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뒤에서

그림자

by 레몬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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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행복했다.

그저 곁에 있을 수 있으니

비록 멀찌감치 떨어져

만질 수 없고, 느낄 수 없을지언정

그와 항상 함께,

발끝 하나 겨우, 힘겹게 붙어있을 뿐인데도,

그의 곁에 붙어있다는 단, 하나만으로도

그 붙은 한줄에

벅찬 마음으로

온통 까망으로 표정하나 보여줄 수 없어도

온종일 설레며 바람결 따라 살랑이곤 했다.



간절히도 사랑했다.

온전히 그의 모습 그대로

계산하지 않고, 따지지 않고

내게 보이는 너, 그대로를 내 안에 담고

그를 닮아가고, 그의 영향력 속에 갇힐지언정,

그의 모습 그대로, 송두리째 사모했다.

너는 나를 보며 네 삶을 위로받고,

나는 너를 보며 내 삶의 기쁨을 찾았다.



그러나 그림자의 운명이란

과연 사무칠 수밖에.



표정을 들키면, 마음을 들키면

곁에 있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을까 봐

그저 하염없이 너의 뒷모습만 바라볼지언정


혹여나, 나를 떨쳐버릴까, 떨어지고 싶진 않아

마음을 숨기고, 하고 싶은 말을 참아내고,

깊은 울음을 삼켰다.


그렇게 간절해도, 그 마음이 무색하게도

해가지면

그림자의 존재는 사라지고 만다

너의 곁에서 너의 세계에서,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존재처럼

사라진 게 아니지만 사라진 채,


보여줄 수없고 소리조차 낼 수없는 밤

모두가 잠든 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밤을

까만 그림자는 하얗게 지새웠다. 홀로



비우고 비울 수 있을까

털어내고 쏟아내 보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운 자리마다 채워지는 건

나의 까망을 빈틈없이 가득 채운

그리움


그림자에게만 보이는 한밤 새벽의 별은

사실은 별도, 달도 아닌

그저 그렁이는 누군가의 눈동자가 만들어낸

그놈의 그리움이었으리라.



아침이 되면

말간 해가 나와 다시 나를 비출 테니

티 내지 말아야지, 들키지 말아야지

부어오른 눈두덩이도,

서운해 튀어나온 입술도,

화난 눈썹도 언제 그랬냐는 듯

싸악 숨기고 그에게 아침인사를 한다.

나는 변함없노라, 아무렇지 않노라,

괜찮다, 괜찮다 세상 씩씩한척을 가득 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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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슬픔이 그에게는 닿지 않길 바라며

나의 전부인 그만은 행복했으면 해서


행여나 그림자뿐인 나의 존재만으로도

그의 걸음이 힘겨워질까 그의 어깨가 무거워질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나는 커졌다 작아졌다 할지언정

해가 떠있는 동안만큼은

그림자 밑둥 한줄 너와 붙어있고

뒷모습일지언정 바라볼 수 있기에



나의 물음은 소박하고 애틋했지만

너의 답은 여지없이 차갑고 아프다


그렇게 그림자는

제 몸이 까만 건지

제 속이 까맣게 타버린 건지

언제부터 까망인지

그조차 희미하게,

타버린 숯처럼

하염없이 하염없이 그 뒷모습 바라 보고 있네



안아줄 수도 없는

쓰다듬어줄 수도 없는

우는 건지 웃는 건지 알아 볼 수도 없는

애간장이 녹아내리는

그 모습이 안쓰러워

가끔 구름이 하늘 위에 큰 그늘을 만들어 주는 날이면


그림자는 그제야 들키지 않으려

아무도 보지 않는 틈

홀로 그리 어깨를 들썩였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햇살아래 반짝이는 그를 바라보고 그리워하고,


아무리 간절해도,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그림자는

오늘도 그가 바라보고 있는 햇살의 반대편에서

그가 햇살을 바라보듯,

그의 뒷모습을, 너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속절없이, 바라보고 있다.



해가 지면 사라질 운명 따위

두렵지 않다 오기를 부리며

사실은 혼자 떨고 있는 게

내 눈에만 보여 나는 너무 속이 상한데,


너는 내게 말한다.

나는 말이지....


한때는 행복했던게 아니라, 여전히 행복할 것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명을 거슬러 의지대로 한발짝도 달려갈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랑하는 그의 뒤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 질 녘 눈시울을 붉히며 사라질 준비를 하는

너를 바라보며

나는 가슴이 뭉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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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퇴근길
퇴근길에 오가며 지나치는 상가건물 근처에서 퇴근무렵 항상 큰 나무와 그림자, 그리고 해질녁의 햇살을 보거든요.
노을지는 저녁이 주는 애틋함때문인지, 며칠내내 그림자를 보며 떠올렸던 마음을 메모해두었는데
오늘 조심스레 꺼내봅니다.
어제 연재일이었는데 지각했어요 ^^
대신 촉촉함을 선물로 드립니다. 즐거운 한주 시작하세요! ^^
늘 마음으로 함께 읽어주시는 구독자분들께 감사해요!



※ 모든사진은 직접 촬영한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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