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기 좋아하는 사람도 어떤 순간에는 외로움이 몰려오기 마련이다. 사랑하는 배우자가 있어도, 소중한 자식이 있어도, 든든한 친구가 있어도 우리는 외로움을 느낀다. 정도와 양상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 모두는 평생 외로움을 안고 산다.
젊은 시절에는 외롭다는 감정이 청승맞게 느껴졌다. 그래서 친구와 약속을 잡고 모임을 나가고 연애를 했다. 24시간의 대부분을 누군가와 함께 함으로써 외로움이 다가올 여지를 만들지 않았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는 외롭다는 감정이 사치로 느껴졌다. 부지런히 돈을 모아 가정을 일구고 자식을 뒷바라지해야 한다는 압박에 이따금 외롭다는 생각이 들어도 무시하고 지나갔다.
인생의 전반전을 마무리하고 후반전을 준비하는 지금에 와서야 나는 외로움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다.
외롭다는 사실은 부끄럽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일반적인 사실일 뿐이라는 것. 그렇기에 외롭다고 솔직히 고백하고 사랑이나 우정을 청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수록 외로움이 깊어진다면 그것은 건강하지 않은 관계라는 것. 그러나 동시에 모든 외로움을 채울 수 있는 관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외로움의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감정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뿐이라는 것.
이것이 내가 외로움을 직면하고 새롭게 깨닫게 된 것들이다.
얼마 전 호머 히컴의 소설 <악어 앨버트와의 이상한 여행>을 즐겁게 읽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악어였다. 그것도 야생의 악어가 아니라 반려 동물로서의 악어. 싱크대와 욕조를 거쳐 바다까지 종횡무진하는 앨버트는 자신을 돌봐주는 가족들을 모험으로 이끈다. 무시무시한 이빨과 강한 턱, 커다란 몸집으로 세상을 탐험하는 앨버트로 인해 가족들은 여러 차례 위험하고 당황스러운 순간에 처하지만 이를 이겨냄으로써 더욱 큰 성장과 더욱 끈끈한 관계를 이룩한다.
요즘 유난히 외로움에 대한 생각이 많아서였을까.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외로움이 앨버트와 같다고 느꼈다. 반려 동물처럼 늘 가까이 있지만 함께 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존재, 누군가에게는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더없이 강하고 위험한 존재,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성장시키고 관계를 촉진하는 존재.
외로움이 우리를 감쌀 때 우리는 많은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나 자신이 가진 역량과 잠재력을 의심하며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히고 때로는 당장의 외로움을 벗어던지기 위해 잘못된 사람과 건강하지 않은 관계를 맺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외로움이 있기에 자신과,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고 발전시킬 기회를 가진다. 만약 외로움이 없었다면 우리 인생에 피어난 성찰과 성장, 우정과 사랑의 존재도 없었을 것이다.
외로움이라는 악어는 특유의 날카로운 이빨과 무시무시한 턱으로 우리에게 위협을 가할 것이다. 결코 만만치 만은 않은 모습에 우리는 움츠려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운명이 이 악어와 평생 함께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악어의 존재를 인정하고 제대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나의 악어는 어떤 모습인지, 그가 나에게 다가올 때 어떤 감정이 느껴지는지, 악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악어가 이빨을 드러내는 순간은 무엇인지 세심히 살펴보고 그에 맞게 관계를 형성해 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필요하다면 악어를 함께 돌볼 조력자를 구하고 때로는 철저하게 혼자 고민하기도 해야 할 것이다.
악어를 만나는 것도 부족해 평생을 함께 하고 친해져야 한다니.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악어를 사랑하고 제대로 돌보는 것이야말로 나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끄는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저마다의 악어 앨버트를 제대로 바라보고 친밀해지기를, 그리하여 그의 날카로운 이빨과 무시무시한 턱까지도 사랑스럽게 쓰다듬어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