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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Nov 17. 2020

조엔 롤링을 향한 망상

<바깥은 여름> 중에서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의 첫부분-이어서 쓰기

올봄 스코틀랜드에 사는 사촌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남편과 곧 휴가를 떠나는데  한 달간 집이 빈다고, 내게 혹 머물 생각이 없냐는 거였다.

친척들 간에 명혜 언니는 독보적 존재였다. 사촌들 간에 시집을 제일 잘 가 외국 나가서 산다며 엄마는 틈만 나면 지수를 보며 한심해했다.

공부도 명혜 보다도 더 잘했고 얼굴도 지수가 더 예쁜데도 남편 잘못 만나서 아니 고집부리다 저렇게 산다고 혀를 끌끌 찼다.


그렇게 말렸는데 굶는 과를 가더니 그것도 모자라 남자까지 기어이 거기서 만나 거지처럼 살고 있다고 부끄러워했다. 굶는 과 가면 굶어 죽기 딱 알맞다고 원서 쓸 때부터 말렸던 엄마였다. 지수는 엄마가 말끝마다 국문과를 굶는 과라고 할 때마다 엄마의 입을 틀어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말의 힘이 얼마나 센지 정말로 지수는 엄마가 말한 대로 쫄쫄이 굶다시피 살았다. 국문과를 나와도 남들처럼 논술 선생이라도 하면 입에 풀칠이라도 하련만 지수는 도통 가르치는 데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글 쓰는 데에만 힘을 쏟았다.


지수 남편 상혁도 일을 하기보다는 전업작가로 살아가기를 원했다. 돈벌이에 급급한 동창들을 우습게 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속물들이라고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냈다. 같은 굶는 과를 나와도 상혁의 친구들은 문단의 선배들한테 빌붙어 한 자리라도 차지했다. 00 협회 ##구 회장직들을 맡아 문학소녀들을 꿈꿨던 주부 수강생을 받으며 잘들만 살아내고 있었다. 구청에서, 주민센터에서, 문화센터에서 강의 자리들을 맡아 일상을 잘 꾸려갔다.      



한쪽이라도 밥벌이를 하면 좀 더 나으련만 지수네  부부는 둘 다 전업 작가를 꿈꾸다 보니 하루 한 두 끼 먹는 날이 비일비재했다. 간헐적 단식한다며 다이어트를 하는 것도 아닌데 요즘 같은 세상에 밥을 굶고 있었다. 사랑이 대문으로 들어왔다가도 돈 떨어지면 창문으로 나간다는 말답게 지수 부부의 사랑전선에는 붉은 신호등이 켜졌다. 깜박거리다 못해 이젠 그마저도 신호가 없어져 버렸다. 서로 말을 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다가 결국 상혁은 부모가 있는 고향집으로 내려가 버렸다. 같이 가자고 설득해도 모자라는  판에 상혁은 짐을 싸며 지수를 힐끗 쳐다봤다.

 한다는 소리가 “따라오려면 따라와도 좋고.” 하며 조금 뜸을 들이다가 그냥 가버렸다.    

  


황망한 마음에 우두커니 보내고 있던 차였다.

 그 잘난 명혜 언니가 한 달간 집이 비니까 머물러도 좋다는 연락이 온 거였다. 그 말에 지수는 죽었던 뮤즈가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신춘에 자꾸 떨어지는 것도 공간을 바꿔 보면 기회가 다시 올 거라는 희망이 불끈 올라왔다. 최종심에서만 탈락한 게 십 년 째였다. 지수 스스로 “내가 재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운이 나빴을 뿐이야”하면서 마음은 벌써 스코틀랜드로 날아갔다.

    

 

명혜 언니네 집은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이 전혀 없을 정도로 주방이고 침실이고 너무도 깨끗했다. 이 주방에서 밥은 해 먹고사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지수는 스코틀랜드에 있는 한 달 동안의 계획을 아주 단순하게 짰다. 계획이랄 것도 없었다. 조엔 롤링이 커피 한 잔 시키고 하루 종일 글만 썼다는 에든버러에 있는 ‘엘리펀트 하우스 카페’에서 조엔 롤링처럼 하루 종일 글을 쓰는 것이 지수가 세운 계획이었다. 마침 명혜 언니 집은 스코틀랜드의 수도인 에든버러에 있었다.       


출처: Pixabay


명혜 언니가 에든버러에 산 다고 할 때부터 나도 조엔 롤링처럼 카페에서 글을 써야지, 그녀가 앉았던 자리에서 글을 써내야지 결심을 해왔던 터였다. 마음만 먹으면 ‘해리포터 시리즈’쯤은 써낼  자신이 있었다. 조앤 롤링처럼 전 세계적인 작가로 성공해 굶는 과라고 비웃었던 엄마 얼굴에 돈다발을 원 없이 뿌려야지 하는 상상을 수도 없이 해왔었.

       

늘 꿈을 꾸어서 그런지 ‘엘리펀트 하우스 카페’ 가는 길은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카페는 에든버러의 작은 길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지수는 카페 안을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조엔 롤링을 꿈꾸는 예비작가들이 노트북을 연신 두드려대고 있었다. 그들의 불타는 눈빛은 모니터를 찌르고도 남을 기세였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지수는 조엔 롤링이 앉던 자리를 찾았다. 아뿔싸, 그 자리에 동양계 여성이 조엔 롤링처럼 노트북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글을 쓰는 것도 아닌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수는 잠깐 갈등했다. 저 자리는 내가 앉아야 되는 데 중국 여자인지 베트남 여자인지 가늠이 안 되는 까무잡잡한 여성이 앉아 있었다. 그녀가 자리 뜨기를 기다려도 일어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꼬박꼬박 졸기까지 했다.



출처: Pixabay



지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자그마치 17시간이나 비행을 해서 온 건 데 다른 자리에는 앉을 수 없었다. 참다못해 짧은 영어로 지수가 자신을 소개했다. 나의 꿈은 소설가이며 조앤 롤링이 앉던 자리에서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버킷리스트라고 말을 했다. 당신이 이 자리를 양보해 주면 전 세계적인 소설가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며 설득을 했다.

까무잡잡한 여성은 무표정한 채로 지수를 쳐다봤다. 중간중간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으로 보아 못 알아들은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지수는 다시 한번 용기를 냈다. 이 자리는 꼭 내가 앉아야 되는 자리니까 양보 좀 해달라고. 그러자 까무잡잡이는  같잖다는 듯이 헛웃음을 치며 단칼에 싫다고 거절을 했다.


화가 난 지수는 “내가 17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나의 버킷리스트라고!. 이 자리는 내가 앉아야 되는 자리라고”하며 소리를 질렀다.

까무잡잡이가 갑자기 일어서더니 들고 있던 커피잔을 지수에게 뿌렸다. 그러고도 분이 안 풀렸는지 지옥에나 가라며 욕을 했다.


커피는 지수 얼굴과 남방에 잭슨 폴락의 그림처럼 점점이 뿌려졌다. 사방으로 튄 잭슨 폴락의 갈색 점들을 보며 그동안 잠자고 있던 지수의 분분노가 씨뻘건 용암처럼 솟아올라왔다. 까무잡잡이의 머리채를 휘어잡고는 “내 자리니까 비켜. 비키라곳!” 악을 악을 썼다. 양손을 휘저으며 울부짖기까지 했다.  


그때 누군가가 등짝을 후려쳤다.

아이고 멍청한 것. 니 서방은 짐 싸서 나가곤 그 뒤론 소식도 없냐. 대낮에 무슨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잠꼬대를 해. 한심하다 한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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