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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틸다 하나씨 Dec 25. 2023

베트남인의 든든한 아침식사 ‘쏘이’(XÔI)

이른 아침 6시 무렵이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대나무 바구니를 끌어안고

쏘이 장사들이 길거리에 나오기 시작한다.

출근하기 바쁜 오토바이를 잠시 세워

쏘이 한 덩이 넣은 비닐봉지를 오토바이 손잡이에 달고서 다시 시동을 거는 낯선 이의 뒷모습은 괜스레 든든해 보인다.

탄단지 고루 갖춘 한 덩이 쏘이

바나나 잎에 쌓여있어 휴대성도 좋고 먹고 버리기도 간단하며

포만감도 충분한

하루를 든든하게 하는 베트남인의 아침 식사이다.

녹두와 찹쌀을 푹 불려 쪄낸 쫀득한 노랑 찹쌀밥에

크리스피한 샬롯 튀김과 말린 돼지고기 옥수수 땅콩가루 등을 얹어 먹는 꿀맛 쏘이.

먹고 힘내라고 엄마의 정성 꾹꾹 눌러 담은 우리네 주먹밥과 비슷하려나


베트남 63개 도시에서 식물 베이스이던 육류 기반이던 각 도시의 스타일을 담아 발전해 오며 그 안에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온 베트남인의 대표 음식 중 하나이다. 매일의 든든한 아침 식사이기도 하고 새벽마다 제단에 정성을 다해 올리는 제사 음식이기도 하며 다양한 축제와 결혼식, 돌잔치 등의 행사마다 빠질 수 없는 음식이다.

시험을 앞두고 있다면 찹쌀처럼 딱 붙으라고 먹는 베트남인에게는 우리네 엿과도 같은 행운의 음식이기도 하다. 쏘이의 실종은 베트남인의 의식의 실종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만큼 생활 속 문화 속에 깊이 자리 잡은 음식이다.


보라색 꽃으로 물들이고 말린 돼지고기를 매콤 달콤하게 양념하여 만들어 낸 이리 예쁜 쏘이도 있다.


콩으로 만드는 여러 종류의 쏘이 더우 (Xoi dau)와  오방색쏘이 쏘이 응우싹 (Xoi ngu sac) ⓒ vietnam travel guide


오방색의 마법은 한국에서도 베트남에서도 통한다

아시아 음식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음양의 조화를 중요시 여기고 우주의 다섯 가지 요소인 나무, 불, 흙, 물, 금속을 나타내는 다섯 가지 색깔의 오방색 쏘이를 만든다. 접시 위에 담을 때에도 생명의 순환을 표현하는 원형으로 데코 한다. 천연 재료로 물들인 다섯 가지 고운 색의 쏘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마저 알록달록해진다.


나무 요소를 담은 녹색 쏘이는 북부 지역의 광활한 숲의 풍경을 상징하는 색상이다. 발전과 번영, 자기 성장의 희망을 상징하는 녹색 찹쌀은 찹쌀에 판단 잎 추출물을 혼합하여 만든다. 동남아시아에서 식재료로 널리 쓰이는 판단 잎은 바닐라와 쟈스민 꽃 향기의 중간 어디쯤 머물러 있는 식물이다.


불 요소를 담은 적색 쏘이는 우리나라에서 눈에 좋은 열매로 열풍인 ‘슈퍼 걱’(Gac)이 주 재료이다. 이 과일의 즙이 바로 오렌지 빛을 내는 역할을 담당하는데 달달한 맛까지 담고 있어 식사대용보다는 간식과 디저트로 어울리는 찹쌀밥이다.


흙요소를 담은 보라색 쏘이는 비옥한 토양을 나타낸다. 북북 부족의 신앙에서 흙은 생명의 원천으로 숭배되는 요소이다. 보라색 드래곤 푸룻, 나비 완두콩 꽃, 자홍색 꽃잎 혹은 흑미를 이용하여 보라색을 추출한다.


물의 요소 흰색은 백미로 만들어내며 충성심과 순수함을 상징한다. 부모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상징이기도 하다. 코코넛 밀크를 첨가하여 흰 찹쌀에 풍미를 더하기도 한다.


금의 요소 노란색은 번영과 풍요를 상징한다. 쌀의 문화를 이어오는 아시아 민족에게는 익은 벼를 상징하기도 한다. 강황뿌리를 이용하여 노란색 쏘이를 만든다.


오방색 쏘이를 정성껏 만들어 전통 의복을 입고 제단에 정성스레 올리고 한 해의 번영과 풍요를 기원하는 베트남의 전통 음식이 바로 쏘이이다. 전통부터 현대까지 꾸준히 발전해 온 쏘이의 종류는 여기에서 모두 소개하다가는 책 한권을 만들어도 될 만큼 정말 다양하다.



두리안 쏘이 Xoi sau rieng과 쏘이 만 Xoi man ⓒ vietnam travel guide


그중에서 몇 가지만 소개한다면 지난 화에서 소개한 밋 쏘이에 이어 두리안 쏘이 쏘이 싸우지엥 (Xoi sau rieng)이다. 두리안 러버라면 참을 수 없는 맛이지 정말. 크림치즈 같은 두리안의 달콤함에 쫀득한 찹쌀밥의 조화는 정말 쏘~굿이다.


쏘이만(Xoi man)은 수도 하노이의 별미인 캐러멜라이징 돼지고기를 얹은 찹쌀밥이다

음양 원리를 중요시 여기는 베트남인들은 요리의 열(양의 기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날씨가 시원한(음의 기운) 가을과 겨울에 쏘이만을 즐기는 것을 선호하기도 한다. 음식의 음양을 생각하며 절기를 분류하고 먹고 싶어도 꾹 참으며 때를 기다리는 베트남 인들이 가끔 참 흥미롭다.


1980년대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돌며 외치던 ‘찹쌀떡~~~’ 장수가 한국에 있었다면

베트남에는 밤 9시 무렵이면 ‘쏘이락~바잉 꾹 더이~~~’를 외치는

목청 좋은 쏘이 꾹 장사의 자전거가 집집의 창문마다 출출해지는 소리를 넣으며 요즘도 지나 다닌다.

매번 그 소리를 듣고 뛰어 내려가도 쏘이 장수를 놓치기가 다반사여서 하루는 맘먹고 기다렸다 맛을 보았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왜 하필 밤 9시가 넘어 팔까 했는데

식사라 하기에는 가볍고 야식이라 하기에는 든든한 그런 맛이었다.

그래서 아침은 쏘이를 먹고

야식은 쏘이 꾹을 먹는가 보다.


쏘이 꾹 (xoi khuc)


쏘이 쎄오 (xoi xeo)


Xoi Xeo에는 손으로 쭉쭉 찢어낸 살코기와 녹두가 마구 섞여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예민한 각도와 경사의 원칙에 따라 고기와 녹두 덩이를 잘라야만 맛의 포인트가 살아나는 베트남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초리와 칼끝의 예민함이 담긴 쏘이이다. 내 멋대로 마구 잘라 놓았다가는 할머니의 매서운 손이 등짝을 후려 칠지도 모른다. 쏘이 쎄오의 쎄오(xeo)는 '경사진' 이란 뜻을 담은 단어이기에 경사의 미학이 담긴 쏘이라 할 수 있다.


 



친정엄마가 베트남에서 꽤 오랫동안 함께 사셨다. 늘 새벽 시장을 다녀오시는 엄마의 장바구니에는 꼭 두 세 덩이의 뜨끈한 쏘이가 담겨 있었다. 이제 연로하셔서 한국에서 지내고 계신데 가장 드시고 싶은 베트남 음식이 매번 쏘이라고 하셔서 한국 방문 때 직접 베트남 쏘이 아줌마가 되어드리려면 베트남에서 실력을 갈고닦아야만 한다.


마틸다 레시피


정말 다양한 종류의 쏘이 중에서

늘 그렇듯 클래식 쏘이 레시피부터…

클래식 레시피를 습득하면

응용은 언제나 쉬운 법

먹고 남은 쏘이는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튀겨서 친수 칠리소스에 찍어 먹어도 정말 맛있는 간식이 되므로

버릴 게 없는 음식이다.

그럼 만들어 볼까?


쏘이 쎄오 응오 [XÔI XÉO NGÔ]_옥수수 녹두 찹쌀밥 쏘이

준비물:

1. 찹쌀을 깨끗이 씻어 물에 6~8시간 정도 불린다

2. 껍질을 제거한 녹두도 깨끗이 씻어서 6~8시간 정도 불린다

3. 건조된 옥수수는 부드러워질 때까지 한시간 정도 삶아 끓을 때 물에 소금 약간 추가한다

(생옥수수인 경우에는 30분 정도 삶아 알맹이만 발라낸다)

4. 샬롯(양파) 또는 대파를 채 썰어 튀긴다 (샬롯은 양파와 마늘 중간쯤의 향기를 가지고 있는데 샬롯의 향이 아주 깊고 향기롭다)

5. 돼지고기 안심은 삶아내서 결을 따라 채 썬뒤 피시 소스와 후추를 넣고 수분이 날아갈 때까지 볶는다

샬롯 (Shallot)
쏘이 재료


채 썬 샬롯을 기름을 넉넉히 두른 팬에 넣고 황금빛 갈색이 될 때까지 튀겨낸다
녹두를 불린 후 물기를 뺀 뒤 소금을 조금 넣고 찜통에서 30~45분 정도 부드러워질 때까지 쪄낸다. 녹두가 으깨지지 않도록 찜망 위에 흰 천을 깔아야 한다. 녹두가 익으면 그릇에 붓고 오렌지처럼 동그란 모양으로 빚어 꽉 쥐어짠다.
찹쌀을 불린 후 물기를 잘 빼고 소금을 약간 넣고 역시 흰 천을 깐 찜통에 올려 30분 정도 쪄낸다. 찹쌀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쪄낸 뒤 전처리된 옥수수와 잘 섞어준다
말린 돼지고기를 찹쌀밥 위에 올린다
완성된 찹쌀에 샬롯을 튀기고 남은 기름 2큰술을 넣어 윤기 나고 향긋한 찹쌀밥을 만든다
둥글게 빚어 놓은 녹두를 비스듬하게 썰어 쏘이 위에 얹어내고
바삭하게 튀긴 샬롯을 토핑하고 바나나 잎으로 곱게 싸주면 완성이다


마틸다 하나씨의 토요일 아침식사 루틴_맛있는 쏘이




참고 링크: https://vietnamnoma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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