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간 글쓰기를 못했다. 첫날은 줌바파티가 있던 날이었고 둘째 날은 파티 후유증을 겪고 있었다. 오전은 부랴부랴 집안 정리를 하고 식사도 챙겨야 하고 내 몸도 단장을 하느라 바쁘게 지나갔다. 예정된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했는데도 이미 많은 분들이 도착해 있었다. 누군가는 리허설을 누군가는 무대 꾸미기에 누군가는 파티 티켓을 나눠주느라 바빴다. 한정된 공간에 다른 선생님들의 회원들과 다 함께 진행되는 파티라 더 정신없고 혼란스러웠다.
우리 줌바 선생님이 출강하시는 3군데 센터 회원들끼리 단체 티셔츠를 맞춰 입었다. 여기저기 꽃 분홍 티셔츠들이 보이면 마음에 동질감이 일었다. 선생님께서 보시고 기분이 좋으셨으면 좋을 텐데. 파티가 있을 거라는 예고를 듣자마자 분주히 움직여준 동생 덕분에 다 함께 같은 옷을 입고 신나게 파티를 즐길 수 있었다. 단체티가 불발될 거라고 생각한 동생이 원래 준비했던 작은 핀도 인기 만점이었다. 다 함께 머리에 선생님이 이름이 쓰인 핀을 붙이고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느라 바쁜 모습을 보니 꼭 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나의 줌바 선생님은 곧 50대가 되신다. 누가 봐도 예쁘신 외모에 목소리도 좋다. 운동으로 다져진 몸은 이제 막 40이 된 나보다 더 멋지시다. 서른에서 마흔이 될 때 들었던 생각들 중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마흔에 모든 걸 다 끝내야 한다는 압박감이었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몸이 더 힘들어지기 전에 라는 수식어를 혼자 붙이며 40이라는 나이에 대한 부담감이 몹시 심했다. 심적인 부담감도 있지만, 나이가 부여하는 신체적 부담감이 끔찍했다. 좀 더 나이 먹으면 이래서 힘들겠지, 저래서 못하겠지 같은 겪어보지 못한 아픔에 대해 지레 겁을 먹었다.
우리 반 수업에는 40대는 물론 50대 심지어 70대 분들도 계시다. 첫 수업에서 말도 못 하고 어버버 하던 내가 지금은 너스레를 떨며 언니 소리를 잘도 내뱉는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을 부르는 언니라는 호칭이 좋다. 운동을 배우는 이 공간에서 만큼은 여사님, 선생님, 할머니와 같은 호칭은 살짝 넣어둔다. 같이 땀을 흠뻑 흘리고, 함성을 지르고 숨을 쌕쌕거린다. 운동을 하는 동안은 젊은 사람 늙은 사람의 경계가 없어진다. 음악과 움직임 안에서 하나가 된다. 그래서 이 운동이 좋다.
수백 개의 눈이 3분의 선생님들에게 집중된다. 선생님들의 손짓과 발끝을 따라 우리도 분주히 움직인다. 다 함께 구령을 붙이는 순간 넓은 문화홀이 우리의 목소리로 꽉 찬다. 소름이 돋았다. 기분 좋은 소름이다. 2시간 넘게 내내 소리를 지르고 뛰었더니 피곤하기 이를 데 없지만 에너지가 차오른다. 우리가 그런 것처럼 선생님들도 에너지를 충전하셔서 앞으로도 즐겁게 수업을 이끌어 주시길 바라본다. 파티가 끝나자마자 내년 파티가 기대되는 나는 이제 어쩔 수 없는 줌바인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