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이가 예민하다는 말을 내 입으로 꺼내기가 싫다.
아이의 이마에 주홍글씨를 새기는 것 같기 때문이다.
예민한 본성에 대해서 예민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당당하지 못한 나도 싫다.
아이 둘을 낳았지만, 두 아이의 식성과 성향, 그리고 나를 대하는 대하는 태도가 저리 다른 걸 보면
환경이 변화시키지 못하는 “인간 본성”의 영역은 분명 존재한다.
강박증을 진단받고,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해서
아이에게 화풀이하는 내 본성을 마주하며,
밑바닥까지 간 스스로가
잠자기 전 얼마나 부끄럽고 후회를 했던가..
이탈리아 로마마라톤을 신청하게 된 첫 번째 이유는
서원이의 강박증때문이었다.
작년
아이도 나도 힘들 때, 나를 잡아주었던 건 “달리기”였다. 그래서 더더욱 내가 달리기에 매달리고 있다.
풀마라톤을 준비하면서, 괜한 도전이라는 생각과 계속된 부상으로
주객이 전도된 상황까지 이르면서
<아이의 성장과 나의 성장을 나란히 두고 있는 사람>이라고 나를 보기좋게 포장했다.
아이를 달리기에 입문시키고 싶으나,
같이 달리면서 “오만 짜증을 다 내는 아이의 본성”과 내 본성이 항상 부딪히며
어느 순간 아이의 마라톤은 마음만 있게 되었다.
이걸 <8살의 지영>을 함께 양육한다고 합리화했다.
이탈리아를 오기 전에 서원이가 자신의 롤모델로 삼았던 이안이 형
그 형을 얼마나 오랜 기간 꾸준히 좋아했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그 나이에 당연한 형의 무심한 본성에
아이는 “기분이 이상하고 속상하다.”라는 말을 했다.
알고 있었다. 내 눈에도 보였기 때문에
반면, 누구와도 잘 어울리고 그 사이를 잘 파고드는 둘째 지온이가 야속하기까지 했다.
형을 만난 지 하루 만에 아이의 본성은 탁구공처럼 예측하지 못하는 곳으로 튀어 올랐다.
미운 행동만 했고, 이상한 말만 했고, 이기적인 태도만 보였다.
그것이 내 눈에는 자기의 본성을 지키려하는
처절한 전투처럼 보였다.
풀마라톤을 뛰고 쓰러질 것 같은 나에게 달려온 아이는
엄마를 안아주고 이해해주긴 커녕,
메달을 자기만 달라며 왜 먹을 것이 없냐고
감당하지 못한 자신의 속상한 기분을 돌발행동으로 드러냈다.
지온이와 사뭇 다른 아이의 태도에 짜증도 났지만
한편으로는 저 본성을 어떻게 지켜주며 양육을 해야 하는 걸까?라는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마라톤 완주 후 죽을 것 같은 체력으로 아이의 손을 꼭 잡고 걸으며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서원아.. 지금 너의 말과 행동은 엄마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
[아닌데... 나는 엄마 진짜 사랑하고 걱정하는데... 정말이야. 진짜 걱정해..]
“그럼 그 상황에서 먹을 것 달라고 말하지 않고, 엄마
괜찮아요? 물어보는거야..“
[엄마! 괜찮아요?]
“서원아.. 세상에는 <내가 말을 했을 때 못 듣는 척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어.
그땐 니 스스로가 판단을 해야 해.
저 사람이 정말 내 말을 못 듣는 것인가? 그럴 땐 내 말을 못 들었으니, 다시 한번 말해도 돼.
하지만 상대를 중요하지 않는 사람으로 여겨 니 말을 못 듣는 척하는 사람이면,
그걸 당황스러워하는 건 당연해. 그리고 솔직하게 네 마음 니 기분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니 기분을 상대에게 표현하는 것이 어려우면, 그땐 엄마에게 말해도 좋아.
네 말을 무시한다고 네가 소중하지 않은 존재는 아니니까.. “
신나게 어울리던 아이가 여행 4일 차부터
나에게 계속 파고들기 시작했다.
엄마를 배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 존중해 달라고 무섭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나는 화내지 않고, 아이의 본성으로 바라보고,
일방적 허용이 아닌
그 상황과 경험 속에서 본인의 감정을 컨트롤하며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때,
경험치가 쌓이며 아이의 본성이 잘 다듬어지길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예민한 아이로 바라보는 시선이 내내 마음에 걸리는 새벽이었다.
자려고 침대에 누웠을 때, 마음 그물에 걸리는 곳이 많아 그걸 없애려고 글을 쓰고 있는 고요한 새벽이다.
다음엔 ‘그런 아이를 데리고 사는 나는 어떻겠냐며 가볍게 말하지 않고’
본성을 지켜주며 살아가게 해주고 싶어 매일 고민한다고 말하고 싶다.
아이의 본성, 타인의 본성, 그리고 나의 본성
예민함.. 그냥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약한 번 먹지 않고 혼자만의 방법으로 잘 이겨내고 있지 않은가…
엄마만 찾는 아이를 더 크게 안아주고,
정답이 아닌, 방향을 제시해 주는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라고 다시 한번 결심하게 된다.
이 글을 쓴 지금 현재,
바닥까지 내쳤던 내 본성은 회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