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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Nov 02. 2021

사랑은 나무를 타고

요즘 아침 일찍 마당에 나가면 데크 위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 있다. 벌써 계절이 이렇게 변해가는 걸까. 화려하게 피어났던 꽃들도 당분간은 떠나가고, 모든 생명체가 숨을 죽이고 시간을 견뎌내는 추운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서리는 그 첫 징표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아직 마당에는 데이비드 오스틴 장미, 청화쑥부쟁이, 개미취, 메리골드, 삼색 원추리꽃이 피어있다. 영화 말미에 깜짝 선물로 주어지는 쿠키 영상처럼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여운을 즐기게 해주는 이 꽃들이 추운 계절을 위로해준다.

 

 그러고 보니 이 집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지 8개월 정도 흘렀다. 집을 꾸미는 데 한 달, 마당을 가꾸는 일은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이제 곧 장미를 볏짚으로 감싸주고 내년에 추가로 심을 꽃이나 나무들을 상상하며 겨울을 보내지 않을까 싶다. 꽃들도, 나무도 더 풍성해진 내년의 마당을 상상하면 벌써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간다. 이전에 전원주택에서 살아본 경험도 있지만, 내 마당이 아니었던지라 무언가를 심고 가꾸기가 어려웠는데, 이 집에서는 내가 구상한 것이 현실로 펼쳐지니 몸은 고돼도 마음은 뿌듯했다. 그리고 그 뿌듯함은 주변분들의 사랑으로 더욱더 진해졌다.  


 선물, 한편으로는 설레지만 한편으로는 골머리를 앓게 되는 단어다. 취향이 확고해서 선물이 마음에 안 들면 대놓고 면박을 주는 가족들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집에서 꽃, 나무 선물을 받아 보니 나무, 꽃만큼 좋은 선물이 없다.


엔드리스썸머 수국
꽃이 참 귀여운,  또 다른 수국

 

하얗게 피어난 목수국
삼색 원추리
삼잎국화
설구화
데이지



 수국은 월동이 어려운 식물이라 요즘은 월동이 가능한 엔드리스썸머 수국을 많이 사는 것 같다. 나는 앤드리스 썸머 수국과 사진 속 귀여운 수국, 목수국을 선물 받았다. 수국은 토질에 따라 꽃색이 붉게 혹은 푸르게 나오기 때문에 수국용 비료를 넣고 함께 식재해주었다. 시간이 지나니 없던 꽃이 갑자기 짠하고 나타났는데 그때는 서프라이즈 선물을 받은 것처럼 또다시 기뻤다. 나무, 꽃을 볼 때마다 선물해준 분이 생각나고, 꽃이 피면 꽃이 핀다고, 잎이 나오면 잎이 나왔다고 소식을 전하며 선물 주신 분께 연락을 했다. 꽃이 피어서 즐겁고, 나에게 사랑의 선물을 보내준 분도 생각하게 되니 그것도 행복했다.


 원추리는 봄에 여린 잎이 나오면 따서 나물로 무쳐 먹었는데, 꽃이 피는 삼색 원추리는 처음 알게 되었다. 시인 선생님께서 본인 마당에 있던 이 원추리를 캐서 우리집 마당에 직접 심어주었다. 오랫동안 지켜봐도 변화가 없길래 감감무소식에 지쳐갔는데 몇 달이 지나니 노오란 꽃을 피워냈다.


 삼잎국화는 길에서 처음 만난 꽃이었다. 문호리 가는 길에 키가 큰 노란 꽃들이 무리 지어 있길래 무슨 꽃인지 궁금했는데 꽃 선생님 댁에 가서 삼잎국화라는 걸 알게 되었다. 선생님이 마당에 있던 작은 삼잎국화를 나눔 해 주셔서 마당 한 켠에 심었는데 잎 몇 개가 기세 좋게 올라와 주었다. 삼잎국화는 키가 크고 꽃이 많이 열리니 내년이면 볼품없는 마당 구석을 밝게 만들어주리라.


 설구화는 불두화와 굉장히 유사한 나무다. 몽글몽글 하얀 꽃이 피어나는데 내가 보기에 이 둘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잎 모양인 것 같다. 설구화 잎은 불두화보다 더 뾰족해서 귀여운 느낌이 든다. 가을이 되니 그 잎이 붉게 물들었다. 아직은 작은 묘목이지만 시간의 힘을 얻으면 더 화사하게 피어날 것이다. 본인이 좋아하는 나무라며 설구화를 보내주신 시인 선생님, 이래 저래 선생님 생각을 많이 한 올해였다.    


 데이지는 하얀 꽃도 예쁘지만 번식력도 좋아서, 오며 가는 사람들이 즐기라고 집 밖 공터에 심어주었다. 밖에만 두기 아까워 몇 가닥을 잘라 화병에 꽂아 집안에 두니 창틀이 환하다. 9년 단골집인 국수역 근처 한정식집 <장독대> 사장님이 한가득 데이지를 캐서 주었다. 데이지의 세가 약했던 건지 잡초가 너무 무성해져서 내년에도 데이지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꼭 피어나 주었으면 좋겠다.



 나무와 꽃 선물에는 그분들의 사랑이 담겨 있다. 게다가 그 식물은 사라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며 그분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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