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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순희 Jun 17. 2019

전체 글 베껴쓰기

"큰 나무도 가느다란 가지에서 시작된다" 

   대학을 잘 가서 주변의 부러움을 사던 학생이 찾아왔다. 아무리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하지만 일류대 간 학생의 표정치곤 너무 어두웠다.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중간고사 때문에 걱정이란다.

"왜 걱정이야. 공부도 잘하는 친구가? 고등학교 때처럼 성실하게 준비하면 되지. 시험 보는 것 선수잖아" 했더니 "아니오, 논술식으로 쓰는 것도 몇 개 되고, 리포트로 제출해야 하는 것도 몇 과목 있어요."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Pixabay 제공

  

  자료 찾아서 메꿔보는 건 어찌어찌하면 되겠는데 글 쓰는 건 도무지 엄두가 안 난단다. 극단의 처방을 내린 것이 잘 쓴 논문 베껴쓰기다.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베껴 쓰는 것으로 해결을 했다. 먼저 참고하고자 하는 논문을 해체했다. 논문의 구성이라든가, 주장을 펼치고 근거를 제시하는 방법을 익히게 했다. 좋은 논문 두세 편을 반복해서 부분 필사를 시켰다. 얼마 안 있어 소논문을 잘 쓸 수 있게 되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에서 A+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노자는 "큰 나무도 가느다란 가지에서 시작된다. 10층 탑도 작은 벽돌을 하나씩 쌓아 올리는 데서 시작된다.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처음과 마찬가지로 주의를 기울이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벽돌 한 장씩 쌓듯이 한 단락에서 전체 글로 베껴쓰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글 한편을 완성할 수 있게 된다.

수업할 때는 처음부터 무리하게 긴 글 베껴쓰기를 시키지 않는다. 사설 한 편을 택해 마지막 한 단락만 베껴 쓰게 한다. 그런 다음 조금씩 양을 늘리다가 사설 한 편 전체를 옮겨 적게 한다. 이렇게 4~회 차근차근 베껴쓰기로 글을 익히다 보면 거뜬히 자기만의 생각이 담긴 글을 쓰게 된다.


   짧은 글 베껴쓰기를 했다면 이제 긴 글에 도전할 차례다. 긴 글쓰기의 예시글로는 신영복 교수의 <<나무야 나무야>>에 실린 <드높은 삶을 지향하는 진정한 합격자가 되십시오>로 했다. 정확하게 읽어내는 힘뿐만 아니라 감동과 교훈도 얻고자 했다.



   새 출발점에 선 당신에게


   '예비 합격자' 명단에서 당신의 이름을 보고 축하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여왔습니다. 1등 만을 기억하는 세상에서 수능 점수 100점으로 예비 합격한 당신을 축하할 자신이 네게도 없었습니다. 지금쯤 당신은 어느 대학의 합격자가 되어 대학생활을 시작하고 있거나, 아니면 기술학원에 등록을 해두었는지도 모릅니다만 어쨌든 나는 당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축하의 편지를 씁니다. 이제 대학입시라는 우리 시대의 잔혹한 통과의례를 일단 마쳤기 때문입니다.


   나와 같이 징역살이를 한 노인 목수 한 분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그 노인이 내게 무얼 설명하면서 땅바닥에 집을 그렸습니다. 그 그림에서 내가 받은 충격은 잊을 수 없습니다. 집을 그리는 순서가 판이하였기 때문입니다. 지붕부터 그리는 우리들의 순서와는 거꾸로였습니다.


   먼저 주춧돌을 그린 다음 기둥, 도리, 들보, 서까래, 지붕의 순서로 그렸습니다. 그가 집을 그리는 순서는 집을 짓는 순서였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그림이었습니다. 세상에 지붕부터 그려온 나의 무심함이 부끄러웠습니다. 나의 서가(書架)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낭패감이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책을 읽다가 '건축이라는 단어를 만나면 한동안 그 노인의 얼굴을 상기합니다.


   차치리(且置履)라는 사람이 어느 날 장에 신발을 사러 가기 위하여 발의 크기를 본으로 떴습니다. 이를테면 종이 위에 발을 올려놓고 발의 윤곽을 그렸습니다. 한자(漢字)로 그것을 탁(度)이라 합니다. 그러나 막상 그가 장에 갈 때는 깜박 잊고 탁을 집에 두고 갔습니다. 신발가게 앞에 와서야 탁을 집에다 두고 온 것을 깨닫고는 탁을 가지러 집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제법 먼 길을 되돌아가서 탁을 가지고 다시 장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장이 파하고 난 뒤였습니다. 그 사연을 듣고는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탁을 가지러 집에까지 갈 필요가 어디 있소. 당신의 발로 신어보면 될 일이 아니오." 차치리가 대답했습니다. "아무려면 발이 탁만큼 정확하겠습니까?" 주춧돌부터 집을 그리던 그 노인이 발로 신어보고 신발을 사는 사람이라면 나는 탁을 가지러 집으로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탁(度)고 족(足), 교실과 공장, 종이와 망치, 의상(衣裳)과 사람, 화폐와 물건, 임금과 노동력, 이론과 실천....... 이러한 것들이 뒤바뀌어 있는 우리의 사고(思考)를 다시 한번 반성케 하는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을 위로하기 위하여 이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로'는 진정한 애정이 아닙니다. 위로는 그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가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확인케 함으로써 다시 한번 좌절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언젠가 우리는 늦은 밤 어두운 골목길을 더듬다가 넓고 밝은 길로 나오면서 기뻐하였습니다. 아무리 작은 실개천도 이윽고 강을 만나고 드디어 바다를 만나는 진리를 감사하였습니다. 주춧돌에서부터 집을 그리는 사람들의 견고한 믿음입니다. 당신이 비록 지금은 어둡고 좁은  골목길을 걷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발로 당신의 삶을 진행하고 있는 한 언젠가는 넓은 길, 넓은 바다를 만나리라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ㅡ 길의 어디쯤에서 당신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언제나 처음에는 소리 내어 읽게 했다.(1581자, 한자 14자 포함). 소리 내어 읽는 음독은 눈으로 읽을 때보다도 더 이해가 잘 된다. 3번 반복해서 읽고 천천히 베껴쓰기를 시작했다. 베껴쓰기 한 다음에는 느낌을 말해 보게 했다. 어떤 부분이 인상 깊었느지 근거를 대서 발표를 시켰다. 긴 글은 읽기 버겁다고 투덜대는 학생에게 볼테르의 명언을 소개했다.


"당신을 책을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한, 당신의 생활은 부질없는 야심과 쾌락을 추구하는 데 바쁠지도 모른다. 그러 나 세상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그 세계는 책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얘들아 지금 당장 책 한 권은 다 읽지 못할 수도 있어. 그런데 한 꼭지만 제대로 읽어도 읽기 능력은 전보다 더 좋아질 거야"라며 북돋아줬다.


  베껴쓰기의 최종 목표는 자기 글을 쓰는 것이다.

신영복 교수의 글을 주고, 진정한 성공을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말해보게 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드높은 삶인지 생각을 나눴다. 유튜브에 신영복 교수와 관련된 것을 시청한 다음 글을 쓰게 했다.

(유튜브: 담론-신영복 마지막 강의 시청)  


      

전체 글 베껴 쓰는 순서



   학생글:


   요즘은 보이는 결과로만 성공을 판단한다. 신영복 교수는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인지? 진정한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묻는다.


   진정한 성공이란 노력하는 자세를 잃지 않는 것을 말한다. 남과 비교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기준에서 얼마나 발전했나를 보는 것이다. 남과 비교해서 자신이 더 뛰어난 것은 진정한 성공이라고 할 수 없다. 대기업에 다니든 공장에서 기술을 배우든 상관없다. 어제의 나와 비교해서 더 나아졌으면 그것으로 성공이다.


   신영복 교수는 실제 삶에 뿌리를 두고 펼치는 삶이 드높은 삶이라고 했다. 아무리 꿈이 크더라도 삶에 발을 붙이지 않은 꿈은 허황된 꿈일 뿐이다.

그렇다. 자신의 발로 자신을 지탱해 나갈 때 넓은 길을 만나고, 넓은 바다에 도달할 것이다. 주변 사람들하고만 관계를 맺기보다는 사회와 역사와 미래를 품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을 나누며 토론하는 것은 그런대로 했는데 막상 글을 쓰는 것은 어려워했다. 500자 미만의 글을 쓰는데도 30여 분 정도 걸렸다. 평소에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진정한 성공'이니 '드높은 삶'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보다.





제가 책을 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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