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천장을 뚫고 아득히 먼 곳으로 시선을 두었다. 차 소리를 듣다가 가끔 윗집 사람의 발소리에 맞추어 동선도 그려보았다. 남들은 층간 소음으로 애를 먹기도 한다는데 그는 주변에서 나는 그런 소리로 자신의 외로움을 애써 밀어내고 있었다. 아내가 떠난 지 벌써 97일째다.
아이들의 방으로 가보았다. 이불을 깔고 웅크리고 자는 천사들. 얼굴 곳곳에 있는 아내의 흔적에 그는 가슴이 조여 왔다. 조심스레 이불을 덮어주고 나서 그는 밖으로 나왔다. 그는 고요함이 두려웠다. 그러나 음악이나 TV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았다. 차 열쇠를 집어 들었다.
거리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새벽 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이었으니까. 그는 한강 고수부지 쪽으로 차를 몰았다. 이따금씩 마주치는 택시 안 사람들은 어디로 향하는 걸까 궁금했다. 집으로 향하거나 아니거나. 집과 집이 아닌 곳이라는 구분이 우스웠다. 아내가 죽은 이후로 그는 집을 예전과 같이 느낄 수가 없었다.
한강을 마주하고 앉았으나 정작 강물은 보이지 않았다. 건물과 다리의 불빛이 조금씩 일렁이는 것으로 그곳에 강이 흐른다는 걸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인공위성과 몇 개의 별만이 보이는 하늘. 오늘은 그마저도 보이지 않는다. 지수야... 그는 그동안 부르지 못한, 너무 아픈 이름을 조용히 불러보았다. 그의 볼이 뜨거웠다. 마음은 심장을 뚫고 나와 터질 듯한데 웅크린 몸은 이내 고꾸라졌다. 그는 목 놓아 울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공놀이를 했던 행복한 곳이 그의 울음으로 묻혀버렸다.
그때였다. 그의 목덜미에 차가운 것이 느껴졌다. 천천히 고개를 든 그는 한동안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의 입김이 옅게 흩어지고 울음이 잦아들자 눈이 내린다는 걸 알았다. 그는 흩날리는 눈 속으로 손을 뻗었다. 눈이 그의 손에 부딪혀 이리저리 부서졌다. 눈은 그의 손에 데인 듯 닿기도 전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는 아내 생각이 났다. 어쩌면 그의 사랑에 녹아버린 사람. 이제는 눈물로만 만날 수 있는 너. 그는 손안에 든 눈을 가만히 움켜쥔다. 그날 그에게 시린 눈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