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주말 엄마에게 카톡이 왔다. 딸과 엄마 사이라고 해도 평소 꼭 필요한 정보 위주의 대화가 오갈 뿐 카톡 대화가 많지 않은 우리 모녀에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알고 보니 친정 집에 새 식구가 들어온 것이다.
사실 얼마 전 10년이 훌쩍 넘게 친정 집 마당을 지키던 강아지 체리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소식을 들었다. 체리가 죽기 이틀 전, 집에 오신 엄마는 체리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며 우울해하셨었다. 며칠 전부터 밥을 잘 먹지 않아서 좋아하는 계란 후라이를 눈 앞에 두고도 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볼일을 볼 때도 너무 힘들어하고 무엇보다도 잘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 체리는 사실 개의 평균 수명을 이미 웃돌아 살고 있었다.
마당개에게 체리라는 이름이 과분하다는 엄마 의견이 있었지만 남동생 주장으로 체리라는 예쁜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던 강아지 체리. 체리는 작은 체구에 맵씨가 날렵하고 무엇보다도 일 년에 몇 번 가지 않는 나와 내 차의 엔진 소리를 기가 막히게 구별하여 주차와 동시에 애끓는 애교를 장전하던 똑똑한 녀석이었다.
그런 체리를 곱게 묻어주고도 엄마에게는 현실적 문제가 닥쳤다. 마당을 지킬 강아지가 필요했다. 친정 집에 이제껏 강아지가 없었던 적은 없었기에 우리는 체리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동시에 새로 마당을 가득 채워 줄 강아지를 수소문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엄마가 어느 날 '장터에 가면 강아지가 있다는데?' 하시며 유성장에 다녀오시겠단다. 요즘도 장에 강아지를 내놓는다는 게 잘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강아지를 돈 주고 사온다는 게 맘에 걸렸고 그 말씀을 드렸더니 엄마도 생각이 깊어지신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받은 엄마의 카톡이 그랬다.
어제 왔다 이름은 반반이
반반이 줄 좀 풀어 주시면 안 돼요?
장터에 가서 사 오는 것을 단념하고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친정에서 10킬로미터도 더 넘게 떨어진 동네의 어미 개가 새끼를 낳아 곧 분양할 계획이라는 소식을 지인에게 들으시고 무려 1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반반이를 데려오신 것이다.
검은 반점과 흰 바탕이 적절히 섞인 귀여운 녀석이었다. 엄마의 작명 센스에 탄복하며 사진을 들여다 보는데 사진 속 반반이 표정이 심상치 않다. 엄마는 반반이가 시위를 한다고 했다. 오기 전에 그 집 밭에서 형제들과 뛰어놀던 아이라 목줄이 낯설었는지 벌벌 떨고 있다고 했다.
"풀어 놓으면 좋을텐데 마당 있는 집에서 풀어 키우면 좋잖아요. 불쌍해요."
"오기 전에 밭에서 풀어 놀던 애라 군기를 잡아야지."
엄마의 대답은 너무 단호해서 갑자기 어린 시절 우리 삼 남매를 호되게 키우시던 그 모습이 소환되어 정신이 아찔했다. 엄마 어린 시절 꿈이 여군이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다. 엄마는 우리 나라 최초 여성 장군이 되었어도 충분히 되셨을 분이다.
반반이를 풀어 놓을 수 없는 이유는 부모님이 수년 째 소중히 가꾸시는 마당 텃밭 때문이었다. 오기 전에 밭에서 풀어 키우던 강아지라 하루 풀어 놓았더니 토마토 모종과 고추 밭을 모두 헤집어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엄마는 분노하셨다.
(강아지든 고양이든 사람이든 어린 시절은 모두 다 철이 없고 눈치도 없다.)
그러나 토마토도 귀하고 고추 밭도 소중하지만 내겐 나라를 잃은 표정으로 벌벌 떨고 있다는 흰색 반 검은색 반반이의 표정이 더 눈에 들어왔다. 엄마의 단호한 결정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참 녀석도, 어지간히 눈치껏 뛰어놀 것이지.
반반이,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반반이는 이제 밥도 잘 먹고 목줄에도 적응해서 쳐진 어깨가 조금 올라왔다고 한다. 반반이는 동물을 아끼고 사랑하시는 부모님의 융숭한 대접을 잘 받고 크는 것 같다. 그런데 반반이에게 새로운 문제가 있었다. 바로 함께 사는 고양이들. 사진의 왼쪽 주황색 집이 바로 고양이 형제의 집이다. 반반이와 비슷한 또래인데 어찌나 날카롭고 사나운지 고양이 형제에게 꼼짝하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 반반이, 많이 먹고 얼른 커서 고양이 형제들한테 기 좀 펴고 살았으면 좋겠다. 이름처럼 반반~한 인생이 펼쳐졌음 좋겠다.
+ 덧붙이는 말
10월 21일, 처음으로 브런치 북을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무려 육아를 주제로요. 브런치가 사람 (붙)잡는 힘이 큽니다. 발행 버튼을 누르면 종이 책이 뚝 떨어지면 좋을텐데, ISBN도 없는 유령 같은 책이지만 마음으로는 수십 번 매만지게 되는 첫 책이네요. 낱글을 쓸 땐 몰랐는데 책으로 묶으니 자꾸 신경이 쓰입니다. 뭔가 좀, 나뭇잎을 모아 나무를 만든 기분이 드네요. 그래도 많이 읽어 주시고 조언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