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그만두기 전까지 고작 예금, 적금밖에 몰랐던 나에게 큰 돈이 주어졌다. 돈 앞에 선 나는 생각보다 훨씬 겁이 많았다. 아는 것이 없었던 나의 첫 번째 선택은 당연히 예금이었다. 단 0.1%라도 이율이 높은 곳에 돈을 넣어두고 싶었다. 버스를 타고 이율이 높은 저축은행들을 하나씩 찾아다녔다. 예금자 보호가 되는 한도까지 넣다 보니, 어느새 손에 통장이 한가득 쥐어졌다.
남은 10% 정도의 금액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이 정도의 돈이라면, 크게 잃어도 내 삶이 바로 무너지지는 않을 거로 생각했다. 처음엔 물론 재미있었다. 소소한 수익이 났고, 누구나 한 번쯤 하는 착각처럼 나에게도 투자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는 시간은 주식 투자를 배우는 데 썼다. 책을 읽고, 유튜브를 보고, 온라인 강의를 찾아 들었다. 예금에 묶어 둔 돈까지 움직이려면, 더 많이 알아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떤 투자자가 될 것인지 정리해 볼 틈도 없이 나는 곧 지옥을 경험하게 됐다. 그때의 수익이 대세 상승장이 누구에게나 안겨주던 잠깐의 착각이었다는 사실도, 그제야 알게 됐다.
투자를 시작한 지 몇 달도 되지 않아, 나는 가장 길고 지루하게 이어진 하락장을 정면으로 맞이했다. 22년부터 23년까지 무려 1년 반 동안 이어진 지옥의 장이다. 투자의 원칙도 기준도 없던 나에게 초기 하락장은 오히려 기회처럼 보였다. 좋은 주식을 좋은 가격에 살 수 있는 절호의 찬스. 그럴 때는 과감하게 사야 한다고 믿었다.
신이 났다. 내게는 예금으로 묶어 둔 두둑한 현금이 있었다. 드디어 부자가 될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버스를 타고 예금을 깨러 갔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버스를 탔다. 처음부터 모두 해지할 생각은 아니었다. 정말 그때까지만 해도, 그럴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하락장은 나의 예금이 모두 해지되어 전 재산이 주식계좌로 옮겨질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아니, 그 뒤로도 하락은 한참이나 더 이어졌다.
귀신에 홀린 듯 전 재산을 주식에 넣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멈출 수 있었다. 여유자금이 더 있었더라면 아마도 이 끝없는 매수는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더 이상 투입할 돈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강제로 멈춰 세웠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당장 내년의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와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통장 잔액은 빠르게 줄어들었고, 내 계좌는 점점 더 시퍼런 바다색을 닮아갔다.
버티는 동안 나는 굉장히 냉정해졌고,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좋은 종목을 찾을 수 있는 눈이 있는가.
나는 정말 시장을 이길 수 있는가.
나는 한 번에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타이밍을 볼 수 있는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철저히 내가 할 수 있는 것만을 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좋은 종목을 고를 눈은 없지만, 시장에 머무르는 것은 할 수 있었다. 한 번에 큰돈을 투입하는 것은 두려웠지만, 원칙과 기준에 맞게 천천히 나눠서 사는 것을 할 수 있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보다는 매일 조금씩 작은 수익에도 만족하는 것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시장을 이기겠다는 착각을 버렸다. 크게 벌 생각도 버렸다. 그저 살아남을 생각만 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주식 판에서 인생을 배우기 시작한 지 만 4년이 넘어간다. 제법 익숙한 투자자가 되었나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공포에 사람들이 휩싸이는 하락장에서도 예전처럼 무너지지 않는 나를 발견한다. 오히려 대체로 편안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기준과 원칙에 따라 천천히 분할매수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기분이 좋다. 모두가 호들갑 떠는 대세 상승장에도 편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처음 세웠던 기준에 닿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리한다. 그 덕분에 큰 수익은 아니어도, 다시 시장에 설 수 있는 여유는 남는다. 어떤 사람들은 내 투자법이 멍청하다고 말했다. 고작 그 정도의 수익에 만족할 거면 주식을 할 이유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주식으로 크게 벌었다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시장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드물다. 나는 살아남는 투자자가 되기로 했다.
사람들이 여전히 묻는다. 뭐 하시는 분이세요? 아직도 ‘투자자’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낼 때면, 아주 조금은 긴장된다. 그 단어에 씌워진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못하다. 하지만 남들과 조금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 그저 나로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투자자라는 단어는 나를 완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나는 이제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 저는 살아남고 싶은 투자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