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은 방송국이었다. 그때 만난 사수는 열 살 많은 분이었는데 어미새처럼 나를 챙겨 주었다. 아침이면 떡이며 빵이며 내 몫의 간식을 챙겨 왔고, 낯선 회식자리가 어색하지 않도록 "학원 간다"는 핑계를 만들어 나를 먼저 집에 보내주었다. 그땐 너무 어려서 그 배려의 깊이를 미처 몰랐다.
두 번째 회사에서 만난 팀장님은 정말 멋진 분이었다. 입사하자마자 사수가 퇴사해 갑자기 내가 업무의 메인이 되었을 때, 팀장님은 "한번 맡아볼래요?" 하며 기회를 주셨다.
떨리는 마음으로 처음으로 결재판을 들고 찾아갔던 날, 팀장님은 먼저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셨고, 이 부분만 조금 고치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살짝 팁을 주셨다. 숲을 보되 나무는 스스로 챙길 수 있도록 해주는 분이었다.
팀 회식 때는 언제나 맛있는 음식을 사주시고 저녁 8시면 귀가하셨다. 그 이후의 시간은 자율에 맡긴다는 배려였다.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난 뒤에도 새 팀장님이 힘들게 할 때면 따로 전화해 "괜찮니?" 하고 물어봐주셨는데 그 한마디가 오래도록 든든했다. 내 첫 번째 '진짜 팀장님'이었고, 좋은 기억만 남아 있다.
세 번째 회사에서 만난 팀장님은 나의 성장을 지지해 주신 분이었다. 사수가 없어 혼자 부딪히며 배우던 시절, 내가 배우고자 하면 언제나 길을 열어주셨다. 필요한 자원을 확보해 주시고, 듣고 싶은 교육이 있다고 하면 흔쾌히 다녀올 수 있도록 지원해 주셨다. 누군가 나를 믿고 지지해 준다는 감정은 큰 힘이 되었다. 그 믿음 덕분에 나는 더 책임감 있게,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었다.
돌아보면 내가 좋아했던 상사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나를 '사람'으로 대해주었다는 것. 그 따뜻한 배려의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내 팀원들에게 내가 좋아했던 상사처럼 해주고 싶다. 하지만 좋은 리더가 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어느 날은 사고만 안 나도 다행이다 싶을 때가 있다. 그래도 완벽해지려 하기보다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려 한다.
내 책상 앞에는 작은 메모가 붙어 있다.
'오늘 내가 만든 가치는 무엇인가?
오늘 내가 해결한 문제는 무엇인가?
마주한 난제를 포기하지 않고 풀려는 의지를 여전히 가지고 있는가?
익숙한 영역에서 머물지 않고 낯선 영역으로 한 걸음 내딛을 용기가 있는가?'
나는 매일 이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리더가 되었다고 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고 싶지 않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의 범위를 다시 정의하고 그 안에서 나의 역할을 확장하고, 계속해서 나의 성장을 이어가고 싶다.
이 질문들을 놓지 않고 걸어간다면,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리더'로 기억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