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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수집가 Jun 30. 2020

12년째의 입덧

한 번의 출산, 12년 간의 입덧

4월을 맞이하는 나만의 방법


해마다 4월의 시작을 아는 방법은 대개 달력을 통해서겠지만 나는 조금 특별하게도 그 계절, 공기의 냄새로 그의 도래를 깨닫는다.

내게 4월은 이미 지나간 것들, 철을 맞추어 온 것들, 이제 앞으로 올 것들이 한데 뒤섞여 불안정한 익숙함을 주는 달이다.  날씨는 봄과 겨울과 때론 여름까지도 섞여 있었고, 바람은 봄인가 싶게 머리칼을 살랑거리다가 다음 날이면 다시 옷깃을 꼭 여미게 하는 혼란스러움이 있었다. 새 학기 시작의 설렘과 전진의 고단함이 섞여 있었다. 특히 10년 전 그 해에는 생명의 잉태라는 기쁨과 앞으로 내게 있을 변화에 대한 예견할 수 없는 설고 불안한 긴장이 섞여 있던 계절이기도 했다.


생명의 징후를 느끼다


처음으로 내 몸의 낯선 변화를 느낀 것은 늘 즐겨 마시던 인스턴트커피 맛의 변화다. 고된 하루 업무 속 지친 마음을 말끔히 헹궈주던 달콤 쌉쌀한 인스턴트커피 한 잔의 맛이 갑자기 달지도 쓰지도 않은 무(無) 맛으로 느껴진 경험은 결코 예사롭지 않았다. 이상하네, 커피 알갱이가 잘 안 섞였나 하는 마음에 정수기 앞을 떠나지 못한 채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커피를 다시 한 모금 골똘히 맛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이 새로운 생명과 함께 한 걸음을 내딛는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깃발이었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단박에 인스턴트커피를 포기했다.


생명의 존재감을 서서히 느끼다


음, 입덧이 이런 건가? 하며 슬며시 찾아온 변화는 앗, 입덧이 이럴 수가! 하는 극적인 순간들로 내 삶의 패턴을 뒤바꾸어 놓았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는 손에 꼽혔다. 방울토마토, 오이, 두유, 소금 맛 크래커. 그마저도 시간이 갈수록 하나씩 불가능의 목록으로 넘어가고 있었 그중 나를 끝까지 힘들게 한 것은 두유였다. 절박유산의 위험이 있 근무지에 휴가를 내고 하루의 대부분을 집에서 누워 지내고 있었는데, 근무 마지막 날 사무실 냉장고에 두고 온 두유가 말썽이었다. 바로 옆에 있는 것도 아니고 먼 거리 밖 냉장고 두유가 왜? 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다. 문제는 다소 외롭고 심심했기에 폭주하던 나의 상상력이었다.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하루에도 수십 번 머릿속으로 냉장고 속 두유를 천천히 열고, 그것을 마시고, 토하기를 반복했다.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사무실 동료의 안부 전화가 왔다. 대화를 나누다,

 

- 근데 선배님, 제가 사무실 냉장고에 두유 한 팩을 놓고 왔거든요.

- 그래?

- 죄송한데 그것 좀 누가 마셔 주시면 안 될까요?

- 무슨 소리야?

- 제가 입덧 때문에 두유도 못 먹게 되었는데, 거기 그 두유가 있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토할 것 같아서요. 미친 말 같지만 사실이에요.


친절한 선배님은 그럼 가만 있어 봐, 하시며 그 자리에서 냉장고 속 두유를 개봉하여 콸콸 개운하게 넘기신 후 빈 팩을 통쾌하게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음을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행자보다 상세하게 보고해 주셨고, 그 뒤로 냉장고 속 두유에 대한 나의 몹쓸 상상력은 잠잠해졌다.


생명으로 생명을 위협받다


그러나 입덧의 증세는 점점 심각해져서 나의 다음 타깃은 냉장고 그 자체가 되었다. 냉장고 속 음식 냄새가 너무 역했고 집에 냉장고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다시 상상력을 가동했다. 


거실 베란다 문을 연다,

좀처럼 열 일이 없는 방충망도 연다,

주방에 있는 냉장고란 놈을 끌고 온다,

그 놈을 들어 베란다 아래로 던진다....... 


다른 방법은 싫었다. 반드시 직접 내 손으로 베란다 문을 와라락 열고 냉장고를 시원스레 던지는 상상이어야만 잠시라도 속이 풀리는 듯했다. 


방금 전에 먹은 음식을 화장실에서 다시 확인하며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 같은 날이면 양산 하나를 들고 산책을 나갔다. 바깥바람을 쐰다고 사정이 많이 나아지진 않았다. 오히려 공기까지 나의 오감을 자극했다. 그 해 4월의 공기는 유난히 후텁지근하고, 다습하고, 미세한 알갱이가 섞여있다고 느낄 정도로 묵직했다. 사실 봄에서 여름 날씨를 향해 가는 4월의 공기가 언제나 그랬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작은 생명 하나를 겨우 키워나가던 내게 그 해 4월 공기의 냄새는 그토록 힘겹고 역했다.

 

돌아온 집안에서 냉장고를 던져버리는 나의 상상은 더욱 절실해지곤 했지만 그러나 누구나 알 수 있듯이 그 일은 결코 실현되지 못했다. 냉장고가 너무 고가의 물건이었다거나, 들거나 끌기엔 너무 무거웠다거나, 길가는 행인이 다칠 우려가 있었거나 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순전히 나의 입덧이 잦아들었기 때문이었다.


한 생명이 한 생명을 받아들이다


한 인간의 몸 안에 다른 한 생명이 겹쳐지는 일은 오묘했다. 나중에 책에서 읽은 바로는 우리 신체는 수정되어 착상한 수정란을 이물질로 인식, 면역 체계를 발동하여 총공격한다고 한다. 그래서 오심과 구토 현상이 동반되는 것이다. 입덧이 시작되고 극심해지는 시기인 임신 6주-12주 차 수정란의 크기는 겨우 엄지손톱만 할 뿐이다. 그 작은 '이물질'이 모체(母體)의 우주를 뒤흔들어 놓는다.

그럭저럭 그 힘든 시기가 지나고 여느 임신부와 같이 입맛은 돌아왔다. 그리고 아이는 내 안에서 무럭무럭 자랐고 이듬해 1월, 100년 만의 폭설이 내렸다는 떠들썩한 기사와 함께 깊은 밤 대한민국의 한 산부인과에서 예정일에 가족과 만난다. '이삭아 반가워. 너 참 귀엽다. 아직은 낯설지? 이제 안심해. 엄마 아빠가 함께할 거야.'


12년째 입덧을 느끼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그해 다시 일어났다. 4월이 되자 다시 속이 그때처럼 울렁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1년 전 그날처럼 코밑에 와닿는 공기의 냄새가 역하고 묵직하다는 생각을 하며 달력을 보니 4월이었고 나는 작년 이맘때쯤 내게 있었던 입덧의 기억을 당황스레 떠올렸다. 나의 착각도, 의도적인 반추도 아니었다. 정확히 그때 그 느낌 그대로 내 몸이 반응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더욱더 오묘한 일은 매년 반복되었다. 해마다 4월이 되면, 4월의 공기를 맡으면 내 시계는 거짓말처럼 나를 다시 2009년의 4월로 되돌려 놓았기 때문이다.

2020년, 정확히 12년째 나는 그날의 울렁거림을 여전히 느끼고 있다. 공기가 후텁지근하게 묵직하다고 느끼다가 다시 더욱 숨 가쁘게 뜨거워질 무렵 잦아들던 입덧의 곡선 역시 생생하다. 생명을 품었던 겨우 단 한 번의 일은 이렇게도 극적이란 말인가. 나는 12년째 내 아이의 존재를 느끼고 있다. 그것도 매일, 들숨과 날숨이 교차하는 순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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