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글쓰기 #무엇인가영원히지나가버렸다고
주르륵. 갑자기 가슴이 조여오며 두 눈에서 눈물이 흐릅니다. 어, 왜 이러지? 방금 전까지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얘기하고 웃었는데. 자리에 앉은 나는 우는 이유를 몰라 당황합니다. 우선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스윽 닦고 이내 화장실로 달려갑니다. 아이들이 없는 곳으로 숨기 위해 화장실을 떠올린 겁니다. 눈물이 계속 흐르고 내 몸에서는 엉엉 울고 싶다는 신호를 보냅니다. 다행히 아무도 없습니다. 문 열려 있는 곳 아무데나 들어가 소리내 엉엉 웁니다.
조만간 친구들이 날 찾아올텐데, 그때까지 이 먹먹함을 지워야 합니다. 곧이어 아이들이 내 이름을 부르며 왔고 난 붉어진 눈으로 마주합니다. 너 왜 울었어? OO가 이런 말을 했는데 속상해서. 그랬구나, 걔 신경쓰지마. 어제 티격태격한 친구를 핑계대며 미안해합니다. 다정한 친구들에 싸여 점심도시락을 먹으러 교실로 갑니다. 내 인생의 2막은 초등학교 화장실에서 시작됩니다.
이후 사람 눈에서 이렇게 많은 물이 나올 수가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1년 동안 거의 매일 운 듯 합니다. 사람, 사물의 그림자만 보이고 또 그 검은 회색에 담긴 게 어찌 그리 슬픈지 눈물샘을 콕콕 찌릅니다. 모든 게 나름의 사연을 갖고 있는데 우울증은 그걸 멋들어지게 포장합니다. 그러면 나는 늘 눈물로 대답을 합니다. 이런 시간을 서너 해 동안 보내고 나니 몸도 마음도 낙엽처럼 바스러질 듯 합니다.
고등학생이 되자 우울증에게 내 삶을 맡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가족, 친구들, 여행 같은 것에서 조금씩 기쁨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여전히 슬픔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날 휘두르지만 그때마다 내 안에 기쁨도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렇듯 외부에서 일어나는 사건보다 내 안에서 생기는 전쟁을 다루는 데 급급합니다. 끝나지 않는 혼란을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 같은 막연한 미래에 낙담하며 그렇게 커나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수업에서 나의 심리검사 결과를 분석해서 발표하는 시간이 옵니다. 검사지가 제법 잘 만들어진 듯 합니다. 강박증, 편집증, 불안증이 현란하게 뒤섞여 있는 걸 보면서 심리적인 문제의 원인과 그걸 해결하기 위한 심리치료 방향을 발표합니다. 그때 나는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느낍니다.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무겁고 차가운 기운. 날 쓰러뜨리려 했지만 동시에 나를 사랑해주기도 했던 무언가가 소리도 없이 인사도 없이 가버린 겁니다. 발표를 마친 뒤 조용히 눈물이 흐릅니다. 그런데 이 눈물은 여태까지의 것과는 다릅니다. 메마른 찬 공기 속에 어디선가 날아 온 따스한 불씨의 온기가 퍼지는 걸 느낍니다.
나는 그동안 가장 가까이에 있던 우울과 이별합니다. 나와 함께 지내 온 슬픔을 떠나보냅니다. 많이 울지 말자고, 우는 법은 누구보다 잘 아니 이젠 웃는 걸 배우자고 나에게 약속하듯 말합니다. 인생 3막이 시작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