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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야 Oct 16. 2023

아들의 운동회에 갔다

극 내향적 아이의 운동회

초등학교 2학년, 아이의 생애 첫 운동회다. 반일짜리 돌봄 휴가를 내고 학교로 갔다. 오늘은 초등 1~3학년, 저학년들의 운동회가 열렸다. 만국기로 장식된 운동장은 예전 운동회의 기억을 불러왔다. 병설 유치원 교사로 아이들을 인솔하던 기억부터 더 어렸던 나의 초등학생 시절까지 몽글몽글 떠올랐다. 청군, 백군을 외치며 운동장에서 땀 흘리는 어린이들의 마음이 예뻤다. 순수하게 '승부'만을 생각할 수 있던 때, 학창 시절이 떠올라서일까? 구경하는 사람들의 표정에 생기가 돌았다. 나는 엄마와 함께 갔는데 스포츠는 역시 함께 관람해야 더 재밌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앉아있는 천막 위로 학반이 적혀있다. 우리 아이도 친구와 어울려 장난이라도 치면 좋을 텐데... 발랄하게 응원하는 반아이들 사이에서 우두커니 제자리를 지키는 듯 앉아있는 우리 아이의 모습은 대조됐다. 그러나 내향적인 아이의 얼굴에도 분명 즐거움이 묻어있었다.


학부모 달리기가 있었다. 많은 엄마들과 아빠들이 달렸다. 넘어진 아이보다 넘어진 엄마, 아빠들의 수가 눈에 띄게 많았다. 자기 아이에게 "너도 할 수 있어!"를 몸소 보여주려는 의도가 숨어있어서이지 않을까?

극내향인인 나는 학부모 달리기가 끝날 때까지 참여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리고 달리기 시간이 끝났다. 속으로 '우리 아이가 날 닮았지 누굴 닮았겠냐?' 하며 내향적인 아이의 성격을 내 탓으로 돌렸다.

아이는 달리기도 4명 중 4등, 이벤트게임에서도 (자기 나름 전략적으로 임했으나 평균보다 늦어서) 탈락했다. 그나마 반별게임은 두 게임 모두 이겼으니 승리와 패배의 경험을 골고루 했다. 그래도 '사회 속에서 내향인 아이가 적응하려 노력하고 있구나'는 발견이 엄마인 내 마음을 안심시켰다.


학부모 줄다리기가 있었다. 엄마들 게임만 한 편에 30명씩 끊어서 모두 3판을 했으니 180명의 엄마들이 참가했다. 179명의 엄마들이 출사표를 내고 대기하는 동안 끝내 관중석에서 관람하며 참가여부를 갈등만 하던 나는 180번째 엄마로 참가했다. '내 아이가 보았으면'하는 마음으로, 언젠가 용기가 없을 때 '우리 엄마도 하던데?' 하며 출전의 문턱을 조금 낮춰주길 바라는 희망으로 나는 줄다리기의 맨 끝자리에 섰다. 그리고 열심히 했다(우리 엄마는 또 그걸 열심히 찍었다ㅋㅋ).


운동회가 끝나고 "아까 엄마 봤어?"하고 물었다. 아이는 내 모습을 봤고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나도 아이가 게임에 참가할 때 같은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내향적인 아이는 생각을 길게 하느라 느리기도 하다. 그래도 오늘 우리 모자는 늦게나마 생각을 실천했고 즐거운 추억 하나를 쌓았다. 극내향적인 어린이는 집에 돌아와 나를 안으며 "엄마, 나 오늘 진짜 잘했지?"하고 말한다. '읭???'싶다가도 "응!!! 진짜 오늘 쭈야 덕분에 가족 모두가 너무 즐거웠어. 고마워."하고 말했다. 천천히 자라도 단단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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