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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 Mar 07. 2021

오! 사봉!

Sabon

내가 사봉을 처음 만난 것은 뉴욕에서였다.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느라 몸은 지쳐 있었고 어딘가 들어가서 쉬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때 친구가 외쳤다.

“아 저기 있다!” 

흥분해서 달려가는 친구와 달리 사봉에 대해서 일면식도 없던 나는

 그저 천근처럼 무겁기만 한 발걸음을 샵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런데, 그런데, 이 샵이 달랐다. 사봉이 달랐다. 

러쉬처럼 강한 향은 아니었다. 볼드하게 브랜드를 드러내는 것도 아니었다.

바디샵과도 달랐지. 지적인 느낌.

내가 그 샵에서 받은 느낌은 그랬다. 

잔잔하면서 고급스러운 향이 지친 몸을 달래주는 것 같았다. 

시그니처 제품이라던 바디 스크럽을 사고 싶었지만

엄청 무겁네? 그래서 바로 포기하고 한국에서 사게 될 날이 곧 올 거라 믿고 금방 잊어버렸다.

이렇게 화려하진 않았고 샵 자체는 되게 수수했는데 사진이, 없네요.

물론 좋은 안목을 가지고 있고 가방이 무거워지는 것쯤은 상관하지 않는 친구는 바로 샀다. 

그리고 내 옆에서 사봉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든 물건은 믿을 수 있다, 사해 소금이 들어간 건다, 천연 재료이기 때문에 안심하고 쓸 수 있다. 얘기를 듣다 보니 (그리고 친구의 안목을 믿었기에) 나중에 꼭 써야 할 것으로 사봉은 자리 잡았다. 

그 후에 배스 앤 바디웍스에도 갔지만(물론 유칼립투스 바디로션 좋은 건 알고 사랑하지만) 사봉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사봉은 그야말로 나에게 독보적이었다. 특히 은은하고 고상한 향이 퍼지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었다. 

(사봉 샵에 들어서기 전에 너무 지쳐있어서 그 콘트라스트가 너무 강했다는 것도 감안해야겠지만……)

그 후로 미국에, 뉴욕에 간다는 지인이 위시리스트를 물어오면 꼭 사야 할 것으로 사봉을 추천하곤 했다. (사 오란 뜻은 아니었는데 사다 주는 지인도 있었지. 데헷.) 

사봉 선물 추천 인트로 [from sabon homepage]

작년 연말에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통해서 사봉을 받은 후에 사봉이 한국에도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단독 샵은 없는 모양이었지만 백화점에도 입점된 곳이 있는 것 같았고. 

이번에 선물로 받은 바디 스크럽 재스민은 하늘빛을 닮아 있었다. 

향은 당연히 끔찍할 정도로 좋았다.

마치 재스민 정원에 와 있는 것처럼 은은하게 퍼졌다. 

오일과 사해 소금으로 몸을 부드럽게 문질러주면 가본 적도 없는 사해 바다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사봉의 바디 스크럽을 쓴 날은 욕실에서도, 그리고 내 몸에서도 기분 좋은 은은한 향기가 났다.

이 우드 스쿱도 우리 집 욕실을 마치 고급 료칸으로 착각하는 데에 일조한다.

다시 한번 서인국 교수가 말한 ‘행복은 강도가 아닌 빈도’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바디 용품만큼은 사치를 부려도 좋은 품목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이 바디 스크럽을 맨 처음에 개봉할 때에는 숟가락이 필요하다. 

그냥 손으로는 절대 열리지 않는다.(사봉의 남다른 기술력?) 

그리고 같이 동봉되어 있는 우드 스쿱으로도 절대 열리지 않으니 헛된 기대는 저버리는 것이 좋다. 

뚜껑을 열고 우드 스쿱으로 오일과 미네랄이 풍부한 사해 소금을 섞으면 ‘서걱서걱’하는 소리가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킨다. 그리고 몸에 문지르면 바로 지상 낙원이다. 스크럽이기에 주 1~2회 사용을 권장한다. (주 1~2회면 우리, 충분하잖아요? 주말 이틀이 있어서 5일 버티는 거잖아요.)

크리스마스 시즌의 트리 데코도 좋고 보라색 배치도 남다른 안목이었다. 사봉의 페이즐무늬도 좋죠? 금박 두르니 더 기분 좋은?

다시 사봉 얘기로 돌아가 보자. 

사봉을 선물 받았을 때에는 선물 포장도 그렇고 안에 들어있던 카드도 모두 ‘사봉’이라는 브랜드가 어떤 브랜드인지를 보여주는 데에 집중되어 있었다. 

‘일상의 향기, 일상의 행복’ 

사봉 브랜드가 주는 경험과 완전 120% 공감하게 되는 슬로건이 아닐 수 없다.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사봉은 1997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이건 다른 얘긴데 텔아비브가 ‘봄이 오는 언덕’이라는 뜻이래요. 어쩜 이렇게 어여쁜 도시 이름이 있을 수 있는지. 감탄 또 감탄)에서 Sigal Kotler - Levi와 Avi Piatok 두 사람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70여 년의 전통을 가진 고대의 비누 제조 비법으로 만든 핸드메이드 솝을 판매하면서 시작된 사봉은(처음은 비누로 시작했던 모양이에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정화할 수 있는 제품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기서 나는 무릎을 쳤다. 

이 브랜드가 내게 준 것이 ‘정화’였구나. 

러쉬도 배스 앤 바디웍스도 주지 못했던 것이 바로 이 ‘정화’라고.

Relaxing Body Recipe [from sabon hoomepage]

브랜딩이라는 것은 이렇게 차별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남들과 대별될 수 있는 확연한 차별점. 

사봉은 바로 ‘정화’라는 가치를 사람들에게 주고 있었다.

몸의 불순하거나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하는 일차원적인 정화를 넘어서 

마음에 쌓여 있던 우울함, 불안감, 긴장감 따위가 해소되고

마음이 깨끗해지고 정신의 안정을 찾는 데에 기여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봉의 스크럽을 섞는 ‘서걱서걱’의 순간은 마치 의식처럼, 

앞으로 다가올 정화의 순간을 예감하는 좋은 경험을 나에게 주는 것이다. 

봄이, 장미 향기가 밀려오는 것이 느껴지죠? [from sabon homepage]

“사봉은 좋은 성분들과 우아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고집하며, ‘선물’ 이란 진정한 의미를 투영한 제품을 추구합니다. 또한, 자연의 성분을 추구하며 지구 환경을 배려한 제품을 만들고자 합니다” 홈페이지에서 발췌한 사봉의 브랜드 스토리이다.

‘정화’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주기로 결정한 이상, 브랜드는 당연히 좋은 성분을 고집하게 되고 우아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추구하게 된다. 이렇게 한 가지의 가치에 집중하게 되면 모든 구성 요소들 역시 그 가치를 향해서 내달리게 된다. 

브랜딩은 이렇게 완성된다. 

그래서 그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그니처 소개 인트로, 거의 아트죠? [from sabon homepage]

사봉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알 것이다. 

정제되고 절제된 디자인과 레이아웃, 일절 잡스러운 요소는 들어가 있지 않다. 

브랜드의 가치와 그 가치를 고객들이 충분히 경험할 수 있게 하는 데에 모든 요소가 흐트러짐 없이 정렬되어 있다. ‘정화’라는 남다른 가치를 제공하기에 사봉은 영리하게도 ‘선물’이라는 카테고리도 쉽게 공략할 수 있다. (제품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상술 역시 뛰어나군요. 부럽소…….) 


보통은 브랜드를 만들 때 이것저것 못 넣어서 안달이다.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중요하다. 이것도 자랑해야 하고 저것 역시 자랑해야 한다. 

그렇게 이것저것 넣고 나면 결국 이도 저도 아니었던 경험, 해본 사람 만이 안다. 

좁혀야 한다.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한다.

그 고통스럽고 좁은 깔때기를 빠져나오고 나면 성장의 기회는 더 쉽게 열릴 것이다. 

그러니, 브랜딩을 생각할 때 우리 모두 겁내지 말고 고통스러운 깔때기 안으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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