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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May 04. 2021

블랙홀

신글방 3기 7일 차 산문을 시로 바꾸기

서슬 퍼런 충돌의 순간

수은 빛이 분열한다

고통의 찰나에 끝없이 흡수된다


마주보는 너

마주보인 나


터져나온 울음

빛을 따라 공명한다


오로지 거울 안에서

오롯이 내 안에서만


화이트홀을 꿈꾸며

끝없이 수렴한다



유리와 거울
                                      김소연 <마음사전>
어느 날 유리창에 달라붙은 매미를 본 일이 있다. 나무에 달라붙어 있을 때는 등짝 만을 보아왔는데, 유리에 달라붙으니 전혀 볼 수 없었던 매미의 배를 보았다. 징그럽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사람에게 마음이 없었더라면 유리 같은 것을 만들어내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얼마나 마음을 존중하는 종자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매미와 나 사이에서 유리는, 매미를 나로부터 보호하기도 하고 나를 매비로부터 보호하기도 했다. 굳게 닫힌 유리창이 없었더라면 커다란 곤충을 가까이하기 두려운 나 같은 사람은 그것의 배를 한참 동안 바라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매미 또한 나에게 배를 보여주며 그렇게 집념에 차서 울고 있을 수는 없지 않았을까.
차단되고 싶으면서도 완전하게 차단되기 싫은 마음. 그것이 유리를 존재하게 한 것이다. 그러고 싶으면서도 그러기 싫은 마음의 미묘함을 유리처럼 간단하게 전달하고 있는 물체는 없는 것 같다. 가리면서도 보여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유리로 된 용기는 두루 사용된다. 술병도 그러하고 화장품 용기나 약병 같은 것도 그러하다. 안에 있으면서도 밖을 동경하는 마음 때문에 사람은 분명 유리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안과 밖의 경계를 만들면서 동시에 허무는 것. 그것에 대한 인간의 욕망 때문에, 유리는 세상에 존재하고 있고,  그렇게 단순하게 안과 밖 혹은 이분법적인 구분이 아닌 것들로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유리는 요약해 보여주고 있다.

유리의 뒷면에 수은을 입히면 거울이 된다. 유리는 빛을 투과하고, 거울은 빛을 반사한다. 빛이 지나갈 수 없다는 점 때문에 거울은 피사체를 그대로 볼 수 있게 해준다. 거울을 보는 눈. 빛이 지나다닐 수 있기 때문에 다른 그 무엇도 자유롭게 지나다닐 수 있어서 유리가 경계를 허물 수 있는 물체가 되었다면, 거울은 빛조차 지나다닐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반사하는 물체가 되었다. 유리는 우리가 무언가를 투시하게 한다면, 거울은 우리가 무언가를 반영하게 한다. 반사하고 반영한다는 점 때문에 거울을 오래 들여다보는 이는 거울의 이면까지 들여다보게 된다. 정확한 풍경을 보여주기 때문에 풍경 안으로 걸어 들어갈 수가 있다. 유리를 통하여 우리는 빛을 따라 '갈' 수 있다면, 거울을 통하여 우리는 빛의 길을 따라 '올'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거울은 정확한 풍경을 보여주는 대가로 그것을 반대로 보여준다. 오른쪽은 왼쪽이 되어 있고 왼쪽 또한 오른쪽이 되어 있다. 실체를 뒤접어 보여준다. 이데아와 그림자가 역전된다. 그 때문에 우리가 굳게 믿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인식의 틀을 뒤집어버린다. 또한, 거울 두 개를 마주 보게 하면 끝없이 자신을 반영하며 마주 본다. 거울이 거울을 끝없이 마주 보고 있으면 무한으로 갈수도 있고 그 과정 속에서 분열을 일으킬 수도 있듯이, 사람이 사람과 끝없이, 그리고 골몰히 마주 보고 있으면 그와 같을 수 있다.

거울은 배면이 수은으로 닫혀 있기 때문에 풍경 밖으로 걸어가기보다는 풍경 안에 침참하게 하며, 유리는 아무것으로도 배면을 닫아놓지 않기 때문에 풍경 밖으로 걸어가게 한다. 마음을 확산하는 것이 유리라면, 마음을 수렴하는 것은 거울인 셈이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AbhishekRaj13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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