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순희 Sep 04. 2021

올해 여름은 아주 바빴네요

올 1년은 시 쓰느라 바쁘게 지나갔다.

매주 한 편씩 시를 썼고, 가을부터 겨울까지 계획하는 것이 있어서 그동안 써왔던 시들을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그러던 중에 계간지에서 원고 청탁이 들어와 세 번이나 시를 싣게 되는 기회를 얻었다. 문단 활동을 전혀 안 하고 있는데, 발표할 지면이 생기니 그저 감사하고 복된 나날이다. 게다가 근래에는 내가 쓴 시 두 편이 평론가님에게 간택되는 영광도 있었다.



외부 활동은 거의 안 할 정도로 내 삶은 아주 단조롭게 흘러간다.

읽고 쓰고 아이들 가르치고 문체부 인문 강사로 군부대 용사님들이랑 건강가족센터의 30대 아기 엄마들과 영화로 인문고전 멘토링 활동을 하고 있다. 틈만 나면 걷고 배우러 다니는 게 전부다.



성인들 대상으로 하는 책 쓰기 아카데미 8주 차 진행이 끝났다. 감사하게도 7주 차에 출판사랑 계약한 예비작가님도 나와서 이래저래 이번 가을이 아주 풍요롭다. 원고를 반 이상 써놓으신 두 분 작가님도 곧 계약이 될 것으로 보인다. 늦어도 올 연말까지는 문체부 관할 건강가족센터의 아기 엄마들에 대한 큰 그림도 갖고 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브런치 작가로 만들어 드릴 계획이다. 가을이 가기 전 시월까지는 브런치 작가로 성공시킬 수 있는데, 허언이 될까 봐 말은 안 하고 있다.



내가 멘토링하고 있는 30대 아기 엄마들은 반짝반짝한 것을 아주 많이 갖고 있다. 아기 낳은 지 불과 두세 달도 안 된 아기 엄마들인데 열정이 대단하다. 마음껏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경단녀가 되는 것에 불안해하던 젊은 엄마들인데6 영화 보고 생각 나누고 글을 쓰면서 마음의 평온도 누리는 듯 보여서 보기 좋다.


일을 하고 싶다는 요구가 있어 블로그 쓰며 체험단 활동할 수 있는 것들을 싹 다 찾아서 안내를 했다. 블로그 활동이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모두 글로 독자층을 유인할 수 있기에 글쓰기 능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 진행하고 있다. 읽은 것이 있어야 글이라는 결과물이 나오기에 영화와 인문 고전을 함께 소개하며 간단하나마 글을 쓰게 하고 있다.



백만 년 만에 처음 글을 써보는 것 같다는 분도 있었고, 글 쓰면서 마음이 가라앉았다는 반응도 있었다. 경력이 단절되는 것에 애가 타서 눈물 흘리던 아기 엄마들도 이젠 한 주에 한번 숨구멍 트이는 날이라며 멘토링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에게 나의 짧은 지식이 도움이 되고 있다니 그것 또한 감사하고 기쁘다.   



글은 확실히 치유의 능력을 갖고 있는 듯하다.

물론 많은 연구 결과가 증명하고 있지만 나 역시 시를 쓰거나 에세이 한 편 쓰고 나면 한바탕 씻김굿을 하고 난 것 같다. 술렁대던 것들이 잠잠해지면서 고요한 상태로 접어든다. 담담하게, 아니 아주 호기롭게 세상 뭐 별거 있나 싶은 게, 지금 여기 내가 있는 곳에서 충만한 삶을 살면 됐지 하는 허세까지 부리게 된다.

허세가 아니라 정수박이에 맑은 물을 부은 듯 청정해지기까지 한다.  







사자자리로 산다는 것


                              진순희




"십중팔구

네가 속한 그룹의 리더가 될 거야"

어릴 때부터 귀 아프게 들었다

나서기 좋아하는 나는

무솔리니도 피델 카스트로와도 같은 별자리다


내가 모니터를 켜자

화면 가득 은하계가 펼쳐진다

그중 사자별자리가 나에게 뛰어든다

전생의 암수가 만난 듯

물고 빨고 참말로 가관이다

세상의 눈은 어둡고 입은 집요하다

내가 나른한 하품만 해도

발톱을 숨겼다고 몰아세운다

뒷배 감추었다 씹으며

온갖 풍문의 혜성들로 무성하다

사자도 상처를 받는다


한번 물려 지나간 잇자국이 깊다

속이 상해 버린 사자자리

뭇 별들의 귀퉁이에서 깜박인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혼자만의 고독이다


몇 해 전부터

거추장스런 갈기털일랑은

수사자에게 내던져 버렸다

가젤을 좇는 암사자

나는 백만 보 타이머를 장착했다

뛰기 위해 달린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된 것이다






두부 한 모, 그 착했던 날들


                                            진순희





이렇게 착한 놈을 보았나

두부, 태생이 부드럽고 희멀건 족속이다

끓는 물에 펄떡이던 미꾸라지

허둥지둥 빨려 들어가 한 몸이 되었다


두부숙회 탕이란다

건강식품이 변변치 않던 옛날엔

마님이 야밤에 은밀히 끓이는

사랑의 묘약이기도 했다지


두부+미꾸라지, 씹히는 식감

모시조개 국물과 한바탕 흐드러지다가

목울대 타고내리는 뜨끈한 기운

온몸으로 퍼지더니 먼 기억을 끌어온다


딸랑딸랑

두부장수가 지나가고

엄마 기다리던 어스름 긴 골목

주린 배에서 꼬르륵 울음소리가 났었지


두부를 먹으면 내가 착해지는 것 같다






정말이지 이상하게도 두부를 먹으면 내가 착해지는 것 같다.

사자자리 여자로 달리듯 살고 있지만 모시조개 들어간 두부탕을 먹으면 마음도 몸도 편안하다.

골목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어린 나의 모습이 보인다.


운 좋게 이번 여름에만 계간지에 세 번이나 시를 실을 수 있었다. 그것에 대해 짧게 쓴다는 것이 그만 2차 백신 맞고 정신줄을 놓았는지 주저리주저리 말도 안 되는 글을 써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쓰기 그루라는 Calling을 갖게 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