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아래 잎이 밟히고 시들면,
어김없이 위에선 연둣빛 새싹을 틔워내고
봄꽃이 이젠 다지고 말았겠지 싶었지만,
여지없이 다른 꽃이 새로운 얼굴로 화사한 봉우리를 틔워낸다.
끝과 이어진 수많은 또 다른 시작을 마주하며
위안을 얻는다.
인생도 그러했지.
나도 그러했지.
담쟁이덩굴은 저 아래 절벽아래 여리한 줄기 한두 개로 시작해서
이제 저 으름장 놓는 큰 바위마저 뒤덮고 있다.
영향력.
누군가의 마음에 내가 들어간다는 것도
내 마음에 누군가가 들어온다는 것도
하룻밤 사이의 기적이 아닌,
소리 없이, 조금씩
빗질해놓은 하늘
엄마가 어릴 때 엉킨 머리를 살살 빗어내려 가며
한 올 한 올 풀어가며 쫙 펼쳐놓은 머리카락처럼
솜뭉치처럼 얽히고설켜있던
걱정 가득 뭉게구름을
곱게 빗질해놓은 것만 같은 하늘
내 마음도 그런 소망 하나 품고 산을 오르고 하늘을 올려다보지
가지런히 내 마음에도 빗질을 해주고 싶어서
이 맛에
이걸 보려고
오늘의 주인공은 나야 나.
누군가 떨어뜨린 방울토마토 한 알
이 산 위에서 맛보려
아껴 아껴 짊어지고 와
드디어 꺼내 입에 넣을 찰나
놓치고만 누군가의 소중한 한 알
빨강이 너무나 선명하고 고와
가던 발길을 멈추고 바라봤다.
누군가의 애틋함과 안타까움.
하지만 오늘 밤 숲 속 작은 누군가엔
반갑고 벅찬 행복이 될지도
누군가에게 안타깝고 아쉬운 인연이
누군가에겐 벅차고 감사한 인연이 될지도.
그러니
떨어진 운명을 탓하지도, 슬퍼하지도 마
길게 늘어선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저 구멍 속으로만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 들어온다.
겨우 내 키만 한 담장일 뿐인데
세상 바람 다 막아서고 있던 담장.
이리 시원한 바람이 부는지도 모르고 지친 걸음 걸어가다
저 구멍 앞에 서면
세상 달콤한 바람이 온몸을 감싼다.
아! 숨. 구. 멍.!
빼꼼 뚫린 구멍
비록 크지 않아도
크지 않아 애틋하여도
그 앞에서만은 아! 감탄사가 나오는
여러 말 필요 없는 그런 숨구멍
고단하게 살아내는 너의 이마의 땀을 식혀주고
막힌 가슴을 뻥 뚫어주는
반갑고 힘이 되는 숨구멍
드문드문 난 구멍 사이 바람을 느끼는 동안
너는 잠시 시름을 내려놓고,
나는 잠시 바람으로 너를 휘감고.
그렇게 우리가 만나는 순간
그렇게 우리가 만나는 숨구멍.
새 한 마리가 한참을 애타는 소리를 내며 지저귄다.
누굴 부르는 것인지, 찾는 것인지
고요한 산을 삼켜버릴 것 같은
간절하고 애타는 목소리가 하도 슬프게 들려
가던 길을 멈추고 고개를 꺾어
함께 한참을 두리번거려 봐도
온 산을 채우는 건 새 한 마리의 목소리만 가득할 뿐,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 보이질 않는다.
안타깝다 하고 바라보는 중
"날았다" 날아올랐다.
한껏 응원을 담아보내며
용감한 너의 날갯짓을 눈에, 마음에 담다.
그래, 기다리지 말고, 찾아가렴.
2025년 5월 마지막 날
이번 달 인왕산의 감상이었어요.
매달 한 번씩 가니 매번 똑같을 것 같지만
매번 새롭고, 매번 깨달음을 주는
제겐 고마운 곳입니다 ^^
※ 인왕산 지난달 감상은 첫 연재글이었어요 ^^
https://brunch.co.kr/@nana0974/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