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럽고 두려워도 문제와 직면해야 하는 순간, 더 이상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지 못하고 양 갈래 길 중 하나를 반드시 택해야만 하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더욱 얄궂은 것은 이런 순간이 연달아 찾아온다는 것이다. 4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윤달처럼 숨 쉴 틈을 주고 순차적으로 찾아오면 좋겠지만 이상하게도 결단의 순간들은 한 번에 몰아쳐 오는 경향이 있다.
새해가 시작된 지 이제 겨우 두어 달이 넘었을 뿐인데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결정들을 연거푸 내리는 중이다. 이십 년 만에 휴직을 하면 조금은 삶의 여유가 생길 줄 알았는데 내 인생에 그런 복은 없나 보다.
이번 주에는 도서관을 세 번이나 찾았다. 우리 동네에는 도보로 이용 가능한 도서관이 세 개나 된다. 하나는 중간 규모의 지역도서관, 다른 하나는 집 바로 옆의 작은 도서관, 마지막으로 교회에서 마을 주민들의 복지를 위해 운영하는 도서관이 있다.
내가 자주 가는 도서관은 작은도서관과 교회도서관이다. 지역도서관보다 조금 더 가까워서이기도 하지만 도서관은 내게 도서를 읽고 대여하는 장소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힘든 일이 있으면 나는 책 속으로 숨었다. 눈물을 삼키고 꾸역꾸역 밥을 삼키는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눈물을 감추고 책을 집어 들곤 했다. 남들보다 일찍 철이 들어야만 했던 학창 시절, 살아내느라 여념이 없었던 젊은 시절,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겹게 걸음을 떼고 있는 지금, 나에게 유일한 피난처는 도서관이었다.
어느 누구도 섣불리 다가와 말을 걸지 않는 조용한 공간, 종이책 특유의 나무 냄새가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공간, 속세와 떨어져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는 공간에서 마음을 정돈하곤 했다. 한참 책을 읽다 보면 고조되었던 감정이 차분히 가라앉고 숨겨 두었던 용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서 나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지역도서관보다 상대적으로 한산한 작은도서관에 늘 마음이 끌렸다.
비록 보유하고 있는 장서의 수가 적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협소했지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독서에 빠져들 수 있는 특유의 고요함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부여했다.
삼일 동안 두 곳의 도서관에서 세 권의 책을 읽고 두 개의 결정을 내렸다. 그 결정이 옳은지는 끝까지 가봐야 알겠지만 최소한 조용한 곳에서 내면의 목소리를 충분히 경청하고 내린 결정이니 후회는 적을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인생의 수많은 결정을 도서관과 함께 할 것이다. 봄날 아른아른 피어나는 아지랑이처럼 온유한 도서관의 품 안에서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고, 책장 넘어가는 소리만이 가만히 들리는 고요함 속에서 마음속에 숨겨 두었던 진짜 감정을 들여다볼 것이다.
현명한 지인들에게 응원을 구하고 전문상담사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연륜 있는 어른에게 조언을 얻는 것도 결정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삶의 가장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가장 솔직하고 정확한 의견을 낼 수 있는 것은 결국 나 자신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충분히 고민을 기울여 볼 독립적이고 안전한 장소가 필요하다.
나는 그 해결책으로 도서관만 한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많은 자료가 소장되어 있어 그만큼 많은 수요가 존재하는 커다란 도서관보다는 소박한 마을 도서관이 이러한 장소로는 더욱 적합하다 생각한다.
몇 년 전 작은 도서관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나의 피난처로서, 어쩌면 우리의 피난처이자 고민과 위안의 장소로서 작은 도서관이 계속 존재하기를, 줄어들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