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이 좋은 곳들을 우리만 보기 너무 아깝다”
세계여행 중 우리의 단골 멘트였다. 특히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다. 우리 키우신다고 고생하셨는데 우리만 호강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늘 따라다녔다.
한 번은 오스트리아 빈에 유명한 카페에서 ‘비엔나커피’를 주문해서 마셨더니 어릴 적 엄마가 맥심 커피에 투게더 아이스크림 한 숟가락 넣으시며 이렇게 먹으면 비엔나커피라고 알려주시던 때가 생각이 났다.
미국 그랜드 캐니언 마더스 포인트(Mother’s point)를 보면서도 여름철 가족들과 놀러 갔던 부산 범어사 계곡에서 행복해하셨던 부모님이 떠올랐다.
우리의 발자국이 찍힌 세계 곳곳마다 다음엔 부모님을 모시고 오겠노라고 기약 없는 약속을 하며 발걸음을 옮겼지만 6년이 지나도록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렇게 생각만 하다가는 시간만 흘려보낼 것 같아 정인이와 난 양가 어머님 두 분과 함께 갈 여행 적금을 먼저 들어버렸다. 적금 이름은 ‘밀사돈’으로 명명했다.
○ 엄마, 장모님 우리 같이 신혼여행 가요
우리가 여행한 약 35개국의 나라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뉴질랜드’였다. 독특한 화산 지형에서 느낄 수 있는 압도적 풍경은 감히 인간이 만들어 내는 그 어떤 조형물보다 아름다웠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밀포드 사운드’인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트레킹 코스이기도 하다. 적금 이름 ‘밀사돈’은 바로 이곳의 줄임말이기도 하거니와 사돈끼리의 은밀한 여행 자금이란 중의적 의미까지 더했다.
적금을 2년 동안 모은 덕에 여행 자금은 어느 정도 준비되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우리의 시간이었다. 뉴질랜드는 한국에서 직항으로 약 11시간이 넘는 장거리 비행이 불가피하고 남섬과 북섬을 두루 여행하기 위해선 적어도 보름 정도의 휴가를 낼 수 있어야 했다. 아무리 요즘 직장 문화가 좋아졌다고 해도 휴가로 보름을 빼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다가 엄마와 장모님도 일을 하고 계셨기에 일정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신혼여행을 어머님들이랑 같이 다녀오자!”
“정인아 너 괜찮겠어?”
“뭐 어때? 우린 이미 원 없이 여행 다녀왔잖아. 이럴 때 아니면 시간 빼기도 힘들어”
정인이의 화끈한 결정에 양가 어머님 두 분께 신혼여행 겸 뉴질랜드 여행을 가자고 제안드렸다. 머뭇거리시던 어머님들은 우리의 진정성을 받아주시고 결국 같이 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장모님은 이 여행을 위해 다니시던 직장도 그만두셨고, 우리 엄마는 여행 떠나기 2주 전 급성 신우신염에 걸려 병원에 입원까지 하셨지만 출발 이틀 전 극적으로 퇴원하시는 의지를 보였다.
○ 뉴질랜드 캠핑카 여행
“와 역시 뉴질랜드가 다르네. 비행기 착륙도 엄청 부드럽네 아들아”
“엄마 아직 땅에 닿지도 않았어요”
들떠있는 엄마의 유쾌한 너스레가 분위기를 올려주었다. 여행의 설렘을 느끼는 건 장모님도 비슷했다. 소녀처럼 좋아하시는 어머님들의 모습에 역시 오길 잘했다는 만족감이 차오르는 순간 그제야 우리의 발이 뉴질랜드에 닿았다.
7년 전 캠핑카로 뉴질랜드를 여행했던 그 맛을 느끼게 해드리고 싶어 대형 캠핑카를 렌트하였다. 열흘 넘게 캠핑카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하는 꽤나 긴 강행군이기에 처음엔 어머님들의 체력이 버텨주실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한 것이 있다. 대한민국의 어머니는 강하다는 것. 굴곡진 세월을 넘어오시며 달려온 두 분의 슈퍼 적응력은 여행 내내 젊은 우리를 압도하였다. 더 재밌는 점은 두 분이 여행을 하시며 여고생 단짝처럼 매우 친해지셨다는 것이다. 비슷한 연배이신 데다 살아오신 시대도 공통된 부분이 많아서 그런지 유달리 공감이 잘 되시고 긴밀한 유대감이 형성되는 모습이 우리마저 웃음 짓게 만들었다.
우리는 뉴질랜드 퀸스타운에서 캠핑카를 빌려 푸카키 호수와 쿡 산을 트레킹 하고 배를 타고 북섬으로 넘어와 남은 여행을 이어갔다. 역시 여행은 ‘어디로 가느냐’ 보다 ‘누구와 가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진 시간이었다.
“엄마 이번 여행 어땠어요?”
“비현실적이었어. 꿈꾸는 것 같았어”
꿈을 꾼 것만 같은 뉴질랜드 여행은 끝이 났지만, 우리의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엄마와 장모님을 뵙고 함께 이야기로 재생되는 매 순간이 ‘밀사돈 신혼여행 시즌2’로 이어지고 있으니까.
“우리도 어머님, 장모님과 여행할 수 있어서 더없이 행복했어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