연을 경험했었다. 그때 먹었던 쌈 중에 치커리가 있었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모양의 치커리가 아니었다. 우리가 먹는 치커리는 외국종이고, 지금 먹은 것은 토종 치커리였던 것이다. (우리가 먹는 채소의 씨앗은 상당 부분 외국의 씨앗이라고 한다. 비싼 로열티를 주고 구매해 길러지는 먹을거리라는 소리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메리골드와 그 씨앗

 

 어쨌든 초보 가드너라서 잘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나도 씨앗을 갈무리해보기로 했다. 시들고 있는 메리골드를 보러 갔다. 씨앗이 보이지 않는다. 시든 꽃을 꺾어 꽃잎을 떼어내니 그 아래에 씨들이 촘촘히 차렷 자세로 뭉쳐 있다. 하나씩 분리해 통에 넣었다. 루드베키아는 샛노란 꽃을 피워내는데 그 꽃잎이 지고 꽃술 부분만 남아있다. 그 부분을 손으로 건드리니 씨앗들이 떨어진다. 


시든 루드베키아와 그 씨앗


해바라기 씨앗


 작은애가 해바라기 씨앗이 맺히면 먹어보자고 해서 시든 해바라기를 한참 쳐다보고는 했었는데, 시들어 볼품없어진 해바라기에 씨앗이 들어찼다. 상상했던 크기가 아닌 아주 작은 씨앗도 있었는데 하나 까서 먹어보니 무(無) 맛이었다. 까먹기는 번거로울 것 같아 씨앗을 뜯어 지퍼백에 담았다.


 어젯밤에는 파인애플을 먹고 있는데 과육 속에 깨소금만 한 씨앗이 보이는 거다. 퍼뜩 이것도 심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발아에 성공해 파인애플을 키웠다는 글이 있었다. 옥수수 씨앗을 발아시켜 모종까지 키워본 경험이 있으니 시도해 볼만 했다.  




 통에 키친타월을 깔고 물로 적신 다음 파인애플 씨앗을 하나씩 놓았다. 물이 마르지 않게 수분을 공급해주면 빼꼼 발아하는 모습이 보일 게다. (검색한 글에서는 45일이 걸렸단다.) 그때 흙에 심어주면 된다. 통의 뚜껑을 닫고 시원한 곳에 고이 모셔놓았다.


 지나가는 큰아들이 "망고도 한번 키워보지 그래?" 한다. 안 그래도 망고 키워보고 싶어서 진작에 검색을 했더란다. 아들아~. 망고는 속에 있는 큰 씨를 잘라 그 속에 있는 씨앗을 발아시키는 것 같아 귀찮아서 안 했는데, 나는 "담에는 망고도 해봐야겠다~" 하고 대답했다.


 그 작은 세계에서 뿌리가 나오고 잎이 나오고 꽃이 피는 것이 경이롭고 신비하다. 내년에는 올해 못 본 아이리스, 접시꽃, 풍선초와 내가 모은 씨앗까지 모두 마당에 심을 것이다. 내가 지킨 씨앗이 나에게로 돌아와 나를 더 풍요롭게 하는 이 작은 세계, 정말 소중하다. 


씨앗을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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