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눈매, 긴 속눈썹, 뽀얀 살결
만화책에서나 볼법한 고등학생 교복을 입은,
그래, 그날, 그 버스에 그 남자애가 탔대.
또 정신을 홀랑 뺏겨
소녀만 할 수 있는 공상에 빠졌다지.
아침의 등교길은 어느 때보다 가벼웠더랬어.
화장실에 다녀온 소녀는
책가방이 없어진 걸 깨달았어.
도시락가방은 있는데 책가방이 없어서
청소함을 뒤졌어.
소녀는 왕따같은 게 아니었거든.
그러니 친구들의 짖궂은 장난인 게 틀림없다고.
각 교실을 다 돌아다니며 찾아봤지만
책가방은 없더래.
황홀했던 아침에 비참한 현실이 더해진 거야.
밥을 먹으면서도
친구의 책을 보며 수업을 들을 때도
사라져버린 가방이 어디에 있을지 걱정만 했대.
이제 고등학생인 소녀는
빨간머리 앤이나 저지를 법한 실수를 한 것일까.
소녀는 하루 종일 기도했어.
가방을 찾을 수 있기를.
가방을 잃어버린 걸 알면
부모님께 분명 혼이 날 테니까.
아름다운 소년에 정신을 뺏겨
아름다운 공상을 하던 소녀는
아슬아슬 하루종일 그네를 탔다지.
야간자율학습 시간
느닷없이 찾아들어 소녀를 부르던 이름모를 선생님
"가방은 집으로 잘 도착했으니, 안심하고 오라."
는 집에서의 전갈.
소녀는 마법이 풀리는 것처럼
맥이 풀려서 울고 말았대.
소녀의 부모님은
소녀가 마음을 졸일까
먼저 알고 나섰던 거래.
훌쩍 어른이 되버린 소녀는
가방을 메고 가는 또 다른 소녀를 볼 때마다
그 날을 기억한대.
아름다운 소년을 만난 날
더 아름다운 가족의 사랑이 담겨 있던 날.
사진 핀터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