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면서 좌절을 느낄 때마다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그럭저럭 시간이나 메워. 어차피 조직과 사람은 안 변해. 이기적으로 생각해. 너를 위한 시간으로 써."
그 말들은 위로처럼 들렸지만 사실은 체념의 다른 이름이었다.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정성껏 살아가고 싶고, 어떤 일이든 나의 이름을 걸고 의미 있게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종종 부질없는 욕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올해 나는 정규직 팀원을 받지 못한 채 계약직 팀원과 함께 일하고 있다. 문제는 상호 평가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결국 나는 나의 업무성과와 전혀 상관없는, 다른 팀장들의 평균 점수를 받아야 한다. 그게 얼마나 불합리한지 제도의 허점을 짚고 대안을 마련해 제출했지만 결국 돌아온 대답은 "내년에 검토하겠다"였다.
올해부터 평가 구조가 바뀌어 상호평가 점수가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했다. "그럼 올해는 그냥 평가 이하만큼만 일해. 괜히 힘 빼지 말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다시 나의 신념이 와르르 무너졌다. 나는 정신없이 바쁘더라도 즐겁게 일하는 순간을 맞이하고 싶은 사람인데, 이 조직 안에서는 더 이상 나의 쓰임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에디토리얼 씽킹」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무엇보다 저자가 에디터라는 자신의 일에 대해 뚜렷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분명히 있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항상 궁금해하고 배우려 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건 왜 이렇게 하는 걸까?,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구하던 나에게는 늘 궁금할 거리가 많았다. 퀘스트를 하나씩 깰 때마다 안목이라는 선물이 내게 주어졌고 세상이 조금씩 넓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배움보다는 설득이, 진심보다는 조율이 더 중요해졌다. 그 과정에서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늘 성장과 회고를 반복하며 나아가려 애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날개가 꺾인 듯한 느낌이 든다.
나는 일에서 가치와 의미를 찾는 사람이다. 그래서 작은 일 하나에도 집중해 완성하려고 한다. 실무자 시절에는 이런 태도가 나의 강점이었다. 하지만 팀장이 되고 나서는 선이 높은 나의 기준이 오히려 조직의 피로를 높이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타 팀에서 목적에도 맞지 않고 절차도 건너뛴 요청이 들어와 반대 의견을 내놓으니 그냥 좀 해주지라는 반응이었다. 정당한 이유로 안 된다고 말했을 뿐이데 나는 까다롭고 예민한 사람으로 분류되었다. 내가 틀린 걸까? 그 질문이 쌓이고 쌓여 자책으로 변할 때면 나는 가끔 다른 우주를 상상한다.
선이 높은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세계, 작은 일 하나에서도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함께 고민하는 세계, 일에 대한 태도의 결이 비슷한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세계.
그런 곳이었다면 내 일에 대한 자부심이 아직 내 안에 있었을까.
되지도 않는 상상을 내려놓고 오늘도 답을 찾아 나아간다.
다시, 열정을 되찾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