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썬셋, 중년의 썬라이즈
나는 풋 중년이다. 온 청춘이 저물어 갈 즈음, 풋 중년을 맞이했다.
마트로시카 인형은 결혼을 닮았다. 환상은 현실과 중첩되고, 엄마는 아줌마와 겹쳐지고, 주부는 살림꾼과 포개졌다. 인형의 크기는 힘(力)과 감(感)에 따라 달라졌다. 엄마라는 큰 인형 속에 아줌마의 ‘감’이라는 인형이, 환상이라는 작은 인형은 현실감이라는 큰 인형 속에 들어있었다.
해가 지고 해가 뜨기 직전이 모든 색을 섞은 검정인 것처럼, 청춘이 지고 중년이 뜨기 직전, 모든 삶은 백지였다. 어느 날에는 다음과 같이 색칠되었다.
<집주인 여자는 고무장갑의 벗겨짐 방지 고무가 튕겨 나갈 듯, 팔뚝을 집어넣었다. 당찬 걸음의 끝이래 봐야 겨우 주방이었다. 신경질적인 콧김과 동공의 요동을 보아하니, 다툰 것이 분명했다. 오고 갔던 말들을 토해내라며, 박박 문질러대는 모습에 곧 내가 미끄러져 떨어질 운명임을 예감하였다>
서른 초반, 감정을 지출했던 어느 날이었다. 나의 ‘화’를 잠재운 곳은 싱크대였다. 가족이 내 마음을 몰라줄 때, 당차게 간 곳이 그곳이었다. 고무장갑의 찰진 소리는 콧바람 섞인 날숨과 함께 설거지의 시작을 알렸다. 곧, 요동치던 잡념이 사라졌다. 설거지의 맛은 단연코 무념무상이었다. 감정을 해우(解憂)시키는 신성한 행위였다.
아플 때 나는 참는 버릇이 있었다. 책상 위에 엎드려 있는 것은 ‘지금 아파요’라는 뜻이고, 눈물을 뚝뚝 흘릴 때는 ‘많이 아파요’라는 표현이었다. 말을 하지 않았으니, 엄마가 늦게 알아차리는 건 당연했다. 숙제를 해내는 몸짓만 느릿할 뿐 드러내지 않았다.
결혼 후에는 누워있는 것으로 아픔을 표현했다. 말을 꺼내지 않았으니, 남편이 알아차릴 리 없었다. 주부의 숙제를 해냈고, 하루를 정리해 냈을 뿐 야단법석하지 않았다. 감정의 압축이 있던 때였다.
강산이 변하니, 풋사과처럼 단단하고 풋마늘처럼 굵어진... 나는 '풋 중년'이 되어있었다.
달라진 것은 청춘을 지낸 것과 반대급부로 감정 지출이 줄어든 것이었다.
화가 나면 침착하게 속마음을 이야기했다. 속상하거나 아프면 눈물보다 말을 앞세워, 상황을 설명했다. 엄마의 힘으로 슬픔을 줄여갈 줄 알고, 아줌마의 감으로 기쁨을 용기 있게 드러내기를 좋아했다. 또한, 집안 청소에 화를 푸는 지혜도 생겼으며, 감정의 색을 조절하는 현명한 주부로 살아가고 있었다.
감정 표현이 미성숙했던 날들은 지고, 새날이 오기 전까지... 나는 단 한 번, 눈을 깜박인 것뿐이었다.
깜깜했던 잠시동안 어떻게 숙성시킬지, 잠시... 생각에 잠긴 것뿐이었다.
주부의 청춘에는
이루지 못했어도
다다르지 않았어도
잠시 허우적댔어도...
나는 '외유'였다.
목적지가 없더라도
시원찮다고 핀잔을 듣더라도
나는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중년에 '내강'이 되었다.
아직은 풋 중년이기에... 힘과 감의 성장은 계속되고 있다.
[빛작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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