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침햇살 Jul 15. 2024

큰 시누의 해외여행

몹쓸 년 같으니라고!

"고모, 며칠 째 어머니 전화 안 받으시네요,

혹시 어디 아프신 건가 걱정돼서요."




막내 시누는 시어머니 가까이에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시어머니에 관한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막내시누와 의논하였다.

"뭐 밭에 갔겠지요, 원래 밭에 가면 전화 잘 안 받아요."

"아, 그러면 다행이고요. 고모도 별일 없죠?"

"엄마도 나도 별일 없어요, 언니가 문제지."

"큰고모요? 왜요?"

"지금 의식이 없어요, 중환자실에 들어간 지 하마 며칠 됐어요."

"왜, 무슨 일 있었어?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갑작스러운 소식에 가슴이 미어졌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사 년 만에 장남인 내 남편이 소천했고 또 사 년 만에 갑자기 큰 시누가 쓰러진 것이다. 평소 지병이 있었다면 그려려니 하지만 아무 문제 없이 건강했던 사람이 지주막하 출혈로 쓰러져 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남편 잃은 슬픔이 채 가시지도 않은 내가 충격받을까 봐 큰 시누가 깨어나면 알리려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깨어나지 않아 할 수 없이 말해준다는 것이다.



큰 시누는 내겐 로망의 대상이었다. 나보다 세 살 많았지만 나이가 어려도 큰오빠의 부인이니 내게 깎듯이 '새언니'라고 부르며 맏며느리 대우를 해주었다.  신혼 초 남편 없이 가풍을 익히기 위해 혼자 시댁에 내려갔을 때 시댁 식구 중 유일하게 내 편이 되어 소리를 내주었던 든든한 사람.

시부모님은 모두 밭에 가시고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도 하지 않고 새소리만 외롭게 들리던 여름날이었다. 툇마루에 앉아 먼산만 바라보고 있던 내 눈에 들어온 큰 시누의 모습은 삼십 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날씬하고 훤칠한 키에 하얀 피부, 세련된 머리, 화사한 랩스커트에 양산을 쓰고 걸어오는 낯선 여자.

'안동에 저런 여자도 있네? 누구지?"

호기심 반 기대반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게 아닌가!

그 사람은 바로 안동에서 제일 예쁜 큰 시누였다.

어린 새색시였던 나는 아직 결혼하지 않고 멋지게 살고 있는 큰 시누의 모든 것이 부러웠다. 물대신 콜라를 먹는 것까지.  

성격은 또 얼마나 친절하고 싹싹한지  친척들까지 우리 큰 시누라면 싫어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무료한 여름 갑자기 찾아와 시원한 소나기처럼 내 속을 위로해 주던 큰 시누가 하루아침에 뇌혈관이 터져 생사를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교회는 일천번제 기도팀이 있다. 12명 정도 팀을 이루어 새벽, 낮, 저녁에 매일 릴레이 기도를 한다. 매일 한 번씩 천일을 작정한 기도팀이다.

나도 그중 한 멤버이기에 긴급 중보기도를 부탁했다. 뿐만 아니라, 새벽기도, 수요기도회, 금요철야 등 기도 할 때마다  전교인이 일면식도 없는 큰 시누를 위해 기도했다.  그렇게 기도 한지 일주일 정도 됐을 때 시누는 의식이 돌아왔다.




"고모, 큰고모는 좀 어때요?"

"일단 의식은 돌아왔는데, 산소호흡기 떼고 자가 호흡이 되면 좋겠어요."

"그래요, 우리 교회에서 계속 기도하고 있으니까 자가 호흡 기도도 부탁할게요."

그렇게 우리  중보 기도는 계속되었고 그 주 금요일에 큰 시누는 자가호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큰 위기는  넘겼으나 정상적인 기능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큰딸의 소식을 어머니께 알리기란 쉽지 않았다.  큰아들을 가슴에 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큰딸까지! 어머니가 받을 충격을 생각하면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고민 끝에  일단 큰고모는 회사에서 해외 연수 갔다고 거짓말을 시킬 수밖에 없었다.

"해외연수 갔다고 전화도 못하나!"

한 달이 지났을 때 계속 연락이 되지 않는 큰딸이 괘씸한 어머니는 '몹쓸 년'이라고  화를 내시며 죄없는  핸드폰을 탓하기라도 하듯 세차게 두들기셨다. 추석 전에 쓰러진 큰 시누는 추석이 지나도 뇌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더 이상 어머니를 속이는 건 무리였다.




"아이고, 아이고, 흑흑흑" 그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또 한 번 깊은 절망감에 빠졌다.

"엄마, 그래도 이제 손가락은 움직인다."

" 그러면 뭐하노! 저렇게 누워서 아무것도 못하는데!"

" 엄마, 의사가 시간이 지나면 좋아진다고 했으니까 좀 더 기다려 보자!"

작은시누와 시동생은 이렇게 저렇게 어머니를 안심시키느라 애를 썼다.



벌써 큰 시누가  쓰러진 지 일 년이 다 되어간다.

간병인의 도움을 받았으나 욕창이 심해 급기야 뼈가 다 드러나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생겼다. 그것을 본  큰 고모부는 충격을 받아  직장을 그만두고 여한이라도 없게  아내에게 올인하고 있다.

잠도 못 자고 몇 개월 동안 하루에 두 시간 간격으로 깨어 체위를 변경해 주고 있다. 그 정성으로 욕창은 어느 정도 치료가 되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지만 가족들은 서로 격려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기도하며 고난의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죽은 자를 위해(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