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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Mar 25. 2020

신중한 연습만이 탁월함을 만든다

일상을 조종하는 무의식의 힘.

데이비드 브룩스, 그가 왔다   

  

우리에게 『보보스』의 작가로 알려진 데이비드 브룩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를 갖고 『소셜 애니멀』로 다가왔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부르주아와 보헤미안을 결합한 ‘보보스’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이미 우리에게 지적인 자극을 선보인 바 있다. 그는 『소셜 애니멀』에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사회를 발전하게 하는 근본적인 힘은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들을 다양한 사례와 이론으로 조고 조곤 설명하고 있다.    

  


소설 속 해럴드와 에리카의 인생 여정을 사회학, 심리학, 문화 전반에 대한 이론으로 잘 버므려 놓아 말 그대로 쫀득한 지식 소설 한 편을 씹어먹는 느낌이다.  책에 실려 있는 이론들이 방대함은 물론 심오하기까지 해 캡슐로 된 영양제 한 통을 다 털어 넣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흡인력 또한 좋다. 


일단 저자는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라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성에 부합되는 존재라기보다는 순간의 감정에 따라, 또는 몸짓과 냄새와 같은 비언어적인 요소로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린단다. 너무 쉽게 판단하고 제멋대로 인식하는 존재이기에 사람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은 감정이나 직관, 충동과 같은 내면의식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의식의 영역에서 혁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유전학자, 신경과학자, 심리학자, 사회학자, 경제학자, 인류학자, 수많은 전문 영역의 학자들이 인류가 지금처럼 번성할 수 있는 요인이 무엇인지 밝히려고 노력한 끝에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이렇게 해서 학자들이 알아낸 내용의 핵심은, 현재 인간이 누리고 있는 번영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의식적인 사고 과정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의식보다 한 차원 아래에 있는 것, 즉 무의식적 사고 과정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무의식의 영역은 정신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바로 이곳에서 대부분의 결정이 이루어진다. 보이지 않는 이 무의식의 영역이 바로 성공의 출발점이다.” 
   _『소셜 애니멀』, 「서문」 중에서      



무의식이 조종한다 


출처: 다음

대부분의 결정이, 심지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무의식이 관여함을 케이퍼 영화 <포커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난 누구든 속일 수 있어”라고 말하는 베테랑 사기꾼 ‘니키’(윌 스미스)는 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할렘가의 유명했던 사기꾼이다. 니키에게 사기를 치려다 들킨 제시(마고 로비)는 신참내기 사기꾼이다. 제시는 니키에게 사기의 기술을 배워 니키의 조직으로 들어가 사기행각을 벌이게 된다.   

   

미식축구 "메르세데스 슈퍼돔"에 들어가 관전을 하지만 미식축구를 싫어하는 제시를 위해 게임을 한다. 옆에 있던 소문난 도박꾼인 리유안이 자기도 끼워달라고 조른다. 리유안은 참 독특한 캐릭터이다. 그는 어떤 내기든 가리지 않고 현금만 내기에 리유안이 카지노에 온다고 하면 빌 게이츠가 쫓겨날 정도로 소문난 도박꾼이다. 이런 리유안에게 니키는 계속 져주는 척하다가 흥분해서(흥분한 척하는 것이지만) 판돈을 크게 올린다. 쌍안경으로 선수 한 명을 리유안이 고르면 등번호를 맞히는 조건으로 200만 불을 걸고 도박을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제스에게 등번호를 맞추라고 하지만 쌍안경 너머에는 같은 사기 조직의 파하드(아드리안 마르티네즈)가 55번을 달고 있다. 파하드를 확인한 순간 제시는 리유안이 눈여겨 둔 등번호가 55번임을 단번에 알아차린다.      


제시의 “그가 누굴 고를지 어떻게 알았냐”는
질문에 니키는 명쾌하게 말한다.
“우리가 시킨 거”라고.


니키는 사전에 리유안이 55번을 고르도록 하루 종일 리유안의 무의식에 주입을 한다. 호텔 방을 나올 때부터 계속 종일 55란 숫자를 보도록 물밑 작업을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로비에서 하물며 도어맨의 핀에까지 55라는 숫자를 뿌려놓은다. 호텔에서 경기장 가는 길에서도 창밖을 보면 사방에 55로 도배를 한다. 리유안이 의식하지 못한 채 55에 익숙하게 한다. 화병의 꽃 숫자에도 지난밤 방에 넣어준 매춘부의 등 문신에도 55번을 보게 만든다. 

출처: Netflix의 영화 <포커스>


이뿐만이 아니다. 청각으로도 무의식에 심어놓는다. 중국어로 5는 '우'인데 리유안이 듣는 노래 속에 '우'가 123번이 나오는 것을 계속 틀어놔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쌍안경을 들고 필드를 보자 55번을 단 유니폼을 입은 낯익은 얼굴 파헤드를 보게 된다. 보는 순간 머릿속에 그걸 고르란 소리가 들렸고 그걸 직감이라 생각한 리유안은 55를 선택해 결국 니키에게 패배한다. 


『소셜 애니멀』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나온다.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럼비아에서 있었던 실험으로 실험대상자인 젊은 남자들에게 위험해 보이는 다리를 건너라고 했다. 물론 한눈에 봐도 위험해 보이는 다리였다. 다리를 건너느라 심장이 두근거리는 상태에서 미녀가 다가가 설문조사를 한 후 전화번호를 가르쳐줬다. 65%가 이 여성에게 전화를 해 데이트 신청을 했다. 벤치에 앉아 있는 또 다른 청년에게 똑같은 여성이 똑같은 행위를 했는데도 전화하고 데이트를 신청한 비율은 30%에 그쳤다.  위험해 보이는 다리를 건너느라 청년들은 한껏 심장이 콩닥거린 상태였는데, 이들은 다리 건너편의 여성 때문에 흥분한 것이라고 여겼다.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 일상에서 이와 같은 판단을 내리게 된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무의식은 많은 것을 맡아서 하고 있다. 내면의식과 같은 ‘무의식’은 합리주의를 추종하는 분위기로 인해 그동안 ‘의식’에 묻혀 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데이비드 브룩스는 무의식이 정신과 육체를 연결시킴은 물론 사회의 수많은 상호작용 속에서 사람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신중한 연습만이 탁월함을 만든다 

    

책에는 평범함과 비범함을 가르는 단 하나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다.      

단지 연습에 들인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이류 수준의 업적을 남긴 사람은 즐겁게 연습했다. 반면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은 가장 신중하고 자기비판적으로 연습했다. 이런 사람들은 흔히 전체를 가장 작은 요소로 해체한 다음 작은 요소를 계속 반복해서 연습했다.  

    

천재성을 평범한 재능과 구분하는 핵심적인 요소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더 나아질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한다. 소위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살풍경하고 청교도적인 연습"을 통해 자신을 갈고닦았다. 모차르트가 어린 나이에 달성한 연습 총량이 1만 시간 이미 넘어섰고 최고의 연주자들은 평균적인 연주자들보다 5배 더 많은 시간을 연습했다. 신중한 연습을 바탕으로 위대한 업적을 쌓을 수 있었다. 


이들에게 성실하게 신중한 연습을 하도록 한 원동력에 대해 찾아보다가 유튜브에서 베이시스트 엔서니 웰링턴의 의식의 4단계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IbgehaiK64&feature=youtu.be


첫 번째 단계인 무의식적 무지 無意識的無知- Unconscious Not Knowing이다. 무엇을 모르는지 조차 알 수 없는 때로 어린아이가 악기를 선물 받았을 때를 생각하면 된다. 그걸로 연주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기에 행복한 상태를 말한다.

두 번째 단계는 의식적 무지意識的無知-Conscious Not Knowing이다. 자신의 지식을 확실히 깨닫게 된다. 말하자면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게 되는 단계이다. 취미 수준의 많은 사람들이 이 상태에서 머물다가 포기한다.  

세 번째 단계는 의식적 지식 意識的知識-Conscious Knowing이다. 두 번째 단계에서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배워나가면 세 번째 단계에 도달한다. 자신의 연주 실력은 물론이고 음악적 지식도 쌓인다. 이 단계에서는 항상  자신의 연주 실력이나 지식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하기에 행복하지 않다.  '많은 뮤지션'들이 대부분 이 단계에 머문다고 앤서니 웰링턴은 지적한다.  

네 번째 단계는 무의식적 지식 無意識的知識-Unconscious Knowing이다.  마지막 단계인 이 단계에서는 자신의 연주 실력을 너무나 잘 파악하고 있어서 생각할 필요조차 없이 연주하게 된다. 연주하는 것이 직감적으로 와 닿게 되니 즐기는 상태가 된다. 말 그대로 행복한 상태를 경험한다. 


 최고의 연주자들이 업적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엔서니 웰링턴이 말하는 의식의 단계를 완수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의식적 무지의 단계'에서 포기하지 않고 '의식적 지식 단계'로 넘어가 그 레벨에서 쌓은 지식을 신중한 연습을 바탕으로 견뎌낸다. 또한 이 단계를 지나면 연습하는 행위와 연습하는 내가 한 몸이 되어 '무의식적 지식'의 단계에 도달한다. 결국 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연습에 할애해 최고의 연주자로서의 위상을 지니게 된다.  


사실 이 영상을 보면서 많은 부분이 공감이 되었다. 의식의 4단계는 음악뿐만 아니라 지식을 쌓든 체력을 쌓든 글을 쓰든 모든 것에 해당될 것이다. 내가 쓰는 글도 무의식적 지식의 단계까지 끌어올리고 싶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소망이 용솟음치고 있다. 나의 시선을 붙잡은 것은 단연 벤저민 프랭클린의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영국의 시사주간지 <스펙 테이저>에 실린 에세이를 읽고 종잇조각에 에세이에 실린 모든 문장에 대해 코멘트를 썼다. 그 종잇조각을 마구 뒤섞어 몇 주후에 들춰본 다음 메모 조각을 순서에 따라 맞춰본다. 그 뒤 메모를 이용해 에세이 원문을 다시 썼다. 이렇게 하면 글의 구조를 익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원문에 비해 자신이 쓴 어휘가 처진다는 생각이 들면 에세이를 시로 바꾸어 썼다. 시간이 몇 주 정도 흐른 다음 이 시를 바탕으로 원문 에세이를 복원해서 썼다. 이런 과정을 반복해서 하게 되면 글이 안 늘래야 안 늘 수가 없다. 글쓰기 덕분에 벤자민 프랭클린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거듭나게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지루하게 반복할 수 있는 자기 통제력도 사실은 무의식이 그 역할을 한다. 솜씨를 갈고닦는데 훨씬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 악보 한쪽을 놓고 세 시간 동안 연습하는 것, 이렇게 자기가 익히는 기술의 작은 부분까지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게 하는 것도 다 무의식이 이끄는 것이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하고 결정하고 있다고 믿는 것조차도 사실은 무의식이 하는 일이다. 이렇듯 학문적 성취와 직업적 숙련도에도 무의식의 힘은 결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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