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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햇살 Jul 24. 2024

너무 늦었네요

형에게 못한 말

4월 7일 주일

5년 만에 같은 날짜 같은 요일의 그날이 돌아왔다.

모든 게 꿈 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편의 기일엔 어김없이 안동과 대구에서 남편의 형제들이 올라왔다.

그런데 올해는 잠잠하다. 큰 시누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모두들 지난 아픔까지 감당할 힘이 없었기에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던 거 같다.




"여보세요?"

"네, 형수."

"네."

"사는 게 바빠가 형 기일인데 올라가지도 못하고

미안해요."

"아니에요, 벌써 5년이나 됐는데.... 괜찮아요."

"나도 이제야 집에 들어왔네요, 요즘 사는 게 그래요, 쉬는 날에는 안동 가서 일하고 안동에 일 없으면 절에 가서 일해야 하고요."

열한 시가 넘어 거나하게 술 한잔하고 시동생이 전화를 했다. 큰 시누가 쓰러지고부터 시동생은 안동 어머니댁에 더 자주 내려가고  동생이 빨리 깨어나길 바라며 절에도 더 자주 간다.  

'귀신 잡는 해병대' 출신답게  전날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동트기 전 일어나 산을 타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번엔 기운이 쭉 빠진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직장 다니는 사람이 주말엔 좀 쉬어야지 이렇게

 늦게까지 일하고 어쩌려고 그래요!"

육체의 고단함에 술까지 더 했으니 육십을 바라보는 사람이 견딜 수 있을까?

괜한 염려가 엄습해 왔다.

"이젠 힘이 드네요, 그래서 술 한잔 했어요."

"힘이 들 나이죠... 형 몫까지 하려니 더 힘들죠,

그래도 건강관리 잘해요. 어머니에게  이제 누가

남았어요, 도련님 밖에 없잖아요, 또 어머니 가슴에 못 박는 일 하지 말고... 술도 좀 줄이고요."

"형수요, 걱정마이소. 나 아직 거뜬합니데이!

건강은 원래 내가 타고 났다아니까!"

"건강 장담 하지 말아요, 형 보면 몰라요?"

마음속 깊숙이 가라앉았던 슬픔이 올라와 내 남편도 아닌데 잔소리가 늘어졌다.

"형수요, 힘들어도 우리 조그만 힘 내입시더, 이제 곧 선남이도 깨어날끼고, 아무튼 형 만나면 내가 할 얘기가 많아요."

"어쨌든 도련님 건강 잘 챙겨요. 나는 이제 괜찮아."

"네, 형수 어쨌든 미안해요, 나중에 시간 내서 한번 올라갈게요."

'별일도 다 있다, 살아생전 형제끼리 뭐 말하는 걸 봤다고,  도련님도 이제 많이 지쳤나 보다.'

평소 시동생 답지 않는 음성과 분위기에 한참을

의아한 마음이 들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시동생이 대구에 살다 보니 아무래도 시댁일은 장남인 우리보다 시동생이 알뜰히 잘 챙겼다.

형보다 남자다운 성격이라 집안의 힘쓰는 일은 모두 시동생 몫이었다. 그러다 보니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일구고 살아도 시부모님은 걸핏하면 시동생을 불러 내렸다. 문중산의 벌초, 농사일, 본가의 크고 작은 일은 시동생이 아니면 안 될 정도였다.   그나마 형이 있을 때는 묵뚝뚝한 형제이지만 마음 붙일 곳이라도 있었는데 형마저 하늘나라로 떠나고 싹싹한 여동생마저 의식을 못 차리고 누워있으니 혼자 짊어진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까똑, 까똑!'

4월 24일 수요일 아침.  대학원 기숙사에 있는 큰아이가 평소 답지 않게 계속 카톡을 보내왔다.

'엄마 별일 없지?'

'응 별일 없어. 너는?'

'응, 나도 별일 없어.'

'그래, 열공해!'

'응 엄마,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시답지 않게 이런 내용으로 수차례 카톡을 보내는 큰아이 행동이 조금 이상했지만 여느 때와 같이 근무를 하고  밥을 먹고 퇴근을 했다.

"엄마, 저녁 먹었어?"

"응, 근데 낮에도 그렇고 오늘 너 왜 그래? 혹시 무슨 일 있어?"

퇴근하고 집에 오니 큰아이가 이번엔 직접 전화까지 하는 게 아닌가!

"엄마, 놀라지 말고..."

"왜? 무슨 일인데! 혹시 큰고모가 잘못된 거야?"

"아니."

"그럼 왜? 무슨 일이야 빨리 말해봐!"

"작은 아빠, 작은 아빠가 돌아가셨대!'

"뭐? 언제! 언제! 왜?"

"나도 아직 잘 몰라, 낮에 지원이한테 연락받았는데 엄마 놀랄까 봐 지금 전화하는 거야."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하지? 나... 어 어떻게 해야 하지!!"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으로 통곡할 수밖에 없었다.




"신이 있기는 있는 겁니까? 도대체 사람 숨이나 쉴 수 있게 해줘야 할 거 아닙니까? 이거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냐고요?"

고인의 죽음 앞에서 큰 고모부의 원망 섞인 외침은 슬 메아리가 되어 모두의 가슴에 송곳처럼 박히고 있었다.

"조상을 그리 잘 모셨는데 이 꼴이 뭐야! 우리는 착하게 산거 밖에 없는데... 이제 조상이고 부처고 다 필요 없어!"

그 순했던  막내 시누는 독기 어린 눈빛으로 통곡하고 있었다.

'하나님, 당신의 뜻이 무엇입니까!'

나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튼 형 만나면 할 얘기가 많아요.'

마치 형과 만남을 약속이라도 한 거처럼  시동생은 형을 따라 같은  4월에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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