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에 능한 자는 주판이 필요 없다.
문단속에 능한 자는 문을 잠그지 않아도 열리지 않는다.
매듭을 잘 짓는 자는 줄이 없어도 풀리지 않는다*
새벽 독서를 시작한 지 250여 일이 지났다. 하지만, 책 속의 활자가 새롭다. 새로운 책을 집어드니, 더욱 그렇다. 처음 등교하는 날 교실 뒷문을 열 때의 기분과 비슷하다. 누가 와서 기다리고 있을지, 무슨 이야기를 듣게 될지, 어떤 하루가 펼쳐질지. 설레고 기대되고 긴장되는 순간이다. 그러다가, 눈과 마음이 활짝 열리면 적막함이 깨진다. 활자를 읽던 중 감각이 깨어나는 순간과 닮았다.
오늘은 도덕경의 이 부분이 끌렸던 것 같다. ‘매듭을 잘 짓는 자’.
몸을 숙여 읽고 또 읽게 되었다. 유독 밝게 눈에 띄는 이유는 '바로 떠오르는', '연결 짓게 되는', '같은 감정을 느꼈던' 상황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시간을 함께 하는 작가들을 떠올렸다. 아니, 우리가 '책 속 한 줄'에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나름대로의 증거가 있었다. 독서와 토론이 매일 쌓이면서 느끼게 된 것이다. 작가들이 생각을 나누는 자리에선 생각의 매듭을 잘 짓고, 글을 써야 할 땐 글로 매듭을 잘 짓고, 시간을 들여야 할 때 시간의 매듭을 잘 짓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고,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지 않았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서로의 글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일 외에는 하지 않는다.
왜 그래야 하는지, 왜 그렇게 하는지, 왜 그럴 것인지 계산에 능한 자들이었다. 계산에 능하니, '정신의 문단속'을 잘하고 매듭을 잘 짓는 것 아닌가? 작가들은 하인공간인 '인식'의 문을 깨야만 주인공간인 '의식'의 문을 잘 열 수 있다는 걸 다 알고 있다.
문단속에 능한 사람은 내 옆의 작가들이다. 네모난 줌 화면 속이지만, 모습에서 열기가 느껴질 정도다. 각자의 성장 속도는 다르지만, 매일이 신묘하다.
우리의 꿈들이 무르익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밤사이 꿈을 꾸고 일어난 우리는, 새벽에 모여 다시 꿈을 꾸고 있다. 작가로서, 정신을 담은 글을 짓고, 글로 꿈을 키워가고 있다. 어떤 이는 에세이를, 어떤 이는 소설을, 또 어떤 이는 동화를 쓰고 싶은 꿈이 있다. 우리들의 꿈은 자꾸 흘러간다. 끊이지 않는다. 샘물이 되어, 골짜기에서 만나고 또다시 흐른다. '바람'(wish)들이 하나둘 모여, '바람'(wind)을 일으키고 있다. 꿈의 샘물로 목을 축여 가면서 계속 걷는다.
매일 그저 만나서, 글을 쓰고 책을 읽을 뿐인데, 어느새 보면 높이 올라가 있다. 서로는 알아본다. 매일 봐도 무엇이 달라졌는지 얼마큼 자랐는지 어떤 기분인지 아는 듯하다. 글을 볼 줄 아는 눈과 언제든 피드를 들을 줄 아는 귀가 열려있다.
지금 우리는, 두 번째 출간을 앞두고 있다. 엄마의 유산을 집필 중이다. 첫 번째 출간은 지난여름, 7월이었다. 1월 어느 날, '위대한 시간'에 우리는 만났고, 엄마의 편지에 '정신'을 담아 이제, 두 번째 매듭을 지을 차례가 되었다. 탈고하는 그날까지 힘든 순간들을 겪을 테지만, 우리는 걱정이 없다. 생명력 있는 꿈의 샘물이 굽이굽이 흘러, 방해물이 절로 피해 가고 좋은 에너지가 모이고 있다.
꿈은 계속 피어오를 것이다. 우리의 글이 세상에 알려지고, 세상이 우리를 계속 쓰게 만들 것이다. 세상의 자녀들과 세상의 미래를 환하게 비추는 글, 시대가 필요로 하는 글 말이다. 그래서, 늘 새로운 시작이다.
나 또한, 꿈꾸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250여 일이면 생후 8개월 아기 수준이지만, 나의 변화를 느끼고 있다.
결과를 내는 것만이 매듭을 짓는 것은 아님을 배우고 있다. 갖고 있는 잠재력을 하나씩 꺼낼 줄 아는 것, 하나하나에 가치를 두는 것, 사람들과 에너지를 주고받는 것. 모두가 작은 매듭들이다.
에너지를 열 가지에 쏟아 열 개의 매듭을 묶었다 풀었다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매듭을 짓고, 확장시켜서 또 매듭을 묶어가고 있다.
우리에게는 계산하기 위한 주판이 필요 없다.
매일 새벽, 이렇게 정신의 문단속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도덕경, 노자, 현대지성, 2025.
그림출처: 가람미술관, 김해경.
[빛작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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