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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명문대 루저의 고백

프롤로그

by 나날 곽진영

그럭저럭 살만한 집안. 크게 못나지 않은 평범한 외모.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고 은근히 부모의 자랑이 되었던 외동딸. 음악, 체육 다방 면에서 재능을 보였으나 하필이면 공부도 잘해서 학업으로 진로를 정한 팔방미인. 자화자찬하려니 손끝까지 발갛게 달아오르는 기분이긴 하지만 그때의 나는 자신을 그렇게 여기며 살았다.

입시의 정점, 수능을 보고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학교에 입학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그해 그 대학에 입학한 아이는 나 하나였다. 서울에서 제일 학업이 떨어지는 동네에 살면서 나름 선방했다. 늘 노력보다 결과가 좋으니 내 인생은 앞으로도 이렇게 탄탄대로일 거라 여기며 제법 세상을 만만하게 여겼지만 좋은 시절은 거기까지였다.


대학에 가서 처음 느낀 좌절감은 왜 이렇게 잘 사는 아이들이 많을까였다. 나는 학교가 끝나면 과외를 하러 뛰어야 하는데 왜 저 아이들은 캠퍼스를 누비며 즐기고 있는 걸까. 집안도 좋은데 얼굴까지 예쁜 저 애들은 왜 영어도 잘하는 걸까.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은 절반 이상 알아들을 수 없었다.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다니는 아이들 사이에서 나만 무채색의 사람이 된 것 같았다. 80명 이상이 입학한 여고의 아이들은 수시로 동창회다, 반창회다, 모임이 있었다. 홀로 자부심을 느끼던 나는 이곳에서 외톨이가 되었다. 어느 날부터 학교로 가는 버스가 지옥행 같았다. 늘 몇 정거장을 앞두고 버스에서 내렸다. 무작정 공원을 걷다가 도서관에 들어가 책을 읽고, 낮잠을 자다가 집에 돌아오는 날이 늘어났다. 걱정되면서도 회피해 버리는 날들이었다. 학점은 당연히 엉망진창이었다.

입시, 명문대 입학을 목표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을 달렸다. 그 나머지는 생각해 본 적도, 누구에게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저 대학만 가면 모든 게 잘 풀릴 거라는 - 살도 빠지고, 남자친구도 생기고, 좋은 곳에 취직하고 - 어른들이 말하던 그 환상을 그대로 믿었다. 애쓰지 않아도, 노력하지 않아도, 대학만 가면 잘 살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20대의 나는 늘 불만으로 가득했다. 누구에겐가 화내고, 나 자신을 변명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연애도 건강하지 못했고, 취업은 당연히 잘되지 않았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쯧쯧” 혀 차는 소리가 대못처럼 박혔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한 번, 딱 한 번 오답을 체크했을 뿐인데 사방이 막힌 기분이었다. 다 포기하고 사라져 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시시때때로 밀려왔다.

사회는 우리에게 언제나 명확한 정답이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주어진 정답에서 벗어났을 때, 우리는 자신을 여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성적, 직장, 연애, 결혼, 돈. 그 모든 기준에서 비켜난 자신을, 감히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까.


왜 하나의 길만을 옳다고 믿어왔을까?

왜 기준에서 벗어난 자신을, 때로는 타인을, 그렇게 쉽게 평가하고 비난할까?


개인의 문제 같지만, 사실 이 문제는 사회의 규칙과 기대가 만들어낸 결과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길로 가야 한다는 집단적 믿음은 개인의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다. 사회는 쉽게 변하지 않기에,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여전히 정답에 매달리고, 여전히 서로를 재단하며 산다. 그 안에서 나 자신을 괜찮다고 인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악순환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더 많은 성공인가, 더 큰 확신인가, 아니면 불완전한 나를 견뎌내는 용기인가.


쉽게 답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질문을 외면한 채 지나온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이 질문을 붙들고 서 있다. 그때의 나에게,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더는 외면하고 싶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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