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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독백 Jun 20. 2024

내게 없던 감각  |  수전 배리  |  김영사

부끄럽게도 저는 감각이 태어나면서부터 받는 당연한 축복이라고 여겼습니다. 어릴 적 복지관에서 잠시 아이들을 가르치는 봉사를 할 때 그 생각이 깨졌습니다. 청력이 약한 아이는 듣는 활동이 잘 안되니 전반적인 언어발달이 늦었습니다. 아픈 경험이었습니다. 감각의 결여로 누릴 것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온 아이의 모습이 보여 안타까웠습니다. 시각, 청각, 촉각, 등 모든 감각은 우리가 삶을 풍요롭게 사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사시 때문에 세상을 입체가 아닌 평면으로 보며 자란 저자 Susan Barry는 40대 중반에 새로운 시훈련 치료를 받고 입체시를 경험합니다. 이 경험은 신경의학자이자 작가인 올리버 색스의 글 <스테레오 수>를 통해 알려집니다. 그리고 '여덟 살 무렵이 되면 더 이상 새로운 감각을 발달시킬 수 없다'라는 [결정적 시기]에 대한 통념을 깨뜨립니다.


이 책에는 백색증으로 망막과 눈과 뇌의 연결이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했고, 심각한 근시로 인해 15년 동안 거의 없는 시력으로 살았던 리엄, 그리고 청력을 갖지 못한 채 태어난 조흐라가 나옵니다. 이들은 청소년기에 수술을 통해 새로운 감각을 얻습니다. 하지만 그 새로운 감각은 그들이 만들어 온 그들만의 지각 세계에 커다란 폭풍으로 다가옵니다. 새로운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새로운 자극을 다른 감각 정보와 통합을 해야 하는데, 책을 읽다 보면 '그게 정말 쉬운 게 아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16쪽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에게 유년기 이후 새로운 감각을 습득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정체성을 다시 만들라는 말과 같다. 지금까지 독립적으로 잘 살아왔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어린아이처럼 취약한 존재가 된다. 


24쪽  우리가 세상에 주의를 기울이는 방식은 '무엇을 지각하는가' 뿐만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 우리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활동을 잘할 수 있도록 지각 능력을 연마하는 동시에 자신이 가장 잘 지각하는 활동에 참여하고 싶어한다.


69쪽  유년기를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로 보낸 리엄은 선을 사물의 테두리로 인식하지 못했다. ... 리엄과 그의 의사들이 곧 깨닫게 되었듯이, 선과 색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고 해서 본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흘깃 볼 때 선이나 색 같은 특징들을 따로 인식하지 않는데, 그건 선과 색이 사람, 동물, 사물, 풍경 속의 한 부분에 속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105쪽  성인이 되어 시각을 얻은 사람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리엄은 세부에 집중했지만 그것들을 의미 있는 전체로 조립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그런 까닭에 얼굴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을 본 첫인상을 아름답다거나 설렌다고 묘사하는 일도 없었다.


187쪽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의 교육자이자 활동가였던 헬렌켈러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시각장애는 우리를 사물과 단절시키지만 청각장애는 우리를 사람과 단절시킨다."


211쪽  만일 대부분의 청각장애 아동에게 인공와우를 이식하고 청인 세계에 살도록 교육한다면, 농인 문화와 수어, 즉 농인을 지탱하는 공동체와 언어는 어떻게 될까? 농인들의 이런 반대와 우려는 인공와우 이식이 보편화된 1990년대에 절정에 달했고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216쪽  조흐라가 인공와우를  착용했을 때 들린 소리는 크고, 무섭고, 불편했다. 그는 이러한 감각 정보를 다른 사람들이 거기서 발견하는 의미와 일치시키지 못했다. 우리 대부분은 배경 소음을 무시하지만 대개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우리와 달리 조흐라는 소리의 폭격을 맞고 있었다. 


219쪽  볼 수 없는 것을 들을 수 있다는 건 마치 갑자기 벽을 뚫고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처럼 매혹적이면서도 불안한, 기묘한 경험이었다.


228쪽  이제 조흐라는 사람들을 보지 않고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방에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건 눈이 하나 더 생긴 것과 같다고 조흐라는 말했다. 소리는 조흐라에게 소속감을 주었다.


260쪽  인공와우는 음높이와 음색에 대한 감도가 정상 귀에 미치지 못한다. 인공와우 사용자 중 반음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며, 반 옥타브 차이의 음을 구별하는 것조차 어려울 수 있다.


276쪽  리엄과 조흐라는 수술 전 이미 세상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수술 후 쏟아져 들어오는 의미 없는 감각 정보에 압도되었다. 여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감각 정보가 그들이 원래 알고 있던 범주들에 속한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었다. 



리엄과 조흐라는 다행히도 그들을 포기하지 않고 옆에서 보살피고 응원하는 조력자가 있었습니다. 새로운 감각 세계에 도전하는 그들의 용기도 큰 역할을 했을 겁니다. 우리의 감각 그리고 학습하며 성장하는 과정이 헤아릴 수 없이 복합적인 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달았습니다.



매력적인 책을 차근차근 읽도록 여유를 주신 김영사 출판사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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