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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by 빛작

제한이 있어야 비로소 명인의 역량을 알 수 있다고 괴테는 말했다.*



갈증

갈등

결핍


나는 세 가지 고통을 떨쳐버릴 수 없다. 아니, 누구나 그럴 것이다. 반복적으로 겪게 되는 일이라 떨쳐버릴 새가 없다. 그렇다. 하나에서 빠져나온다 해도 다른 하나에 덜미를 잡히고 만다. 고통에서 빠져나온다는 표현보다 ‘벗어놓는다’라는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다. 벗었다 입었다 하는 옷처럼 말이다.


갈증

목이 타는 경우이자, 애가 타는 경우다. 물을 마시고 싶다거나 길을 떠나고 싶다거나 뜻을 찾고 싶을 때, 갈증을 느꼈다. 나는 물리적, 심리적인 갈증을 느껴왔다. 배움에 대한 갈증, 잠재력 한 줌이라도 찾고 싶은 갈증, 진정한 멘토를 찾고 싶은 갈증이 강했던 이유에서다. 이것들을 풀기 위해 살아왔다고 해도 과하지 않다. 배움을 잠재력을 의지력과 판단력을 찾아다니느라 느끼는 대로 채워지는 대로 갈증을 해결해 왔다.


갈등

나 자신의 선택을 두고 갈등이 있었다. 학과 선택, 직장 선택, 꿈 선택 그리고 무수한 선택 앞에서 하나를 택하고 나머지 하나는 포기해야만 했다. 소소하지만 끊이지 않았다. 이것들을 풀어나가는 하루하루가 모여 해가 지났고, 지금의 내가 된 것과 마찬가지다. 선택에 제한이 있었기에, 환경에 처한 대로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선택해 왔다.


결핍

십 대에는 정서가, 이십 대에는 자존감이, 삼십 대에는 행복감이, 새벽독서를 하기 전에는 존재감이 결핍되지 않았을까. 때마다 그 속에서 헤엄쳐 나왔을 때, 비로소 결핍이 메꾸어진 것 같았다. 바닥을 치고 난 후, 치솟는 게 인생이라 그렇다. 바라던 가치를 채워온 나는 이제, 거의 모든 메마름들을 만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앞으로의 어떠한 결핍도 나를 찾아오면 반길 것이다. 를 키울 동력이 되어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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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거나 큰 갈증, 갈등, 결핍들 때문에 나는 뿌듯해졌다. 채워지지 않은 제한적인 일상에서, 나의 역량을 키워올 수 있었기에, 감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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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결핍이 없었다면

갈등이 없었다면

갈증을 못 느꼈다면

나는 작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내가 된 것은 모두가 결핍과 갈등과 갈증 덕분이었다. 작은 원인을 알아차리고 메꾸고, 풀고, 채우기 위해서 새로운 경험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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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사람에 배움에 제한받았을 때, 극복하고 해내리라 시행착오가 많았다. 제한된 환경에서 그저 달렸다. 넘어지고 깨지고 엎어진 적도 많았다. 그래도 멈추지만 않기를 바랐다. 명인이 될지 모를 일이지만, 명인으로 가는 길을 알아냈다. 위에서 또다른 갈등과 갈증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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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는 웃음으로 말을 했다. 청년시절에는 실험 결과로 말했고, 중년이 된 지금은 글로 말하고 있다.


때마다 피울 수 있는 꽃

때마다 열기를 뿜는 불꽃

때마다 터뜨릴 수 있는 폭죽


모두 한계를 극복하고 넘어서는 과정을 지나야 만 얻을 수 있는 역량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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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은 그때뿐이다. 다 지나간다.

타이밍은 순간이다. 역시 그때뿐이다.

산 넘어 산, 산을 넘는 대장정이 중요할 뿐이다. 지금의 제한은 미리 끌어다 쓰는 고통의 한 조각일 뿐이다. 고통의 옷을 입고 있다면, 벗을 때가 반드시 온다.


완주만 하면 된다.


* 아미엘 일기, 아미엘, 동서문화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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