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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 Nov 19. 2023

몸이 보내는 신호

무시하지 말자

너무 아팠다.

처음 만나는 외부 회사와 미팅은 5시였다.

어떻게 해서라도 그 시간까지는 버티려고 했다.

그래서 일부러 점심도 마음 맞는 친구들과 먹고(통증을 잊으려고)

무려 십전대보탕을 넘어 십오전대보탕까지 마시며 버티려 하였으나(몸도 보하며)

양치를 하는데 얼굴에 핏기가 없었다.

"어서 빨리 조퇴 하시죠."

점심과 십오전대보탕까지 같이 드링킹한 회사 친구의 말에

결국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내 상대편 회사에 양해를 구한 뒤 조퇴했다.

십오전대보탕은 아니지만 정읍 차마루에서 마신 잊을 수 없는 쌍화탕(달지 않아 더 좋은 맛)

조퇴.

작년 여름의 어느 날도 같은 증상으로 조퇴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날은 상사가 눈에 대상포진이 오는 바람에, 상사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내 증상을 말할 수 없었다.

아는 병이다. 

자궁근종이 너무 커진 탓에 생리통이 심해진 것이다.

3~4센티이던 것이 6.7센티로 무럭무럭 자랐다.

결과는 극심한 통증으로 이어졌다.

그래도 작년까지는 분기에 한 번 정도로 몸이 떨리고 손끝이 혈액순환이 안되면서 저리고

토할 것처럼 속이 메스껍고 허리와 배가 아팠다면

올해는 빈도가 잦아지고 강도가 더해졌다.

여름에도 한 두차례 안 좋았다. 그리고 이번 달은 정점을 찍은 것처럼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약을 먹고 가만히 침대에 누워 통증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지난달 병원에서는 이 정도 크기라면 의학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지만 

수술은 전적으로 본인의 결정이라고 했다. 통증이 심해지면 하는 거라고.

그래서 지인에게 조언을 구해 최대한 빨리 3차 종합병원에 예약을 했는데

아차, 그게 또 이 선생님이 수술이 많이 밀려서 초진을 막아 놓은 상태, 

나의 초진 날짜는 내년, 지금부터 일년 후를 훌쩍 넘긴 시점으로 잡혔다.

"많이 늦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래도 어떻게 해요? 방법이 없는 걸.

울상으로 예약을 해 놓고 생각한다.

12월에는 어떤 통증이 올까?(상상만으로도 심'쿵'한다)

어차피 버티기는 해야 하는데 정 아프면 10월에 간 병원을 가는 방법도 있고.

꼭 더 심해지리란 법은 없다.

그래서 만성염증을 줄이는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스트레스를 덜 받으려고 노력은 하는데.


나에게 1년의 시간이 주어졌다.

나의 근종을 내가 관리할 시간이다.

없어지길 바라지만 가능할까?


근종이 커져서 하나 좋은 점을 찾자면

그 외의 다른 것은 하등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살을 빼고 싶어요...

보톡스를 맞아요...

라색을 해요...

보고가 걱정이에요...

이 업무을 어떻게 하죠?


미추는 이미 나의 관심사에서 멀어졌고

일 역시, 내가 건강해야 할 수 있는 것이므로 차순위다.


그저 건강하게 먹고

가공식품 줄이고

운동을 부지런히 한다.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될 수 있으면 자연을 찾아 숨쉬고 몸에 좋은 일을 하련다.

결국 내가 내 몸에 못할 짓을 많이 한 것이라는

자기 연민에 문득, 안쓰러워지는 가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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