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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햇살 Oct 13. 2024

 뭘, 알아야 믿지!

31년 만의 고백

"얘, 너는 남편도 죽고 없는데  아직도 시댁에 가니? 대단하다, 대단해"

그 말이 이제 칭찬이 아닌 비아냥거림으로 들렸다.

' 그래, 맞아. 내가 무엇을 위해서!'

31년간의 안동김 씨 맏며느리 노릇을 포기하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마음이 답답해졌다. 일천번제 기도 (천일 작정기도) 중이었던 나는 이 문제를 혼자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께 속시원히 털어놓고 기도하기로 했다.

"하나님, 저 정말 억울하고 섭섭해요. 목사가 될 장손 앞에서 굳이 제사를 강행하신 시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어요. 완전 나를 무시하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거 아닌가요? 이제 저는 더 이상 시댁 구원을 위해 기도하지 않겠어요! 가지도 않겠어요!!

 제 아이들과 명절엔 해외여행 다니면서 속 편하게 살래요. 근데 하나님, 이제  저 어떻게 해요?"

하며 논리도,  스토리전개도에도 맞지 않는 횡설수설 기도를 해댔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내 마음에

'너도 엄마잖니, 너도 여자인데...' 하는 마음을 주셨다.  뿐만 아니라 성경을 펼 때나 말씀공부를 할 때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세아 6:6) 말씀을 보게 하셨다. 인애란 ' 어진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이 내 삶의 주권자 이심을 믿으며 하나님 마음으로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기도 할 때마다 하나님은  시어머니를 향한  거부 할 수 없는  긍휼의 마음을 주셨다.


'사랑 없이 시어머니 구원을 위해 기도 하는 건 하나님이 바라시는 일이 아니야. 어쩌면 그 이유로 31년간 내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던 건 아닐까?'

하나님은 내 힘으로, 내 욕심으로 시댁식구를 위해 기도 해왔던 모든 일들을 회개하게 하셨다.

'하나님을 결코 앞서지 않으며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이 하실 일을 믿고 다시 시작하자.'

하나님은 기도 중에 원인과 해결방법까지 알게 하셨다.


 6월 6일 현충일을 앞두고  시어머니와 함께 안동에서 가까운 곳이라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차를 하루 더 내고 이틀정도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안동으로 향했다.

'구원, 복음 이런 거 말고 어머니 마음만 살펴드리자'

라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큰오빠, 작은오빠, 언니까지.......

시댁 근처에 살고 있는 막내시누 또한 깊은 우울감과 분노로 인해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다.

누군가 어깨만 스쳐도 깊은 슬픔과 억울함, 분노에 눈물을 쏟고 있었다. 다행히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먼저 남편을 잃게 하셔서 시어머니와 막내시누의 마음을 이백프로 공감하게 하셨다. 그들을 향한 나의 위로가  절대 거짓이 될 수 없는 이유를 갖게 하신 것이다.


 막내시누 부부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가까운 영덕에 가서 맛있는 대게도 먹고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도 여전히 어머니는  눈을 뜨자마자 새벽부터 밭에 나가 일을 하고 있었다.

식사는 죽지 않으려고 마지못해 꾸역꾸역 삼키는 정도였다.

"어머니, 이제 힘드신데 농사 그만하시면 어때요? 이제 도련님도 없는데 그 농사 다 어떻게 하시려고요!"

라고 말하니  어머니는 밥을 힘겹게 넘기시며

"아이고, 내가 그거라도 안 하면 어찌 사노, 그거라도 안 하면........"

"......."

그렇다 어머니는 농사가 좋아서 자식을 생각 안 한 게 아니었다.  막내며느리로 시집살이하면서 일 년에 열 번이나 되는 제사에 까탈스러운 남편 비위까지 맞춰가며 살았던 모진 세월, 밭에 나가 아무 생각 없이 땅을 파고 김을 메야 살 수 있었던 것이었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아니, 여자인 내가 같은 며느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미치지 않고 살아온 게 이상할 정도였다.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리고 어느새 내 손은 거칠고 주름진 어머니의 손등을 덮고 있었다.

"어머니,  얼마나 힘드셨어요. 제가 어머니를 위해 31년 동안 기도해 왔어요. 어머니 제사도 그만큼 지내셨고 절에도 그만큼 다니셨으니 이제 이 며느리 소원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저랑 예수님 믿고 같이 교회 다녀요."

"내도 교회 다니고 싶었다. 석보 고모도 날 보기만 하면 예수 믿으라 하지, 교회아주매도 그러지, 근데 뭘 알아야 믿을게 아이라!"

어머니의 뜻밖의 고백에

'할렐루야! 하나님, 감사합니다!'

속으로 쾌를 부르며

" 맞아요, 어머니. 뭘 알아야 믿지요. 그럼 저랑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교회에 나가 예수님 믿어 보실래요? 제가 한 달에 한 번 안동에 내려올게요."

나도 모르게 한 달에 한번 안동에 내려올 것을 어머니와 약속했고,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예수님을 믿기로 약속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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