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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May 03. 2021

팔불출 신혼 일기

신글방 3기 6일 차 시를 산문으로 바꾸기

생활에게
                                         이병률

일하러 나가면서 절반의 나를 집에 놔두고 간다
집에 있으면 해악이 없으며
민첩하지 않아도 되니
그것은 다행한 일

나는 집에 있으면서 절반의 나를 내보낸다
밭에 내보내기도 하고 비행기를 태우기도 하고
먼 데로 장가를 보내기도 한다

반죽만큼 절반을 뚝 떼어내 살다보면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도 없으며

그리하여 더군다나 아무 것도 아니라면 좀 살만하지 않을까

그 중에서도 살아가는 힘을 구하는 것은
당신도 아니고 누구도 아니며
바람도 아니고 불안도 아닌
그저 애를 쓰는 것뿐이어서
단지 그뿐이어서 무릎 삭는 줄도 모르는 건 아닌가

이러니 정작 내가 사는 일은 쥐나 쫓는 일이 아닌가 한다
절반으로 나눠 살기 어려울 때는
내가 하나가 아니라 차라리 둘이어서

하나를 구석지로 몰고 몰아
잔인하게 붙잡을 수도 있을 터이니

팔불출 신혼 생활에게


직장에 일하러 나가면서 절반의 나를 집에 놔두고 간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집에 남겨둔 부인을 누구라도 잡아갈까봐 온전한 나로 가지 못한다. 내가 집에 있으면 누군가 마눌님을 괴롭히거나 잡아갈해악이 없으며, 일나갔다가 걱정되어 급히 돌아와야할만큼 민첩하지 않아도 되니 그것은 너무 다행한 일이다.


나는 집에 있으면서 절반의 나를 내보낸다. 귀한 부인에게 월급을 가져다 주려면 밭에 내보내기도 하고 과수원으로 보내기도 해야 한다. 동네 어르신들을 비행기를 태우기도 하고 뒷집 나이든 총각 강아지 녀석을 먼 데로 장가를 보내기도 한다. 이렇게 밖에 있는 절반의 나는 여우 같은 마누라의 웃는 얼굴을 보기 위해 애를 쓴다.


수제비를 해먹으려 만든 밀가루 반죽만큼 절반을 뚝 떼어내 마누라와 함께 반씩 수제비를 띄운다. 그렇게 살다보면 나는 수제비 안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제비 밖 어느 곳에도 없으며 오로지 마누라와 하하 호호 웃으며 즐거움 속으로 날아간다.


그리하여 반덩이의 반죽이 수제비가 되고 더군다나 뱃 속에서 아무 것도 아니라면 좀 살만하지 않을까. 밀가루를 무척 좋아하지만 먹을 때마다 속이 아프고 혈당이 올라가니 제발 좋아하는 수제비가 몸 속에서 아무 것도 아니게 되기를!


그 중에서도 살아가는 힘을 구하는 것은 사랑하는 내 마누라를,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아니고 뒷집 사는 누구 할배도 아니며 어제 불던 바람도 아니고 지금 내 안에 있는 불안도 아닌, 내 마누라를 사랑할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안에서 나오지 않는 사랑을 억지로 해보려 그저 애를 쓰는 것뿐이어서 단지 기도하며 용서하고 화해하보려는 것 그뿐이어서 무릎 삭는 줄도 모르는 건 아닌가.


이러니 정작 내가 마누라를 위해 사는 일은 쥐나 쫓는 일이 다가 아닌가 한다. 모기 보고 꺅! 바퀴벌레 보고 꺅!하는 마누라가 쥐를 본다면 얼마나 놀랄 것인가! 애정하는 아내를 위해 미리 해충을 박멸하고 더러운 것들을 내쫓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절반으로 나눠서 이렇게 살기 어려울 때는 내가 하나가 아니라 반 덩이라도 둘이어서 2배의 힘을 내면 좋겠다.


반푼이 하나가 쥐를 구석지로 몰고 몰아 가면 다른 반푼이가 구석에 몰린 쥐를 잔인하게 붙잡을 수도 있을 터니이.





(Pixabay로부터 입수된 racjunior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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