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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고 사랑하고 나아가라

탐색의 쉼, 네 번째 이야기

by 난주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보셨나요?


2006년 처음 발간되어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2010년에는 줄리아 로버츠가 출연하는 영화로도 제작됐었죠. 하지만 저는 주연보다는 조연에 매력을 느끼고, 모두가 열광하면 괜히 한 발 물러서는 사람이라 그 유명한 책을 이제야 읽게 되었습니다.


마침 도서관에 10주년 기념 개정판이 나와 있길래 얼른 대여했습니다. '회복'이라는 가볍지 않은 주제와 '572쪽'이라는 무거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것을 보니 왜 천만 부나 팔렸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대부분의 에피소드들이 흥미로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주인공이 욕실에서 기도를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평소 신앙이 없던 주인공이 절망에 빠져 하늘에 있는 절대자를 향해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내비치며 고함을 지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정제된 고해가 아닌 절박한 외침에 가까웠던 그녀의 기도는 그 간절함 때문에 더욱 진실되게 다가왔습니다.



살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었던 사람이 신뢰를 저버릴 때

쌓아온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질 때

감당하기 힘든 일이 연이어 일어날 때

시간이 지나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때


우리는 무너져 내리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기도를 합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교가 존재하지만 절대적 존재를 향한 믿음에는 공통점이 있다고 믿습니다. 유한한 삶 속에서 반복되는 고통을 견뎌야 하는 우리에게 이러한 믿음은 무엇보다 큰 희망이자 버팀목이 됩니다.


인생이 잘 풀릴 때는 제가 잘해서 그런 줄 알고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다 고난이 닥쳐오면 엎드려 간구하는 저의 모습이, 때로는 제 혼자 큰 줄 아는 배은망덕한 자식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게 나약하고 어리석은 제 본연의 모습이자 한계겠죠.


사실 저는 여리고 눈물이 많은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현실적인 상황으로 인해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로 살아왔지만 속으로는 누군가에게 늘 기대고 싶었죠. 그래서 기도 시간만큼은 고유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아버지에게 투정 부리고 어머니에게 안겨 우는 아이처럼 하늘에 계신 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풀어지곤 합니다. 누군가에게 오롯이 의지한다는 것은 참으로 마음이 놓이는 일이어서 기도가 끝나고 나면 형언하기 힘든 위안을 얻곤 합니다.



요즘에는 잠들기 전, 아이와 함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급식에 나온 치즈볼이 너무 맛있었어요.

줄넘기 시간에 쌩쌩이를 세 번이나 했어요.

엄마랑 하루 종일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아이와 함께 있을 수 있어 행복했어요.

이직 제의가 있어 다행이에요.

글을 계속 쓰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하루에 감사했던 일들을 세 가지씩 말하고 서로를 꼭 안으면 하늘에 계신 분이 저희를 향해 미소 짓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광활한 우주에서 먼지 같은 존재인 저와 아이가 절대자의 품 안에서 보호받는 것마냥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하늘에 계신 분은

램프의 요정 지니처럼 소원을 들어주거나

용한 무당처럼 미래를 예언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방관자처럼 묵묵히 내려다보고

때로는 심판자처럼 시험에 들게 합니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부탁하는 게 낯설고 서툰 제게 그분의 존재는 그 자체로 위로가 됩니다. 절대자에게 온전히 의지하는 시간을 통해 저는 자신을 조금 더 따뜻하게 포용하고 세상에 대한 희망을 회복합니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인도에서 종교적 수행을 하고 발리에서 내적 치유를 할 수는 없지만 저는 평생 기도와 동행하고 싶습니다.


매일 흔들리고

자주 불안하고

때로 울컥하지만


저를 붙잡고 이끌어주는

절대적인 존재와 함께 하며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싶습니다.


기도하고 사랑하고 나아가는 제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손을 맞대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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