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낳고 키우면서 내가 이렇게 살았다. 너라고 다를 수 있겠어?'
어렸을 때 이 말을 들으면 그녀는 앞으로 다가올 삶이 두려웠다. 자신의 어머니처럼 살게 될까 봐 그리고 자신도 딸에게 그런 삶을 대물림하게 할 것 같아서. 가끔씩 과거는 어머니를 놓아주지 않고 쫓아와 어느새 진창 속에 빠뜨려버렸다. 신기한 건 어머니가 그곳을 빠져나올 의지가 없어보였다는 것이다. 억울하고 분한 그때로 되돌아가 고스란히 그 일을 다시 겪어내고 있었다. 그럴 때면 어머니와 묶인 그녀 역시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의식 속에 묻힌 채 언젠가 발현될 때만을 기다리는 이 신내림같은 저주를 그녀는 끝내야만 했다. 그녀가 배운 삶에는 슬픔, 희생, 포기와 같은 것만 있지 않았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과 그녀 자신을 분리해내야 했다. 구렁텅이에 같이 빠져있는 건 온전한 사랑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기어 올라가 밧줄을 내려주어야 했다.
그녀는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살갗에 남은 흉터, 새빨간 혀로 지진 과거 상처들을 떠올리면서 오를 수 없을 것 같던 벽에 몸을 붙였다. 손톱이 깨져 피가 흐르고 검은 흙에 피부가 짓이겨졌다. 그녀는 잇따라 미끄러지는 발로 간신히 버티면서 올라갔다. 저 너머 무엇이 있을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이 구덩이에서 벗어나는 것이 올가미에 씌인 두 짐승을 살려내는 일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