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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Nov 30. 2021

무엇이 당신을 불편하게 하는가

(사진-할미꽃)

 대학생 때 신촌의 왁자지껄한 한 호프집에서 동아리 친구들과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글을 쓰고 합평을 하는 동아리였던지라 고만고만한 인문학부 친구들이 모였지만, 조금씩 술기운이 돌았는지 제법 분위기가 무거워지고 누군가가 가난에 대해 입을 열었다.


  가난한 사람의 고통은 얼마나 큰가.


 "가난한 사람이 느끼는 고통이 더 크다. 밥도 못 먹고, 살 집도 없다면 그 고통이 얼마나 크겠는가?",  "하지만 고통은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고 수치화할 수 없다. 부자라고 해도 고통이 없지 않다.".  이런 말을 옥신각신 해가며 목소리는 점점 고조되어 갔다. 하나의 명쾌한 해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 당시 우리는 상대적 고통과 절대적 고통, 상대적 가난과 절대적 가난에 대해 그 나름 진지한 고찰을 했던 것이다.

 



 이와 연관해 지난주에 겪은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나라에서 지하수를 사용하는 가정에 수질검사와 소독 등을 해주는 제도가 있어 지난봄에 신청을 했었다. 여름쯤 수질 검사를 하러 왔고, 지난주에는 소독을 해주겠다며 두 분이 찾아왔다. 아이들 아침을 챙겨주고 서둘러 뒷마당으로 나갔더니 소독만 한 것이 아니라 관정 바닥을 진공청소기로 청소하고, 동파 방지를 위해 파이프를 보온재로 감싸주었다. 게다가 관정 뚜껑도 녹슬지 말라고 칠을 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서비스에 놀라기도 했고, 감사하기도 해서 이런저런 말을 건네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담당자분이 질문을 던졌다. "굉장히 젊으신데 빨리 내려오셨네요. 양평 살기 불편하지 않으세요?" 순간 흠칫 놀라 당황스러웠지만, 얼결에 "적응이 돼서 괜찮아요. 30대에 내려온 걸요."라고 답 했다.


 양평에 내려오면서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 있었다.


불편함과 편안함이란 무엇인가?


 나에게는 사람이 북적거리는 것이 불편하다. 나에게는 번쩍번쩍하는 도시의 네온사인이 불편하다. 나에게는 위층, 아래층에 사람들이 사는 것이 불편하다. 나에게는 수많은 탈것이 불편하다. 나에게는 도시가 불편하다.


 조용히 혼자 있는 것이 좋은 나에게는 양평이 편하다. 도시의 네온사인 때문에, 흥성거리는 도시의 분위기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기에 나에게는 어두운 양평의 밤이 편하다. 위층, 아래층에 어린아이들의 소리가 들릴까 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기에 나에게는 양평이 편하다. 수많은 자동차, 버스의 매연에 숨을 쉴 수 없었기에 나에게는 양평이 편하다.


 어떤 사람에게는 장을 보러 10분을 달려가야 하고, 아이들 픽드랍을 해주러 역으로 왕복 운동을 해야 하는 이런 현실이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이런 불편함이 10 정도의 강도라면 나에게는 2 정도의 강도이다. 1의 강도 때문에도 힘든 사람이 있는가 하면 2의 강도여도 괜찮은 사람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편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어떤 이에게 불편한 것이 어떤 이에게는 편하다. 서로 다를 뿐이다.


 전원생활이 만능키인 것처럼 로망의 대상이 되는 것도 경계해야 하겠지만, 왜 저러고 사나 하고 별종처럼 바라보는 시선도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도시에 사는 사람은 "왜 도시에 사세요?"라는 질문을 받지 않지만, 나는 "왜 전원에서 사세요?"라는 질문을 받는다.(순수하게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 아니라 도시 예찬과 도시 복귀를 강권하며 던지는 질문) 가끔 사람이 없으면 무섭지 않냐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그러면 나는 농담 삼아 "사람이 제일 무서운 거예요."라고 답한다. (산길을 걸을 때 차라리 혼자가 좋지, 누군가가 나타난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깜짝 놀라겠는가.)

 

 관정 담당자분의 과분한 서비스에 감사했다. 편안함에 대한 사색을 이어갈 수 있도록 화두도 던져 주어 감사하다. 그러나 그분의 질문에는 다시 답하고 싶다.

  저는 이곳이 편해요. 나답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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