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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정직하다. 계속된 부상…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 나이와 신체 능력.

내 페이스를 무시하고 열정만으로 연습량을 늘렸더니, 몸이 고장 나기 시작했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인지했음에도 “철을 모르는 철부지”처럼 강행군을 이어갔다.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한 2024년 3월을 시작으로

나의 러닝 역사(?)는 채 1년이 되지 못했다.

매일 수요일 저녁 8시 5킬로 달리기를 시작으로

양재천 러닝 크루에서 꾸준하게 달리기를 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때는 러닝 시작과 끝에 크루원들과 함께하는 준비운동만으로도 충분했다. 다른 근력 운동이 필요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2~3번 5킬로 달리기가 전부였으니...





지난여름, 숨 막히게 더웠던 6~8월에도

매일 새벽런 6킬로를 달렸지만,

그때도 꾸역꾸역 괜찮았다.

“몸이 보내는 적신호”보다

달리면서 정돈되는 나의 뇌 호르몬으로

아이들을 더 큰 품으로 사랑해 주고, 폐경으로 힘들었던 나 자신도 감당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빠르게 달리고 싶다는 욕심.


다른 상위레벨 크루원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마음.

그때부터 무리를 했다.

10킬로를 겨우 소화하는 내 체력을 모른 척하고, 20킬로 하프 마라톤에 나가고, 높은 레벨의 달리기 세상을 흠모했다.

평소 좋지 않던 경추가 신호를 보내서 도저히 달리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당일 취소를 하는 사람의 모습을 크루원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당일 약속을 취소하는 사람, 무책임한 사람처럼 보이면 어떤데? 실제로 나는 무책임한 사람이 아닌데…)

목도 안 돌아가는 상황에 새벽 5시 한강 모임에 나가서 내 상태를 보여주고, 인증샷을 찍고 집으로 돌아왔다.

미련스럽다. 멍청하다. 아직도 남의 시선이 중요하고, 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이 그득그득하구나…


국민학교 때 열이 펄펄 끓는 나를 등에 업고, 조퇴처리를 하고 온 그날은 엄마의 개근상 욕심이었지만,

이날은 상위레벨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내 욕심이었다.

2024년 7월 한여름의 양재천 매헌 주차장





로마마라톤 풀코스 준비를 앞두고,

42.195km를 달리는 (적어도 달리기 역사가 2~3년 이상은 된) 상위 레벨의 사람들과 훈련을 시작했다.

(앞서 말했지만) 평소 5~6킬로를 뛰는 나는,

매일 10킬로를 달리고, 일주일에 2~3번 20킬로를 뛰게 되었다.


그리고 왼발 가자미근 통증을 애써 무시하면서 계속 달렸다. 참다못해 병원에 가니, 달리기를 무조건 쉬어야 한다고 했다.

불안했다. 하루도 못 달리는 상황이 불안했다. 쉬어본 적이 없고, 무식하게 마일리지(=달리는 거리)를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2주를 쉬었고, 괜찮아질 만하면 또 달리고를 반복.

가자미근 통증은 완화되었지만, 이번엔 오른쪽 발목이 문제였다.

이쪽 통증은 2주를 쉬었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또다시 2주 총 1달을 쉬고, 여러 주사와 치료를 받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점이 있다.


1. 난 여전히 내 몸 상태를 무시하고 있었다.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고, 타인의 시선과 조언을 받아들였다. 내 몸이 아플 땐, 타인과 잡은 약속보다 내 몸의 신호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그리고 약속을 취소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최대한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단호하게 말하면 되는 것이다.

2. 휴식도 훈련이다.

이는 어쩌면 가장 어려운 훈련이다. 마음 훈련이기 때문이다. 불안함을 내려놓고, 현재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캐치하며 푹 휴식을 취해야 한다. 오래 건강하게 달리고 싶다면…

3. 내 평균페이스는 1km에 6분 30초. 이 페이스로 달릴 때가 가장 편안하다. 그 페이스를 5분대로 줄이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이 욕구는 타인을 보고 생긴 모방욕구이다.

그 욕구를 채우기 위해 나는 업힐 훈련도 하고, 장거리 횟수를 늘려가며 매번 무리를 했다.


단기간 (1년도 안된 시간 동안)에 내 신체나이를 무시하고 열정만으로 페이스를 끌어올리려 했다.

그런데, 타인과 비교가 없었다면, 빨리 달리는 것보다 아름답게 달리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몸이 크게 아프고 나서야, 타인과 나를 비교하지 말고

내 신체 나이와 능력을 고려하여, 아름답게 달려야 함을 깨달았다.




로마마라톤 d-27

근본에 충실하여 코어 근육과 다리 근육을 키우기 위해 근력운동을 하고 있다.

섭3는 커녕 섭4도 목표가 아닌데, 이렇게 불안해하고 악몽을 꾸는 나를 바로 보고

완주를 목표로 매일 정해진 시간 안에서 훈련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아름답게 완주하는 것이 나의 목표임을 다시 한번 상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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